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9일부터 30일까지 우리학교 극재미술관에서 박종규(회화·84학번) 작가의 초대 특별전 ‘노이즈의 예술(The Art of Noise)’이 개최됐다. 해당 전시는 미술대학 재학생의 장학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마련됐으며, 박종규 작가는 작품 판매 수익금 3억5천만 원 전액을 우리학교에 기부했다. 우리학교는 ‘계명더하기’ 장학제도에 따라 기부금과 동일한 금액을 보태 총 7억 원 규모의 ‘미술대학 박종규 장학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노이즈의 예술’ 이라는 전시명의 의미와 ‘노이즈’를 주제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시명은 지난 4월 독일 ‘아트 뒤셀도르프 2026’ 전시 당시 전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관장인 그레고어 얀센(Gregor Jansen)이 붙여준 것입니다. 보통 노이즈라고 하면 소리나 전파에서 오는 ‘잡음’을 떠올리지만, 저는 소리뿐만 아니라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잡음과 실수의 흔적 역시 노이즈로 여깁니다.
저는 미술이 최소한 세 가지 문제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시대적 문제를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미술의 시각적·감각적 요소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하고, 미술사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작업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작가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작업 주제로 ‘노이즈’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사회·정치적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40~50대를 지나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실이 뒤집히고, 거짓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노이즈라는 개념에 담고자 했습니다.
● 작가님은 일상생활에서 노이즈를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시나요?
사실 미술 이미지에서 노이즈란, 이미지를 잘 그리려 했지만 잘못되어 지워낸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노이즈가 단순히 제거해야 하는 대상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노이즈 자체를 작업의 재료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시끄럽고 낯선 소리도 작업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창(唱)을 활용한 파장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창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그 소리의 파장을 바닥에 시각화했습니다. 소리 변화에 따라 파장이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를 함께 선보이는 작업 방식을 이어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평면 작업을 해오면서 2차원, 3차원을 넘어선 차원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디지털 안의 TV 화면이나 모니터처럼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는 노이즈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는 이미지를 모니터로 보느냐, 캔버스로 보느냐에 있을 뿐입니다. 전시 공간에서는 영화의 주연과 조연처럼 각 매체가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며 작업을 배치합니다.
디지털 작업은 표현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장면도 디지털 안에서는 구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몽골에 갔을 때 고비사막의 모래폭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우주 속에서 폭포가 떨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 작업도 했습니다. 저는 작가가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평면, 입체, 영상 등 다양한 매체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에서 디지털 미디어 작업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 우리학교 재학 당시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인물이나 경험이 있나요?
영향을 준 분으로는 고(故) 극재 정점식 선생님과 고(故) 유병수 교수님이 있습니다. 특히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유병수 교수님께서 “우리학교는 작가를 배출하는 학교다.”라고 하신 말씀이 어린 저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당시에는 막연히 미술이 좋아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그 말을 계기로 작가라는 길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현대미술반 활동을 했는데, 정규 수업과는 별개로 하고 싶은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2~3학년 때는 평면과 입체, 과거와 현재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미술 작업과 함께 사진관도 운영했는데, 사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담는 반면 사진 밖에서는 현재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관심이 이후 작업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제 작업을 처음부터 되돌아보니, 그 시절 가졌던 생각들이 지금까지의 작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기부해주신 장학금이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길 바라시나요?
제 작품의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굉장히 영광스럽습니다. 앞으로 장학금이 많이 확대돼 우리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경제적 부담 없이 작업에 집중할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나아가 등록금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랍니다.
또 이번 기부로 미술대학 장학기금이 27억 원 규모로 확대됐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장학 지원에 뜻을 보태는 분들이 늘어나고 지원 기회가 많아진다면, 언젠가는 학생들이 등록금 부담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 20대를 돌아보며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지금 돌이켜보면 파리 유학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보면서 수많은 생각과 시선을 접했고, 특히 미술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을 때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지만, 직접 여행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하며 얻는 경험은 또 다릅니다. 젊을 때는 스펀지처럼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시기인 만큼, 이런 경험들이 이후 작가로 활동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또, 너무 바쁘게만 살기보단 여유를 갖고 세상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고 느끼고 즐기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공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