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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 돌멩이가 되다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5-05-18 18:10:46


●제35회 계명문화상 소설부문 가작(2)

 

 

돌멩이가 되다


임영성(계명대학교·문예창작학·1학년)



  여자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갔을 때 나는 직감했다. 그 손이 곧, 나의 뺨을 치리라는 것을.
  찰싹-
  그 가녀린 흰 손이 둔기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내 뺨은 새빨갛게 질린 후였다.
  “손님, 왜 그러세요.”
  서빙하고 있던 알바 동기가 서둘러 달려왔다. 순식간에 가게에 있던 손님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됐다. 나는 눈물이 맺힌 채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알바 동기가 여자의 팔을 잡았다. 파랗게 염색한 짧은 커트 머리의 여자. 가슴을 드러낸 티와 짧은 치마, 그 아래로 드러난 통통한 다리, 풍기는 술 냄새, 목줄을 맨 애완견.
  나는 여자에게 개를 가게에 들일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물론, 그 말을 하는 내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었다. 절대 여자를 우습게 봐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느꼈나보다. 원래, 말이란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
  “손님한테 어디 눈을 부라려?!”
  가게 조명이 처음으로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알바 동기가 여자를 타이르러 직원 관계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게 배경음처럼 깔렸다.
  잠시 뒤, 사장이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가게 밖에 새벽이 찾아와 있었다.

  가끔씩, 그런 걸 물어보잖아. ‘너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싶어?’라고.
  그러면, 애들은 그 참새 부리 같은 입술로 조잘댔지. “나는 하늘을 날고 싶어.”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나는 순간이동을 하고 싶어.” “나는….”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가, 내게 발언권이 오면 어린 나는 이렇게 말했어.
  “나는…감정을 못 느끼고 싶어.”
  내 말에 병아리처럼 작은 아이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어. 그러곤 다시 물었어. 뭐? 나는 정말 애들이 못 들은 줄 알고 또박또박, 큰 소리로 다시 말했어. 나는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럼, 자신이 잘 못 들은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애들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본 것처럼 눈만 꿈뻑였지. 나는 수학 선생님처럼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어. 감정을 못 느끼면 슬픔도 못 느끼니까. 그러니까, 나는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그래도 애들은 이해를 못했지. 어린 나는 그때부터 수학 선생님의 마음을 공감하기 시작했어.
  다들 행복했나 봐, 내 말에 공감하지 못한 걸 보면. 그래. 그 시절, 걔들은 부모님과 외식도 하고, 생일파티도 열고, 놀이동산도 갔지. 엄마 아빠는 하하 호호 화목했을 거고, 자신의 방은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을 거야.
  근데, 있잖아. 나는 그렇지 않았어. 나는 부모님과 외식도 못했고, 생일파티도 열지 못했고, 놀이동산도 가지 못했어. 엄마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이혼했고, 나에겐 내 방이 없었어. 그런 내가 유치하게 하늘을 날고 싶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더 우습지 않아?
  어린 나는 대부분의 날이 어두운 파란색이었어. 그래서 나는 크레파스로 색칠할 때도 어두운 계열의 색만 썼어. 밝은 계열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어린 나는 생각했어. 언젠가는 밝은 계열의 크레파스만 쓸 날이 올 거라고. 어두운 계열의 크레파스가 다 닳아 없어지면 어쩔 수 없이 밝은 계열의 크레파스를 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어허, 근데. 이 크레파스들이 참 안 닳는다. 닳는 것 같아서 보면 여전히 남아있어. 오히려 전보다 길이가 길어진 거 같아. 나이는 계속 드는데, 나는 이제 20살인데. 왜 닳지는 않고 계속 길어지기만 하는 거야.  
  나이가 들어도 왜 여전히 슬프기만 한 거야, 내 인생.
  나는 20살이 된 지금도 변한 게 없어. 갖고 싶은 능력도 변함없어. 감정을 못 느끼는 거. 그게 여전히 내가 갖고 싶은 능력이자, 마지막 소원.

  어두운 파란색의 새벽, 작은 건물이 홀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기오염으로 더럽혀진 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 같았다. 나는 홀린 듯 건물로 다가갔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선명하게 보인 건물은 정말 작았다. 1평정도 크기에 성인 남자 키만 한 높이. 초록색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지붕 아래로 달린 노란 전등, 카운터,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아담한…
  돌멩이.
  나는 어리둥절했다. 돌멩이 하나가 건물 안에 놓여 있었다. 잘 풍화되어 표면이 매끈하고, 팥 색을 가진 타원형의 돌이었다. 주택이 밀집된 도로에 덩그러니 이 건물이 놓여 진 것도, 그 안에 돌멩이가 있는 것도 이상했다. 대충 살펴보다가 내가 집에 가려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어이.”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이 작은 건물 안에서 난 소리 같았다. 돌멩이. 나는 건물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함, 쿵쾅거리는 심장. 나는 이번엔 뛰려고 했다.
  “멈춰!”
  “!”
  “네가 생각하는 그게 나야.”
  일정한 음의 목소리. 꼭, 기계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가게에서 있었던 불쾌한 사건을 잊을 만큼 긴장했다. 젖어 있던 눈도 불안으로 가득 차 메말랐다. 나는 눈동자만 굴려 돌멩이를 쳐다봤다. 이내, 돌멩이에서 장난감 손 같은 게 튀어 나왔다.
  “으악!!!!!”
  내 비명 소리가 고요한 주택가 사방에 바늘처럼 꽂혔다. 돌멩이는 신경 쓰지 않고 등 뒤에 있던 무언가를 카운터 선반 위에 올렸다. 팻말이었다. 그리고 적혀 있는 글씨.
  ‘감정을 비싸게 삽니다.’
  나는 온몸에 빠르게 도는 피를 느끼며 그 팻말을 눈동자에 담았다.
  “감정 가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판매자님.”
  돌멩이는 공손하게 말했으나, 여전히 목소리는 기계처럼 차갑게 들렸다.
  “감정…가게?”
  “감정을 파시겠습니까?”
  나는 돌멩이가 말한다는 상황 자체를 받아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돌멩이가 하는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돌멩이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꿈인가?”
  “꿈이 아닙니다.”
  돌멩이가 일정한 간격의 리듬으로 말했다.
  “감정을 파시겠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돌멩이가 대답을 기다리다가 말했다.
  “나는 감정이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돌입니다. 하지만, 나는 감정이란 걸 갖고 싶습니다. 당신은 돈이 필요하죠? 나는 당신에게 평생 즐기고도 남을 돈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감정을 나에게 주세요. 어때요? 좋은 조건 아닙니까?”
  그래,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느낀 기계음은 그 이유였구나. 나는 이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기다가, 내가 원하는 걸 돌멩이도 원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이 없었으면 했고, 돌멩이는 감정을 갖고 싶어 했다. 돌멩이는 돈을 주고 싶어 했고, 나는 평생 즐기고도 남을 돈이 필요했다.
  이게 꿈이든 뭐든 감정을 팔아야했다.
  “…감정을 팔겠어.”
  “교환 성립.”
  돌멩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조그마한 손을 내게 뻗었다. 짧은 손이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내 명치로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놀랄 시간도 없었다. 그 손이 내 몸에 파고들었다. 주사바늘이 들어간 것처럼 살짝 따끔거렸다. 나는 당황하여 돌과 내 명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몸 속에서 꿈틀대던 돌멩이의 손이 천천히 나왔다. 상처도, 뚫린 자국도 없었다. 내 몸 속에서 무언 가를 꺼낸 손이 돌멩이에게 다시 돌아갔다. 돌멩이의 손에서 무언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원석이었다. 돌멩이의 손만 한 크기에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나는 보석. 돌멩이는 원석을 손바닥 위에 굴리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와아-감정이다. 드디어, 감정을 손에 넣었다.”
  감정을 손에 넣은 감정 없는 돌멩이의 목소리.
  “자, 네가 원하는 걸 얻었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걸 줘야지.”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에 대해 당황치 않고 소리쳤다.
  “내일이 되면 너는 감정이 없을 거고 돈은 차차 너에게 지불될 거야. 이제 돌아가. 가게는 폐업이야.”
  방금까지와 달리 반말로 돌멩이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나는 건물에서 멀어지다가 멈춰 서서 뒤돌아보기를 반복했다. 가다가 뒤돌아보면 그 건물이 사라지고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건물은 여전히 노란빛을 내며 거기 서 있었다. 벌써, 주변엔 어둠이 옅어지고 있었다.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현실이었다는 걸.
  그걸 깨달은 계기는 텔레비전 위에 있던 복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평소처럼 휴일을 보냈다. 일어나서, 씻고, 오줌을 누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운동을 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텔레비전에는 로또 번호를 추첨하고 있었다.
  “자, 첫 번째 번호가 나왔습니다. 첫 번째 번호, 11번!”
  남자 호스트가 웃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는 복권을 왼 손에 쥐고 오른 손으로는 물을 마셨다. 호스트가 부르는 번호와 복권 번호를 비교했다. 번호가 계속 일치했음에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침내 호스트가 마지막 번호를 불렀다. 마지막 번호도 일치했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하게 복권을 쥔 손을 내렸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돌멩이가 내 감정을 가져간 게 사실이었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아무 기복도 없었다. 나는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나는 복권 당첨금으로 건물 하나를 샀다. 내가 살고 있는 월세 방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건물이다. 처음 이곳에서 자취방을 구할 때 한참 넋이 나가 쳐다보았던 3층짜리 주택.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벽이 연분홍색이었다. 창문은 흰색. 그것만으로 나는 이 건물이 좋았다. 평수가 넓은 만큼 월세가 비싸서 이 건물에 입주할 수는 없었지만, 그 건물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집을 나설 때 마다 이 건물을 볼 수 있게.
  그런 내가 이 건물을 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 심장은 더 빨리 뛰지 않았다. 아직, 원하는 걸 덜 이뤄서 일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건물을 산 지 얼마 안 되서 두 번째 소원을 이뤘다. 건물 1층에 카페를 연 것이다.

  카페는 성행했다. 그것은 예정 된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메뉴는 열 개 이하였다. 가게가 넓은 것에 비해 꾸며진 것은 얼마 없었다. 가게 안에 있는 거라고는 탁자, 의자와 같이 최소한의 것들과 창가에 작은 선인장 화분뿐이었다. 그런데, 오전이든 오후든 엑스트라처럼 규칙적으로 사람들이 오갔다. 그들은 대부분 많은 메뉴를 시키고 일찍 가게를 나섰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했다.
  많은 손님을 감당할 수 없던 나는 종업원을 하나 구했다. 나와 같은 20살 여자. 이름은 소은. 턱 밑까지 오는 단발머리였다. 소은은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 했다. 아르바이트의 이유는 용돈 벌이를 위해. 그녀는 잘 웃었고, 그 모습에 가식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비유하자면 꺾인 적 없는 꽃 같았다. 나는 이 꽃을 꺾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카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사가 더 잘 됐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더 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카페 카운터 일을 그만뒀다. 그만 둔 이유는 즐겁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 후 자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시내를 돌아다녔다. 돌멩이를 만나기전까지만 해도 시내를 가는 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돈에 연연하지 않고 아무 물건이나 사는 것을 꿈꿨다. 지금의 나는 그것을 실행한다. 닥치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전부 샀다. 내 두 팔이 쇼핑백으로 가득 찼다. 어느 순간부터는 쇼핑백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저녁이 되서 밥을 먹기 전 나는 그 쇼핑백들을 쓰레기통 옆에 버렸다. 도미노처럼 쇼핑백들이 쓰러졌다. 그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두 번째로는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시내에서 만난 남자였다. 그는 나를 스쳐가던 남자들 중 가장 잘생겼다. 키가 나보다 십 센티 이상이었고,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이국적이었다. 나는 지나가던 남자를 붙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랑 사귀자, 네가 원하는 걸 줄게. 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나와 그 남자만 서 있었다. 남자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말을 해석하는 중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내 한 입 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 날, 나는 남자를 따라 모텔이란 걸 처음으로 갔다. 아무 떨림도 없었다. 남자가 내 옷을 공격적으로 벗겨도 무심했다. 과거의 나였으면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빨간 조명 아래 남자는 참 열심히 나를 탐했지. 나는 남자가 나를 탐하는 동안 천장만 바라봤다. 천장 아래로 파리가 윙윙거렸다.

  우리는 두 달 간 사귀었다. 그동안 나는 남자에게 스포츠카와 보드카를 사주었다. 더 이상 남자에게 돈을 투자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 내가 남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남자는 한참을 매달리다가,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모텔에 가자고 했다. 나는 굳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모텔에서 남자는 스포츠카를 운전할 때처럼 나를 거칠게 다루었다. 나는 이번에는 침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세 번째로 여행을 갔다. 처음에는 국내만 돌아다니다가, 통역사를 데리고 해외로 나갔다. 매체로만 접했던 관광지를 직접 가보았다. 통역사는 내 옆에서 연신 감탄했다. 관광지를 접할 때 마다 매순간 자신의 느낌에 대해 나에게 늘어놓았다. 나는 시큰둥했다. 여행지의 마지막 날 밤, 통역사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차가워요. 아무 표정도 없어서 가끔은 무서워요.”
  그녀에게는 술 냄새가 났다. 나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 껍데기를 벗겨서 내 얼굴에 붙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늘어진 고무줄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여행을 마친 후에는 계속 방에서 나오지 않고 책만 읽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이 재밌어질까’가 나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텅 비었던 방에 책이 쌓여갈 때쯤이었다.
  “사장님.”
  똑-똑, “들어와.” 내가 말하고,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쌓여있던 책이 쏟아지고.
  누군지 몰라 이름을 물어보니, 소은이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그녀는 이제 머리 길이가 가슴까지 왔다. 표정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여기 오면 사장님을 볼 수 있다고 해서…책을 쏟아서 죄송합니다.”
  소은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용건이 뭐지?”
  “그게…저…월급 말인 데요….”
  그녀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갑과 을의 관계. 나는 자꾸만 그녀가 과거의 나와 겹쳐보였다. 그녀였다가, 눈을 감았다 뜨면 그녀가 나였다가. 나는 내가 ‘갑’이란 타이틀을 딴 것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그녀는 월급을 가불해달라고 했다. 그것도 1년 어치를 미리. 천이백만 원.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또 다시 주저했다.
  “엄마가 아파서….”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고민 없이 바로 천이백만 원을 인터넷 뱅킹으로 입금했다. 소은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그늘이 졌다. 볼 때마다 명랑했던 그녀였기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그녀가 방을 나가고 나는 계속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꽃을 꺾자.
  악마가 내게 속삭였다. 그러면 네 인생이 재밌어질지 모르잖아. 나는 방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곤 방에 있는 가장 두꺼운 책을 집어 들어 어둠이 내린 창문에 던져버렸다. 쨍그랑-나는 그러고는 악마에게 대답했다. 그래, 자극이 필요해.

  나는 구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사준 스포츠카를 판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볼이 형편없이 페어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다시 사귀자고 매달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를 만나자고 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야.
  “그럼?”
  그가 애원하듯 물었다.
  나는 그에게 오만 원 지폐 뭉텅이를 내밀었다. 그의 눈이 돈의 액수만큼 커졌다. 그 눈동자는 죽은 물고기의 그것과 비슷했다. 혀를 헤벌레 내민 그에게 나는 돈에 대한 조건을 말했다. 네가 잘하는 걸 하면 되는 거야. 내 말을 들은 그는 미친놈처럼 웃었다. 아니다, 그는 미친놈이었다. 나는 미친년이었고.

  그 일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졌다. 소은이 월급을 가불 받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 날은 바람이 불지 않았고 온도가 15도를 웃돌았다. 내가 소은에게 저지를 일과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구 남자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열심히 카페 일을 하던 소은도 불렀다. 소은은 저번 보다 한결 밝아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의 이면은 새카맸다.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그녀의 얼굴 껍데기 한 꺼풀을 벗겨내면, 검은 또 하나의 얼굴이 드러날 것만 같았다.
  나는 소은을 설득했다. 멀뚱한 표정을 짓고 방에 들어온 소은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소은은 처음에는 강력 부정했다. 방을 뛰쳐나가려는 소은의 어깨를 힘껏 잡았다.  한 달 전 네일숍을 다녀온 내 빨간 손톱이 소은의 가녀린 어깨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소은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내 설득을 들어야했다.
  “한번만이야. 한번만 하면 천만 원이 없던 일이 된다고. 일 년 동안 빚만 갚고 있으면 네 생활비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또 빚을 지려고 그러는 거야? 이것만 하면 하루 만에 네 빚이 없던 일이 되는 거라고. 다른 여자애였다면 벌써 내 제안에 응했을 거야. 너, 이 제안을 거절하면 나중에 후회할거야.”
  소은의 얼굴이 조각상처럼 굳어있었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소은을 설득하지 않았다. 소은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길을 가던 젊은 여자가 의미 없이 소리를 질렀다.      
  “할게요.”
  소은의 무거운 동의. 나는 기뻐야해야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 일은 빠른 시간 내에 이뤄졌다. 나는 소은을 내 방 옆에 있는 손님방으로 인도했다. 소은은 싸구려 구제관절 인형처럼 뻣뻣하게 나를 따라왔다. 나는 테이블로 안내하는 웨이터처럼 손님방 문을 열어 소은을 맞이했다. 방에는 구 남자친구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방문에 기대어 앉아 그들이 내는 소리를 엿들었다. 처음에 소은은 비명을 질렀다. 살려 달라 소리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피커 볼륨을 줄이듯 그 소리는 낮아졌다. 스피커 볼륨을 내린 건 아마 구 남자친구일 것이라. 나는 그가 소은을 어떻게 다룰지를 상상했다. 나처럼 거칠게 다룰까, 아니면 상냥하게 다룰까. 들리는 규칙적인 소리는 거친 쪽에 가까웠다. 나는 상상하는데 더 편해졌다.

  잠시 후, 그가 먼저 방에서 나왔다. 그는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가지를 들고 가는 그의 가벼운 뒷모습. 나는 여전히 열린 방문 옆에 앉아 있었다.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은의 것이었다. 나는 소은이 부러웠다.
  꺾인 꽃도 여전히 꽃이구나.
  나는 그 날 그녀 대신 카페로 나가 서빙을 했다. 다시 손님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카페에 나오지 않았다. 꽃은 어느 바람에 날아간 걸까.
  날아간 꽃의 행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소은에 대한 소문이 가스가 새는 것 마냥 서서히 나의 건물에 퍼졌다. 우리 가게서 일하던 여자애 있잖아, 걔가 어젯밤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대. 헐? 나도 종업원 언니한테 들은 거야. 왜? 그건 나도 모르지. 엄청 안 좋은 일이 있었다나 봐. 걔네 엄마도 병으로 얼마 전에 수술 받다가 돌아가셨대. 불쌍해. 응, 불쌍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들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동정의 크기는. 나는 무표정하게 그 이야기를 엿 듣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책으로 어질러진 방에는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최근에 시작한 거다. 불을 붙이자 회색 연기가 나를 반겼다. 나는 무심하게 연기를 후-불어 죽였다.

  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쾌락적 행위를 다 해보았지만, 유의미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고로 내게 남은 건 내가 감정을 판 돌멩이를 찾는 일 뿐이었다. 그것이 내게 유일하게 남은 유의미한 일.
  나는 돌멩이를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겨울의 밤이었다.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에서부터 그 시절 내가 걸어갔던 동선을 똑같이 따라 걸어갔다. 그때의 기억이 서서히 생각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는 잘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막혀 있었다. 골목이 있던 자리에는 못 보던 건물 하나가 육중한 몸을 내려놓고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을 멍청하게 올려다봤다. 여기가 아닌가? 아니다, 분명히 맞다. 내 속의 내가 그렇게 주장했다.
  하는 수 없이 멀리 돌아서 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감정을 팔고 난 후 그 몇 개월 동안 건물 한 채가 지어졌을 지도 모르니까. 나는 건물을 빙 돌아서 돌멩이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그 길가의 중심에 도착했다.
  건물은 없었다. 그 돌멩이가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으로 조그맣던 건물은 흔적조차 없었다. 그냥 길이었다. 나는 건물이 있던 자리에 건물인 마냥 잠시 앉아 있었다. 감정을 되 사고 싶었는데. 그래서 허탈감이라도 맛보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같이.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그 전에 카페 직원들을 하나하나 해고시켰다. 그들 중 몇 명은 내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손길을 잔인하게 뿌리쳤다. 카페는 문을 닫았다. 매일 사람들의 발길로 활기를 띄던 건물은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2층에 세 들어 살던 월세주민도 다 내쫒았다. 그들은 내게 침을 튀겨가며 욕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인공적인 미소를 띠어 보였다. 모든 걸 정리하고 나 혼자 건물에 남게 되었다.
  나는 3층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배달을 시키면 됐다. 심심하면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 됐다. 운동을 하고 싶으면 방에 있는 런닝 머신을 사용하면 됐다.
  굳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의 체취나 숨결 같은 게 내게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외로워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 일반적인 사람이었다. 나에겐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 없었다.
  감정.
  잠에만 들면 그 날의 일이 꿈에서 재현되었다. 손님에게 뺨을 맞은 새벽, 돌멩이에게 감정을 판 날의 일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좁은 월세 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잤던 날이. 나는 방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책을 치우고 거기에 빈 술병을 채웠다. 화장실 변기에는 언제나 토사물이 출렁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에서 먼지와 몸을 섞고 있던 나는 창문에 비친 벚꽃 가지를 보고 상체만 일으켜 앉았다. 익숙한 실루엣.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밖으로 나갔다.
  건물 앞에 봄이 와 있었다. 나무 가지 위로 벚꽃이 하얗게 속살을 내밀고 있었다. 길가에는 데이트를 하는 젊은 남녀와 옆 가방을 메고 어딘가를 서둘러 나서는 늙은 여자,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나를 스쳐가는 어린 남학생이 내가 멈춰 서 있는 동안 지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3D 인간이라 낯설었다. 나는 햇빛이 적응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보고 있던 나는 멈칫했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를 향해 질주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꼭 성난 황소 같았다. 나는 그에게 새내기 투우사였다. 나는 투우사의 준비물인 빨간 천이 없었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그의 이목을 끌 빨간 천이 없었으니까.
  미성숙한 투우사는 황소의 뿔에 들이받혔다. 아니, 나는 그가 지니고 있던 흉기에 복부를 찔렸다. 솔직히 아프진 않았다. 감정과 함께 감각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나는 복부에 빠르게 번지는 피를 무시하고 그의 얼굴을 보려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은 숨길 수 없었다. 눈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나는 그 눈이 어쩐지 소은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건물 안으로 끌고 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는 나를 몇 번 더 찔러댔다. 그의 거친 숨. 나는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가 칼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 후로는 눈앞에 천막이 처 진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쉬웠다. 죽는 순간에도 슬프지 않은 것이, 비통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지 않은 것이, 분노하지 않은 것이, 그립지 않은 것이.

  그 뿐이었다.
  서서히 나는 죽어갔다.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은 건물 안에서.


*


  나는 가지고 싶었어. 이거 말이야. 산 것들만 느낀다던, 생명이라 불리는 것만 느낀다던 이거.
  감정.
  돌멩이는 자신의 몸에 작은 구멍을 팠다. 인간의 심장이 있는 위치를 모방하여 자신의 몸 중심 부 왼쪽에 동그란 구멍을 만들었다. 돌멩이는 그 구멍에 인간에게 산 감정을 넣었다.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보석이 돌멩이의 몸속에 들어갔다. 보석은 돌멩이가 움직일 때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돌멩이는 걸어갔다.
  허세로 가득한 인간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걸었다.
  걷는 돌멩이의 몸속에서 감정이 흔들렸다.
  탁-탁 딱딱하고 차가운 돌과 보석이 부딪히는 소리.
  감정은 결국 돌멩이의 몸에서 굴러 떨어졌다.
  굴러 떨어진지도 모르고 돌멩이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홀로 남은 감정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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