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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서식지는 동쪽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6-05-30 12:27:44

 

 ● 제36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서식지는 동쪽

 

서식지는 동쪽

 

이정연(동국대학교·문예창작학·3)

 

 

                                          1

  태는 개를 네 마리나 길렀습니다.
  처음엔 한 마리였습니다. 한 마리가 혼자 노는 게 안쓰러워서 한 마리를 더 데려왔습니다. 두 마리는 저들끼리 어울리다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네 마리가 되어버렸다고 태는 설명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네 마리나, 라는 말은 너무 내 멋대로인가. 그냥 개를 네 마리 길렀다고 객관적으로 말해야 올바른 건가. 오른손 엄지에 새겨진 이빨 자국을 매만지며 다시 생각합니다. 아니, 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넓은 집에선 개 네 마리를 충분히 기를 수 있습니다. 애견샵이라던가 애견 미용학원, 그런 곳에 개가 네 마리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의 집이라면 이상합니다. 태의 집은 너무 비좁고 낡았습니다. 태의 집은 애견샵도 애견 미용학원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역시 네 마리나, 가 옳습니다.


                                          2

  나는 개 네 마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분명 들었을 테지만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이름뿐 아니라 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면서 어떻게. 태는 걸핏하면 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편의점 창고에 쭈그려 앉아 콜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는 야한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가 아닌 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영화 주인공의 탱탱한 가슴이나 검붉은 젖꼭지가 아닌, 오로지 개에 대해서만.
  평소 태는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워낙 말수가 적고 소심한 탓에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를 못했습니다. 술 취한 손님이 편의점에서 난동을 부려도 내쫓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긴장하면 목소리까지 기어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달랐습니다. 개 이야기를 할 때 태의 목소리는 한없이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쩍쩍 벌어지는 태의 입을 보고 있었습니다. 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투명한 침방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침이 내 옷에 튀기라도 하면 손등으로 쓱 닦기도 하면서 대답만 응, 응. 그런 식이었으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 하나 기억납니다. 개들의 종種은 시추였습니다.
  딱 한 번 내가 먼저 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태의 휴대전화 액정이 깨진 날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태는 편의점 마크가 그려진 초록색 유니폼을 입어야 했습니다. 태는 키 백칠십육 센티미터에 몸무게 육십 킬로그램으로 남자치곤 꽤 말랐습니다. 엑스 스몰 사이즈 유니폼도 태에겐 컸습니다. 어깨도 헐렁, 소매도 헐렁, 주머니도 헐렁해서 유니폼 차림의 태는 꼭 쌀 포대를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태는 그 헐렁한 유니폼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고 일했던 모양입니다. 손님이 던진 동전을 줍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난 순간, 유니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굴러떨어졌다고 태는 말했습니다. 하필 액정이 깨졌다고요. 태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편의점 창고를 서성였습니다. 입술을 깨물었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습니다. 얼굴은 흙빛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눈도 붉어졌습니다.
  “새로 사면 돼.”
  나는 콜라 캔을 따면서 위로했습니다. 태는 약정이 이 년이나 남았다고 받아쳤습니다.
  “고치면 돼.”
  나는 콜라 캔을 태에게 건네면서 다시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태는 콜라 캔을 받지 않았습니다.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서 아무래도 못 고치겠다며 긴 한숨을 내쉴 뿐이었습니다. 그대로라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때 휴대전화 배경화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경화면은 개 네 마리의 사진이었습니다. 나는 개들의 종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물었습니다. 태는 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개 이야기를 꺼내면 태의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태는 그제야 콜라 캔을 받아들었습니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뒤,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네 마리 모두 시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네 마리를 구분할 수 있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당연하죠.”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태는 웃었습니다. 우스워서 웃는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인데.”
  태는 배경화면 속 개들을 한 마리씩 가리키면서 특징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잘 봐요. 얘는 이마에 갈색 얼룩이 있어요. 얘는 유독 꼬리가 짧고요. 얘는 넷 중에 가장 뚱뚱하고. 마지막으로 얘는 장님이에요. 백내장 때문에.”
  나는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뚫어지라 응시했지만, 내 눈엔 네 마리가 똑같아 보일 뿐이었습니다. 네 마리 모두 흰색 몸뚱이에 갈색 얼룩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생김새였습니다. 불뚝 튀어나온 눈, 납작한 코와 비뚤어진 입은 묘하게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그래도 헷갈릴 것 같아.”
  “사진이라 그렇지. 실제로 보면 안 헷갈릴걸요.”
  태는 자신의 집에 개를 보러 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집 주소까지 줄줄 읊었습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응, 대답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담아듣지도 않았습니다.

                                          3

  태와 나는 이천십삼 년에 만났습니다. 태가 스무 살, 내가 스물한 살이던 해였습니다. 나는 휴학 중이었습니다. 휴학 중 실행에 옮길 계획도 잔뜩 세워놓았습니다. 하지만 그해는 나보다 부모님에게 더 중요한 해였습니다. 집을 샀기 때문입니다. 마을 동쪽에 즐비한 구형 주택들을 허물고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바로 그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부모님과 나는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기에 신축 아파트 당첨은 대단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첨자 발표 날, 부모님은 만취 상태로 귀가했습니다. 아빠 손에는 아파트 광고책자가, 엄마 손에는 팔고 남은 고기와 맥주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싸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습니다. 드디어 우리도 우리 집을 가진다. 전세살이도 이제 끝이다. 부모님의 혀가 꼬부라져서 그 정도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취할 대로 취했으면서 그들은 계속 맥주를 마셨습니다. 안주는 불고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정체불명의 노래를 흥얼대며 먹고 마시는 동안 나는 아파트 광고책자를 읽었습니다. 프리미엄, 럭셔리, 로열. 대충 좋은 뜻이라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뜻은 또 모르겠는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책자엔 아파트 건설이 마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미관상 불결함의 온상인 동쪽 주택가가 재개발되면 마을 환경이 쾌적해지고, 마을 환경이 쾌적해지면 집값도 덩달아 상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글보다 그림을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책자 표지에 그려진 아파트 견본 디자인을 살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파트는 무척 화려했습니다. 게다가 높았습니다. 나는 그림을 한 층 한 층 손가락으로 짚으며 총 몇 층인지 세었습니다. 무려 오십 층이었습니다.
  “몇 층에 당첨됐어요?”
  나는 부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오십 층.”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아빠와 배가 터질 것 같다며 바지 단추를 푼 엄마가 동시에 외쳤습니다.
  오십 층에 사는 기분은 과연 어떨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릴 적 63빌딩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 쇼를 관람했고, 베이커리에서 크림치즈 빵을 사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얼마나 빠른지, 전망대에 다다르는 데 삼십 초밖에 안 걸렸습니다. 귀가 먹먹해서 하품을 두어 번 했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에 눈을 대자마자 하품은 쏙 들어갔습니다. 63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뭐랄까, 아찔하면서도 대단했습니다. 땅에서 봤을 땐 분명 거대하게 느껴졌던 건물이 전망대에서는 손톱만큼 작아 보였습니다. 오십 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그와 비슷할지 궁금했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남긴 맥주를 홀짝였습니다. 차갑게 식은 불고기를 질겅질겅 씹었습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는 피식, 웃다가 부모님 옆에 누워 잠들었습니다.

  아파트 예상 완공연도는 이천십육 년. 삼 년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아파트 건설비용 문제를 두고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건설비용이 자그마치 사억, 사억이다. 이십 년 넘게 모은 돈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오천이 모자란다. 대출을 받고 싶지만, 이자율이 너무 높다. 그런 말이 오가다가 나온 대안은 단 하나, 열심히 벌고 절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삼 년 동안 부모님과 나는 그 대안을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우선 정육점 문을 매일 열었습니다. 원래 매주 일요일은 휴무였는데, 더는 쉴 수 없었습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도 해고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휴학 기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육점에서 부모님을 도와야 했습니다. 고기를 포장하는 게 내 일이었습니다. 아빠가 톱 모양의 골절도를 이용해서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린 거대한 고기를 팔뚝 크기로 잘랐습니다. 엄마가 미세도로 고기의 잔뼈와 지방과 근막을 분리했습니다. 뼈에 달라붙은 살점을 하나하나 떼어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고기를 비닐로 돌돌 싸맨 뒤 조명 아래 진열했습니다. 새빨간 조명 아래서 마블링은 파도처럼 현란하게 빛났습니다.
  아파트 당첨의 기쁨이 무색할 정도로 힘든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옷에 고기 비린내가 뱄습니다. 비린내는 향수를 뿌려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손톱은 고기의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물로 깨끗이 씻어도 소용없었습니다. 삼시 세끼 팔고 남은 고기만 먹었습니다. 불고기, 고기볶음, 고기찜, 고깃국. 그렇게 고기를 먹고 이부자리에 누우면 속이 더부룩했습니다. 배를 끌어안은 채로 선잠이 들었다가도 부모님의 앓는 소리를 듣고 깨곤 했습니다. 온종일 고기를 잘랐더니 어깨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마다 나는 부모님의 어깨에 파스를 붙였습니다. 알싸한 파스 냄새 때문에 더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이게 다 오십 층 아파트에 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았습니다. 참고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아파트 건설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아파트 건설현장은 높다란 플라스틱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외벽엔 외부인 출입금지, 라는 경고문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나를 힐끗거렸습니다. 가까이 오면 다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차마 건설현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외벽 밖에서 살짝 훔쳐보았습니다.
  맨 처음 들여다봤을 땐 거대한 굴착기가 구형 주택 몇 채를 마구 허물고 있었습니다. 몹시 낡은 주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조금 전까진 주택의 일부였던 나무와 철과 유리가 산산이 조각 난 채로 땅에 나뒹굴었습니다. 굴착기보다 더 위협적으로 생긴 나사 모양의 시추 기계는 땅을 파고드는 중이었습니다. 굉음 때문에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땐 땅에 철근을 심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로 봤을 땐 모래와 벽돌, 시멘트로 철근을 덮는 중이었습니다. 크레인이 철근 위로 벽돌을 차곡차곡 내려놓으면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롤러로 시멘트를 발랐습니다. 그렇게 아파트는 장난감 블록처럼 한 층 한 층 쌓였습니다. 건설현장을 구경하는 순간만큼은 고기 비린내와 피로 물든 손톱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자주 건설현장에 방문했습니다. 급기야는 매일 저녁 정육점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건설현장에 들르는 게 당연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건설현장에 오래 머물면 먼지 때문에 목이 아팠습니다. 모래 알갱이가 오독오독 씹혔습니다. 그래서 근처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마시곤 했습니다. 태는 그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이었습니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앳된 얼굴의 남자 아르바이트생. 내가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 한 캔을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태가 콜라 캔의 바코드를 찍고. 태가 가격을 말하면 내가 돈을 내고. 똑같은 일이 날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아파트가 오 층까지 지어졌을 즈음의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콜라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는데, 태가 콜라를 한 캔 더 건넸습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유 없는 호의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한사코 손을 내저어도 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게……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이라서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냉장고에 원 플러스 원 행사를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콜라 두 캔을 들고 편의점에서 후다닥 뛰쳐나왔습니다.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 콜라 두 캔을 연달아 마셨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누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다음부터 태는 콜라를 두 캔씩 건넸습니다. 원 플러스 원 행사가 끝난 뒤에도 말입니다. 가끔 지렁이 젤리, 달걀 모양 초콜릿, 립스틱 사탕도 얹어주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거절했지만, 이내 받아들였습니다. 호의를 계속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태와 나는 콜라 두 캔을 나누어 마시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편의점에 손님이 별로 없을 땐 계산대에 선 채로 말도 몇 마디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태가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이지만,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편의점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태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익숙해져서요. 고등학교 때부터 여기서 일했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여기 주인이 늙은 할아버지라서, 무인카메라 확인도 안 해요. 편하죠. 손님만 없으면 딴짓해도 되니까.”
  아파트가 십 층까지 지어졌을 때, 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귀자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받아들였습니다. 젤리나 초콜릿이나 사탕을 받듯이 가볍게. 지금으로선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사귀었지. 태처럼 소심하고 마른 남자는 내 취향이 아닌데. 연하도 내 취향이 아닌데 말입니다.
  나는 그냥, 태가 건넨 콜라가 좋았습니다. 콜라 두 캔을 태와 나누어 마시면 칼칼한 목이 개운해져서 좋았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4
                                          
  연애 초기에 태와 나는 야외 데이트 장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이국적인 수목원이나 텔레비전에 나온 음식점. 팝콘과 버터구이 오징어를 파는 영화관. 연인들은 다 간다는 놀이공원. 나는 가는 곳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태는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면서도 포즈를 취했습니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김치.
  그러나 곧 시들해졌습니다. 둘 다 너무 바빠서 데이트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태는 편의점 야간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야간 시급이 주간 시급보다 높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육점엔 점점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습니다. 정육점 문고리가 헐거워질수록 부모님의 어깨 관절도 헐거워졌습니다. 파스로 어깨를 도배한 채 일했을 정도입니다. 덕분에 내 일이 더 늘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고기를 갈고리에 매다는 일, 엄마가 분리한 잔뼈와 지방과 근막을 까만색 봉투에 담아 처리하는 일까지 도맡게 되었습니다. 고기 비린내가 옷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다 밴 듯했습니다. 피로 물든 손톱은 매니큐어를 칠한 것처럼 나날이 새빨개졌습니다.
  게다가 돈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교통비나 식비야 어쩔 수 없다지만, 데이트 준비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기 비린내 풍기는 옷을 입고 데이트할 순 없으니까 새 옷을 사야 하는 것. 계속 옷 한 벌만 입으면 태가 알아챌 테니까 돌려 입을 여벌의 옷을 사야 하는 것. 예를 들자면 그런 것들 말입니다. 돈 아깝다는 생각을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63빌딩에 갔습니다. 나는 새로 산 옷을 입고 데이트에 나섰습니다. 버스 안, 내가 창가에 앉고 태는 내 옆 좌석에 앉았습니다. 차창 밖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태 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태는 입을 벌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적잖이 피곤한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잠든 태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했습니다. 태의 얼굴에선 더 이상 앳된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야간 근무를 시작한 뒤로 태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습니다. 가뜩이나 말랐는데, 살이 더 빠졌습니다. 다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입술도 잔뜩 부르텄습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귀를 덮었습니다. 턱에는 까만 수염이 샤프심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내가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드리자 태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63빌딩에서는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돌고래 쇼를 관람했습니다. 크림치즈 빵을 사 먹었습니다. 전망대에도 올랐습니다. 나는 망원경 앞으로 태를 끌고 갔습니다.
  “여기 좀 봐.”
  태는 못 이기는 척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댔습니다.
  “나는 이렇게 내려다보는 게 좋더라.”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처진 눈을 비볐습니다. 누런 눈곱이 부슬부슬 떨어졌습니다.
  “대단하지 않아?”
  태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품을 했습니다. 부르튼 입술에서 피가 났습니다.
 
  야외 데이트는 63빌딩이 마지막이었습니다. 63빌딩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멀리 나가지 말자.”
  태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피곤하잖아. 너나 나나.”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후 태와 나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편의점이었습니다. 그편이 차라리 편했습니다. 시간과 돈이 절약되었고, 옷이니 뭐니 준비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고기 비린내 풍기는 옷을 입은 내가 편의점으로 들어가면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태가 반겼습니다. 일하는 태 옆에 멀뚱히 앉아있으려니 눈치가 보여서, 나는 계산대 뒤 창고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창고는 간이문을 사이에 두고 계산대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창고 벽에는 곰팡이가 기괴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닥에선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스산한 바깥바람도 들어왔습니다. 내가 몸을 떨자 태는 담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태가 바코드를 찍고 돈을 정리하고 물품을 진열하는 동안 나는 창고에서 담요를 덮은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냉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참을 만했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 태는 간이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태와 나는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인 콜라를 마셨습니다. 폐기 예정인 삼각김밥을 먹었습니다. 팔고 남은 것이라니, 나는 약간 께름칙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한 입 베어먹지 먹지 않고 깨작거렸습니다. 반면에 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걱우걱 먹어치웠습니다. 휴대전화로 영화도 내려받아 봤습니다. 열에 아홉 편은 야한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태가 일방적으로 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가까웠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내가 태보다 말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태가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별 의도는 없어 보였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외동인데.”
  내게도 동생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동생을 지우기 전, 부모님은 내게 동생 갖고 싶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동생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고기 팔아 번 돈으로 세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습니다. 만약 동생이 태어났더라면 나는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레스토랑에서 열 살 기념 생일파티를 열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급식비를 지원받았을 것이며 대학도 못 다녔을 것입니다. 특히 아파트는 꿈도 못 꿨을 것입니다. 전세자금도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월셋집만 전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나는 이야기를 그쯤 하고선 너는? 되물었습니다.
  “여동생 셋이요.”
  두 번째 질문은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병아리 한 마리.”
  병아리를 기른 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서 아이들 틈에 끼어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한 명씩 헤치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맨 앞에선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가 병아리를 팔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상자 속, 병아리 수십 마리가 우글댔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중 한 마리를 집었습니다. 병아리는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습니다. 노란 털은 민들레처럼 보송보송했습니다. 내가 만지자 병아리는 작은 부리를 움직여 삐약, 울었습니다. 자신을 여기서 구해달라는 듯 삐약, 삐약. 어린 나는 병아리의 간절한 울음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에게 오백 원을 주고 병아리를 까만색 봉투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내 이불에서 재우고, 내가 남긴 음식을 먹이며 며칠간은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러나 이내 병아리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챙겨주지 않았는데도 병아리는 쑥쑥 자랐습니다. 노란색 털이 빠지고 흰색 털이 돋았습니다. 작았던 부리가 커졌습니다. 삐약, 하고 울지 않고 꼬끼오, 하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복날에 잡아먹었어.”
  태는 불쌍하다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복날, 식탁에 올라온 삼계탕이 내가 기른 병아리인 것을 깨닫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부모님은 침착하게 나를 달랬습니다. 어차피 모든 동물은 고기이며, 고기는 먹는 것이라고요. 널 위해 죽었는데 네가 먹지도 않으면 병아리의 죽음이 헛되어진다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병아리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눈물을 닦고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연한 닭고기가 퍽 맛있었습니다.
  “어차피 다 고기인데 뭐.”
  태는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나는 강아지 네 마리를 길러요.”
  태의 대답을 듣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태와 나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말해봤자 이해도 못할 텐데. 그럴 바엔 아예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에 당첨되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말만 안 했다 뿐이지, 다른 짓은 다 했습니다. 창고에서 태와 나는 손을 잡았습니다. 키스를 했습니다. 아, 섹스도 몇 번. 부끄러워하는 태 대신 내가 주도했습니다. 은밀한 섹스를 위해선 시간을 잘 정해야 했습니다. 새벽 한 시 즈음이 적당했습니다. 그 시간대가 가장 한가했습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걸 확인하면 나는 우선 편의점 구석에 비밀스럽게 진열된 콘돔을 집어 들었습니다. 창고로 들어가 간이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종이상자 위에 담요를 깔고 태에게 콘돔을 건넸습니다.
  “빨리 끼워.”
  태는 콘돔 사용에 영 서툴렀습니다. 내가 재촉하면 태는 더욱 허둥댔습니다. 콘돔과 씨름하는 태를 기다리자니 속이 터져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이리 내.”
  보다 못한 내가 태를 상자에 눕히고 콘돔을 끼워줬습니다. 콘돔을 끼운 뒤, 나는 곧바로 태 위로 올라탔습니다. 옷을 다 벗지는 않았습니다. 행여나 손님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큰일 날 테니까요. 아랫도리만 벗었을 뿐인데, 피부에 냉기가 확 와 닿았습니다.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습니다. 태 위에서 몸을 흔들다가 매끄럽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피부를 느낄 때. 달뜬 숨을 들이쉬다가 옷에 밴 고기 비린내를 맡을 때. 그럴 땐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마침 눈높이가 창문과 딱 맞았습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가 몇 층까지 지어졌는지 세어보았습니다. 어느새 공사가 많이 진전되어 있었습니다. 십오 층, 이십 층, 이십오 층, 삼십 층……. 벌써 삼십오 층까지 지어졌구나. 곧 완공되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태는 너무 흥분해서 내 웃음 따위엔 관심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섹스를 마치고, 끈끈하게 젖은 콘돔을 벗겨낸 뒤에야 태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왜 웃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저 계속 웃었습니다.


                                          5

  “오늘 우리 집에 강아지 보러 가요.”
  어느 날, 편의점 창고에서 태가 말했습니다. 나는 삼각김밥을 먹다 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태를 쳐다봤습니다.
  “약속했잖아요.”
  약속은 무슨 약속. 반박하려는 순간 기억해냈습니다. 자신의 집에 개 보러 오라는 태의 말에 응, 대답해버렸던 것을. 약속했으니 잡아뗄 수 없었습니다. 정육점에서 일하면서 나는 약속 어기는 사람을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거리용 소고기 두 근이 필요하대서 애써 포장해놨는데 안 찾으러 오는 손님. 또는 돼지 목살을 외상으로 가져가고선 돈을 갚지 않는 손님을 경멸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나는 핏물 밴 손가락으로 고기 비린내 풍기는 옷을 가리켰습니다.
  “나, 이 꼴로 가도 돼?”  지금은 꼴이 말이 아니니까 다음에 가자. 그런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습니다. 태는 소심했지만, 고집이 은근히 셌습니다. 이번만큼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태가 앞장섰습니다. 나는 뒤따랐습니다. 신발에 추라도 매단 듯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딱히 가기 싫을 이유도 없었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습니다. 내가 느릿느릿 걷자 태는 빨리 오라며 재촉했습니다. 건설현장 외벽을 따라가다 보니 구형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이 나왔습니다. 동쪽 주택가였습니다. 동쪽 주택가는 더럽고 위험하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실제로 가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소문대로였습니다. 주택가는 전체적으로 으슥했고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나부끼는 현수막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현수막엔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 집은 내가 지키리. 재개발 결사반대.
  “아파트 짓는다고 주택들을 허물었잖아요.”
  묻지도 않았는데 태가 설명했습니다.
  “재개발 계속되면 또 어느 집이 철거될지 모르니까 반대하는 거예요.”
  “반대하면 안 되지.”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재개발 반대라니 말도 안 돼.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인 사람도 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목소리 높여 주장했지만, 태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습니다.
  주택가엔 개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습니다. 일단 주택가 한가운데에 애견샵이 있었습니다. 정사각형 유리케이지 안에 담긴 작은 개들은 앞발로 유리케이지를 벅벅 긁으며 울었습니다. 애견 미용학원도 주택가 곳곳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애견 미용학원에선 애견샵의 개보다 조금 큰 개들이 짖었습니다. 주택 문 앞에 쇠사슬로 묶인 거대한 개들은 더욱 맹렬하게 짖었습니다.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온갖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은 주택가 끝자락의 한 주택이었습니다. 다른 주택들과 마찬가지로, 그 주택도 낡고 추레했습니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졌고, 지붕 새가 들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태는 현관문 열쇠 구멍에 녹슨 열쇠를 넣고 돌렸습니다.
  “진짜 여기가 너희 집이야?”
  “네. 기억 안 나요?”
  “뭐가.”
  “저번에 주소 알려준 적 있는데.”
  그제야 태가 집 주소를 읊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차라리 그때 귀담아들을걸. 나는 후회했습니다.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집 안으로 발 들이기가 무섭게 똑같이 생긴 개 네 마리가 우르르 달려 나왔습니다. 개들은 곧바로 태에게 안겼습니다. 팔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채 붉은 혀로 태의 얼굴을 마구 핥았습니다. 왈왈, 짖으며 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말도 안 돼. 개 네 마리도 말이 안 되고 집도 말이 안 돼. 나는 생각했습니다. 태의 집은 너무나 비좁았습니다. 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편의점 창고보다도 좁은 거실에 화장실 하나만 달랑 달린 구조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단칸방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바닥엔 개털이 뭉텅이 채로 굴러다녔습니다. 얼마 머물지도 않았는데, 내 양말에 개털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눅눅한 개 냄새도 진동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집에서조차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태의 집은 사람의 집이라기보다는 개들의 서식지 같았습니다.
  태는 자신의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부모님은 일을 나가서 집에 없었습니다.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첫째 여동생과 둘째 여동생이 쭈뼛쭈뼛 인사했습니다. 그보다 더 어린 막내 여동생도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동생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태의 여동생들은 유행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을까.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연 적이 있을까. 혹시 급식비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태는 편히 앉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앉을 자리는커녕,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태와 나, 여동생 세 명과 개 네 마리만으로도 집이 꽉 찼습니다. 나는 결국 다리를 꿇고 앉았습니다. 다리가 찌릿찌릿 저렸습니다.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나에게 꿈틀꿈틀 다가왔습니다. 개는 나를 탐색이라도 하듯 납작한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리곤 내 다리 위로 천천히 기어올랐습니다. 내 다리 위에서 몸을 웅크렸습니다. 태는 개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쓰다듬어 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르던 병아리를 먹은 뒤로 동물을 만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다리에 전해지는 무게를 버거워하며, 거북한 기분으로 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가 조금 불룩했습니다. 조금 불룩한 것도 아니고 명백히 불룩했습니다. 설마. 나는 개의 배와 태를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새끼 가졌어요.”
  태는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개가 새끼 밴 걸 내게 보여주고 싶었다고요. 그래서 날 집으로 데려온 것이라고요.
  “낳게 할 거야?”
  “당연하죠.”
  또 새끼라니. 맙소사. 이미 개를 네 마리나 기르면서. 나는 태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비좁고 낡은 집에 살면서. 대학도 못 다니면서. 주간 근무로도 모자라 야간 근무까지 하면서. 지금도 충분히 가난하면서. 멍청하게 살면 안 된다고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집에서 벗어나려면 참아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더 열심히 벌고 아껴야 해.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쉬어도 안 돼. 옷에 고기 비린내가 배고, 손톱이 피로 물들 때까지 일해도 부족하단 말이야. 그런데 새끼는 무슨.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움직였습니다. 웅크린 개의 뒷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개의 불룩한 배는 매끄럽고 따뜻했습니다. 나는 다섯 손가락으로 그 불룩하고 매끄럽고 따뜻한 배를 비틀었습니다. 뱃속에서 새끼들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습니다. 새끼는 안 돼. 더 이상의 새끼는 안 돼. 점점 더 세게, 더 강하게 비틀었습니다. 태와 여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말렸습니다. 뭐야. 지금 뭐하는 거예요. 소리치면서 내 팔을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개가 눈을 번뜩이더니 날카로운 이빨로 내 오른손 엄지를 물었습니다. 꽉 물고는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씹어 먹을 기세였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파, 로 시작된 외침은 갈수록 이상해졌습니다. 꺼져. 창피해. 싫어. 더러워. 그렇게 소리치면서 왼손으로 개를 내리쳤습니다. 아빠가 골절도로 고기를 자르듯, 엄마가 미세도로 잔뼈와 지방과 근막을 제거하듯,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습니다. 갈색 반점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흰색 몸뚱이를 내리쳤습니다. 불뚝 튀어나온 눈과 납작한 코와 비뚤어진 입을 내리쳤습니다. 이윽고 개가 깽,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졌습니다. 나는 쓰러진 개를 벽에 던졌습니다. 내동댕이쳐진 개는 조금 꿈틀대더니 이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죽은 개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피로 범벅된 개는 개가 아니라 고기, 내가 날마다 비닐로 포장하는 고기 같았습니다. 나는 오른손 엄지에서 흐르는 피를 옷에 문질러 닦았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태의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태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홀로 되돌아갔습니다.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주택가에 태가 서 있었습니다. 커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태의 눈이 개와 닮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개를 닮은 눈과 내 눈이 마주쳤습니다. 태는 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개 짖는 소리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모든 동물은 고기인데 뭐.
  나는 다시 달렸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콜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별안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를 들자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파트는 오십 층이었습니다, 드디어.

                                          6

  지금은 이천십육 년입니다. 나는 오십 층 아파트에 삽니다. 그리고 날마다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마을의 풍경은 아찔합니다. 동쪽 주택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구형 주택들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애견샵과 애견 미용학원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태의 집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는 어디로 갔을까. 여동생 세 명과 개 네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그날 태의 집에서 도망친 이후로 나는 태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다시는 태가 일하는 편의점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태와의 추억을 지우려고 애썼습니다. 사실 애썼다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추억이랄 것도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편의점 창고에서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인 콜라와 폐기 예정인 삼각김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야한 영화를 본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내 옷에선 고기 비린내가 풍기지 않습니다. 피로 붉게 물들었던 손톱도 깨끗해졌습니다. 오른손 엄지는 희미한 이빨 자국만을 남긴 채 아물었습니다. 완전히 아물었지만, 요즘도 종종 욱신댑니다. 특히 태를 생각할 때면 통증이 더욱 심해집니다. 욱신대다 못해 물어뜯기는 느낌까지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유명하다는 병원에 가보았습니다. 진통제도 종류별로 복용했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냥 이빨 자국을 꾹 누르며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시 오른손 엄지가 욱신댑니다. 나는 집 안을 서성이다가 아무 방에나 들어갑니다. 방에서 몸을 한껏 웅크립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제36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당선소감

 

낮잠 자던 중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도무지 실감이 안 나서 한참 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요즘 Family Of The Year‘Hero’라는 노래를 자주 듣는다. 그 노래엔 나는 영웅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요 그저 모두와 싸우고 싶을 뿐이에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서식지는 동쪽의 주인공도 그런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주인공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아주 느리게 쓰는 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소설 주인공의 삶과 내 삶이 동시에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이 정말 좋아서 계속 소설을 쓴다.

주변 친구들이 북돋아주지 않았더라면 서식지는 동쪽은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나를 응원해 준 친구들과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부모님, 할머니, 이모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꼭 소설가가 되고 싶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쓰겠다. 많이 쓰지는 못해도,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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