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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 심사평(손정수 님)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18-06-04 10:30:11

●제38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 심사평(손정수 님)



- 심사위원: 손정수 평론가

문학평론가. 평론집으로 『미와 이데올로기』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 등이 있음. 현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심사평


복사용지 박스 하나가 연구실로 도착했다. 열어서 꺼내보니 소설들이 박스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소설마다 이름을 쓴 부분은 비어 있었고 오른 편 위쪽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모두 104편이었다. 

한 편씩 읽었다. 어떤 소설들은 처음 써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서투르거나 그렇다기보다 오히려 지나치게 소설적이었다. 익숙한 문장과 사건, 이야기가 보였고 그 문장과 사건, 이야기를 쓴 사람의 느낌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소설들은 다시 박스에 담고 그렇지 않은 소설들은 따로 놓았다. 

남은 서른 편 가까운 소설들을 다시 읽었다. 기본기는 되어 있지만 특색이 옅은 소설들, 단점이 너무 분명한 소설들은 박스에 담고 그렇지 않은 소설들은 남겼다. 박스 바깥에 남은 소설의 편수를 세어봤다. 7편이었다. 이제 당선작 한 편과 가작 두 편을 골라내는 일이 남았다. 

7편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남은 소설이 다음 세 편이다.

「드리프터」에는 어느 대학 2학년생의 하루,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한 하루의 시간이 담겨 있다. 가정과 학교에서 관계의 문제를 겪으면서 스스로를 떠돌이라고 느끼는 ‘나’의 의식은 시종 답답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안쓰럽다. 그렇지만 그가 혼자 머릿속에서 벌이는 상상에는 엉뚱한 에너지가 있다. 가령 기숙사에서만 혼자 지내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떠올리는 자신을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과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막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는 활기가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당분간 고독할 그 삶에도 언젠가는 소금기 묻은 눈가를 말려주는 군청색의 밤바람 같은 진정한 위로와 교감의 순간이 찾아올 거란 기대를 품게 만든다. 

「줄곧 들어온 소리」는 함께 살다가 갑자기 말도 없이 떠난 친구 유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일을 하는 유나를 기다리고 함께 술을 마시고 처음으로 담배도 피워본다. 그리고 보증금을 놓고 돌아온다. 이 소설은 그 이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화자를 비롯한 소설 속의 인물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그렇다. ‘나’는 기억 속의 사건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눈에 비친 풍경만을 바라볼 뿐이지만 그 시선에는 사건으로 인해 힘든 마음이 얼룩져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느낌을 갖고 보면 이 소설의 서술은 그 자체가 잊는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역설을 구현하고 있는 것 같다. 

「배수」에는 화장실 청소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 미진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는 잠이 오지 않는 밤 그림을 그리고 작은 미술관에서 세 시간 동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고 케이 세이지의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작품에 자기를 조금씩 나누어 담은 예술가들의 행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피해갈 수 없는 불행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미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나’ 역시 그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공유하는 정결한 삶의 의지가 곧 초승달에서 삶의 얼룩을 씻어 흘려보내는 배수구의 마개를 연상하는 상상력의 근거일 것이다. 

「배수」를 당선작으로, 「줄곧 들어온 소리」와 「드리프터」를 가작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을 마쳐서도 그랬겠지만, 그보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감당하고 가꿔나가고자 하는 젊은 의욕을 느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상 여부를 떠나 창작의 과정에서 이미 그 의욕은 실현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겪어낸 당선자를 포함한 투고자 모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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