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교수님과 유학생, 그리고 우리학교 재학생, 졸업생이 함께 시를 낭독하고 다양한 음악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가 있다. 바로 ‘시방락’이다. 이 프로젝트를 최초로 기획한 이는 우리학교 출신인 지영실(번역가) 씨와 다니엘 파커(Parker, Daniel Todd·영어영문학) 교수 부부이다.
두 사람은 문학과 음악이라는 창의적인 요소들을 접목시켜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행사, 외국문화와 한국문화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작년 9월부터 시방락 행사를 본격적으로 개최했다.
행사의 이름은 ‘지금’을 뜻하는 ‘시방’과 한자의 즐길 락(樂)을 합쳐 ‘현재를 즐기자’는 의미와 시(문학)가 있는 공간, 즉 ‘방’과 락(Rock)음악이 주로 흐르는 시방락 행사의 주요 장소인 ‘하늘 북 카페’의 특징을 합쳐 두 가지의 중의적 뜻을 가진 단어로 지영실 씨가 직접 작명했다.
장소는 다니엘 파커 교수가 16년 동안 단골로 이용했던 하늘 북 카페로 정했다. 다니엘 파커 교수는 “이 가게를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장식과 가구, 가게에 흐르는 음악 등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이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죠. 오픈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모두 모여서 시 낭송과 공연을 하고 감상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참여자들이 한국의 시들 중 마음에 드는 시를 준비해 와서 읽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회가 거듭 될수록 영어로 자작시를 지어 낭독하거나 노래, 랩 등 다양한 낭송방법이 추가됐다. 자신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다니엘 파커 교수 부부의 취지가 잘 반영된 것이다.
‘시방락’의 멤버구성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SNS를 통해 공고를 올리면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시방락’의 다양한 매력에 빠져 거의 고정멤버가 된 참가자들이 있다. 바로 우리학교 로만 락(Lach, Roman Wolfgang·독일어문학) 교수와 크리스찬 슈판(Christian Spahn·철학윤리학) 교수, 그리고 우리학교 동문인 탁혜경(여행가) 씨다.
다니엘 파커 교수와 로만 락 교수와 크리스찬 슈판 교수는 몇 년전 우리학교의 한국어수업에서 만나 친분이 생겼으며 지금까지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쌓고 있다. 처음에 시방락이 문을 열었을 때 좋은 생각이라며 응원해준 것 또한 그들이다. 슈판 교수는 좋은 공연과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주된 취미였다. 시방락이라는 행사를 통해 음악은 물론 시 낭송이라는 활동을 하면서 문학적인 감성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시방락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로만 락 교수는 “한국시의 매력은 언어유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매력이 있는 한국의 시를 좋아하고, 한국의 젊은 시인들의 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행사를 통해 젊은 시절 독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시를 읽는 모임을 가졌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한국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우리학교 동문으로 현재는 여행다니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탁혜경 씨는 시방락의 두 번째 행사부터 꾸준히 참여했다고 한다. 여행가를 직업으로 가진 그녀는 한국에 오기 전 3년간 인도, 이스라엘, 태국, 네팔 등을 혼자 여행하며 타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왔다. “인도나 태국에 가면 여행자나 현지인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노래나 시낭송을 하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그 곳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며 때로는 기쁨을 공유하고, 때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안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 사람 사이의 진솔하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 온 후 사람 사이의 교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던 탁혜경 씨는 시방락을 만나면서 그 때의 감성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자기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런 행사가 열린다고 하니 저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었습니다.”
시방락 행사는 21시 30분경 라이브공연과 함께 시작된다. 참여자들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달을 마무리하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으로 행사 시작 시간으로 잡았다. 지영실 씨는 시는 함축적인 언어와 음률만으로 의미 전달이 가능한 언어를 뛰어넘는 문학이라고 덧붙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와서 시를 함께 읽으며 정을 나누고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혼자 오셔도 상관없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언어로 시를 낭독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시방락의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든 오셔서 편하게 행사를 즐겨주었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평범한 마지막주 금요일 저녁, 지친 마음의 치유를 원한다면 시방락의 문을 한번 두드려 보자. 마음에 드는 시의 한 구절을 읽어보며 위안을 얻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