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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37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 심사평 (김민정 님)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7-06-07 08:51:08


시는 시작하는 그 때가 바로 적기다


원고가 담긴 박스를 열었을 때 예상보다 많은 투고량에 놀랐다. 응모 조건이 시 한 편은 아니었으니 누군가는 새로 여러 편을 써야 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간 써둔 시들을 다시 꺼내 퇴고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 놀 일 많은 봄날에, 끝내주는 날씨 속에, 그러나 시만 생각하면 참으로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묵직해지는 속사정들을 끌어안고 똬리를 틀어 고단했을 우리 시쓰는 청춘들이여, 수고 많으셨다. 다들 장하셨다!
당선권 안에 올릴 작품들을 고르는 일까지는 비교적 수월했다. 매일같이 시집을 읽고 매일같이 시를 고민했을 이들과 처음으로 시집을 읽고 처음으로 시를 고민했을 이들의 편차가 심했다. 이는 재능의 문제라기보다 누가 더 많이 읽고 누가 더 많이 써봤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시는 언제 시작해도 때늦지가 않은 유일한 장르다. 시는 시작하는 그때가 바로 적기다. 단 시가 불길임을 알면서도 뛰어들겠다 할 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닭꼬치」 외 두 편을 응모한 강응민 학생의 작품세계는 단연 발군의 솜씨를 자랑했다. 자기만의 사유를 끌고 나가는 데 있어 특히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 배경에는 문장의 정확성과 묘사의 치밀함이 한몫 크게 한 듯하다. 할말이 많은데 더 할 말을 버릴 줄 알고 놓을 줄 아는 힘. 물론 아직 그 재주에 기름칠이 덜 되어 마무리가 급박하게 지어지거나 말을 얼버무려버리거나 리듬이 갑자기 엉키는 대목들도 여럿 들켰지만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고 그걸 덤덤하게 내뱉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장기다. 세상을 의심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눈부터 의심하는 솔직함과 정직. 이제 눈을 조금 떴다고 본다. 시는 헛것을 찾아 그 헛것과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헛것을 찾아 그 헛것과 치고 패고 싸우는 일이다. 치열함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무력감이 주제로 팽배해질 조짐이다. “눈물을 아껴두기 위하여 하품을 참았다”가 별 문장인가 하겠지만 자세나 태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르게 읽힐 것이다. 앞으로의 건필을 기대한다.
가작으로 두 학생을 선정했다.「장마」 외 세 편을 투고한 이예진 학생은 비교적 고른 작품 수준을 보여주었다. 시어들을 제 안에서 마구 부려보고 싶은 욕심도 넉넉히 있어 보였다. 문제는 개성이었다. 많은 말들을 빨랫줄에 주렁주렁 널었는데 그 옷들의 스타일이나 사이즈가 너무 제각각이었다고나 할까. 이상하게 옷만 보이고 옷주인이 누구일까 호기심이 생기지 않더란 말이다. 시를 잘 쓰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내 시’를 잘 쓰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을 단단히 해보면 내가 왜 시를 쓰려 하는가, 그 처음으로 돌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초심을 마주하는 일을 부디 시작의 터닝 포인트로 삼을 수 있기를.
「콜 인 더 페스티벌」 외 두 편을 투고한 강요한 학생의 시는 가작으로 올리는 데 끝까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들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의 결을 계산하기보다 시에 대한 그 어떤 강박 없이 자유롭게 당당하게 제 쓸거리를 던지고 본 첫 시에 일단은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두 편의 시가 상대적으로 약한 완성도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학생에게 손을 들어주게 된 건 어떤 가능성의 엿봄이다. 보이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저히 안 쓰고는 못 살 것 같아서 쓰는 시. 그쪽으로 던져지는, 그 방향으로 광합성하는, 그러한 자장 언저리로 딸려가는 청춘이라는 철가루들. 젊음의 힘, 패기의 힘, 무모의 힘, 나는 도무지 설명할 길 없이 즐겁고 우울하고 뜨겁고 서러운 여러분들 모두의 내일에 무조건 지는 사람이다. 내년에는 더 풍요로울 계명문화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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