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의용공학과 학생이 바이오데이터를 분석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익혀야 했다. ECG나 EEG 데이터를 불러오고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작성하다 보면 사소한 오류 하나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AI에게 코드의 오류를 물어보기도 하고, 분석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논문을 읽거나 새로운 의료기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도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의용공학은 원래부터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분야다. 의학과 공학의 경계에서 출발한 학문인 만큼 인공지능과 만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최근의 변화는 조금 특별하다. AI가 단
순히 하나의 새로운 기술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하는 방법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 의용공학 수업에 들어온 AI
의용공학에서 다루는 데이터는 매우 다양하다. EMG와 EOG 같은 생체신호가 있고, 엑스레이나 CT와 같은 의료영상도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얻는 데이터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데이터에서 사람의 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특징을 찾는 일은 AI가 특히 잘하는 분야다.
학생들의 AI 활용도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생체 신호를 분석하는 코드를 작성하다 막혔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떤 분석 방법이 적절한지 물어볼 수도 있다. 여러 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개념을 설명받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 연구 문제로 구체화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코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많은 시간을 썼다면 이제는 ‘무엇을 분석할 것인가’, ‘이 결과가 왜 나왔는가’를 고민하는 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AI가 가져온 가장 반가운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잘 쓰는 것보다 잘 의심하는 것
물론 편리함에는 함정도 있다. AI가 내놓은 답은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때로는 상당히 전문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틀린 답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의료와 관련된 분야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AI가 작성한 ECG 분석 코드가 정상적으로 실행된다고 해서 분석 방법까지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데이터가 적절하게 처리됐는지, 사용한 분석 방법에 문제가 없는지, 결과를 의학적으로 그렇게 해석해도 되는지는 결국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의용공학에서 AI를 잘 활용한다는 것은 질문을 잘 입력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준 코드와 분석 결과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원자료나 논문과 비교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과제나 연구에서 AI를 사용했다면 어디에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밝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연구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AI에게 계산과 분석을 맡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하고 그 판단에 책임지는 일까지 맡길 수는 없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용공학에서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
● 이제 AI가 화면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요즘 AI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더 흥미로운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AI는 대부분 우리가 찾아가는 AI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ChatGPT를 열고 질문하고, 필요한 일을 마치면 창을 닫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일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OpenAI도 아이폰을 디자인했던 조니 아이브와 새로운 AI 기기를 개발하고있다. 머지않아 AI가 스마트폰 화면을 벗어나 우리 곁에 항상 머무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의용공학과 연결된다. 미래의 개인 AI는 우리가 하는 말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박수와 수면, 활동량을 살펴보고 평소와 다른 생체신호를 먼저 알아차리는 등 우리의 몸까지 이해하게 될 수 있다.
지금 의용공학과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생체신호, 센서, 의료영상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기술이다. 지금은 질병을 발견하고 건강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언젠가는 사람의 몸과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는 AI를 만드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대학을 다니는 세대는 AI를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첫 세대인 동시에, 자신만의 AI와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갈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지금은 조금 낯설게 들리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나의 몸을 이해하고, 오랜 기억을 공유하며,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가 AI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기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용공학과 AI가 만나 만들어갈 미래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