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적폐 청산, ‘국민의 명령’이다

  • 등록 2017.09.26 15: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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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아닌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지난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 온 ‘멘션’(답글)이다. 9월 4일부터 시작된 언론노조의 총력 투쟁과 그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영방송 KBS와 MBC의 총파업 투쟁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일부 여론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누군가는 언론인들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너희들도 적폐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을 먼저 ‘소멸’시킨 후에나 공정방송을 하라는 과격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이 언론노조의 투쟁에 응원을 보내오고 있지만, 이같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레기’라는 말로 대변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쓰레기’. 이 뼈아픈 별칭이 국민이 지난 9년간 망가진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다.
‘국민’의 명의로 날아드는 말들에 일일이 대거리를 할 수는 없지만, 투쟁 중인 언론노동자들에게도 억울한 지점은 있다. 이 글은 그들을 위한 변명이다.

‘기레기’이고 싶지 않아 벌였던 9년의 투쟁
지난 9년 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었다. 권력에 줄을 대어 사장, 보도본부장 등의 직책을 얻은 일부 언론인들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무릎 앞에 갖다 바쳤다.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는 데스크에서 잘려나갔고, 권력자가 싫어할 만한 프로그램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그 결과 “쓰레기 같은 왜곡된 진실”만이 KBS와 MBC를 통해 방송됐다. 국민은 공영방송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기레기라는 비난과 손가락질에 2014년 팽목항과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 KBS와 MBC의 기자들은 카메라와 마이크에 붙은 자신들의 이름을 뜯어내야 했다.
정권의 언론장악에 협조하지 않는 언론인에게는 대가가 뒤따랐다. MBC에서만 16건의 부당해고, 153건의 부당징계, 70건의 부당전보가 있었다. 보수정권은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은 언론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이들을 해고하거나 한직으로 내몰았다. 베테랑 기자가 해고되고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던 PD가 하루아침에 스케이트장 관리직을 맡는 일이 다반사였다.
바짝 엎드리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했던 시기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공범자들>은 그 눈물 겨운 투쟁의 기록이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으로 올라가는 부당해고·부당징계·부당전보 된 언론인의 수많은 이름들이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선 숱한 투쟁의 결과다.

국민을 위해 벼린 칼을 꺼내어 들다
‘칼을 갈아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언론을 위한 언론 독립성 쟁취와 언론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언론노조는 보수정권 9년 동안 보잘 것 없는 칼이나마 계속 휘둘러 왔다. 성명을 내고,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을 3차에 걸쳐 발표하고, 해고된 언론인의 복직을 위해 언론노동자와 함께 싸웠다.
지난해 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불러온 촛불혁명에서 촛불시민이 언론에 내린 명령은 ‘언론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었다. 불공정의 시대가 불명예 속에 퇴장했으니, 새 세상에서는 ‘공정언론’의 과업을 반드시 수행하라는 것이다. 이에 언론노조와 언론노동자들은 벼린 칼을 칼집에서 꺼내듯, 손 안에 지켜온 투쟁의 불씨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내부와 외부의 모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총파업 투쟁을 시작했다.
공영방송의 적폐를 걷어내면 그 다음은 민영방송·신문·통신의 차례다. 언론노조에는 KBS와 MBC 외에도 투쟁 중인 많은 지부들이 있다. 민영방송 OBS, 아리랑국제방송,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 부산의 국제신문,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 등의 언론노동자들도 언론적폐 청산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흔히 언론을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첫 번째에 두고 투쟁하는 곳이지만, 언론노조가 노동자보다 ‘국민’을 우선시 해 투쟁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노조 총력 투쟁의 목표는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을 쟁취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해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복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을 바꿀 거냐’, ‘공공재인 전파를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개혁성향인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국민 사과에 대한 요구 말고도 국민이 언론노조와 언론노동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수도 없이 많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욕이라도 먹는 것이 무관심 보다는 100번 낫다.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자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우선 기레기가 아닌 언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언론노조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임학현 (언론노동조합 교육선전실 · 차장) haken19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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