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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34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 심사평(이성복 님)

  • 작성자 : gokmu
  • 작성일 : 2014-05-20 19:47:02

 

 

 

 

●제34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 심사평(이성복 님)

 

- 심사위원: 이성복님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그 여름의 끝] [래여애반다라]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현재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이다.
 

- 심사평

시의 요체는 삶에 대한 열정과 언어 감각이다. 그 열정은 삶에 내재하는 진실에 대한 열정이며, 그 감각은 세계가 언어로 구성되는 한, 삶과 현실에 대한 감각이다. 열정과 감각은 자동차의 모터와 핸들처럼 분리되어 있으나, 동시적으로만 작동할 수 있다. 시에 있어서,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각은 공연한 수사(修辭)나 멋부림에 그치며, 감각이 동반되지 않는 열정은 맹목적인 감상(感傷)이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열정과 감각, 추진력과 방향타라는 양 날개가 동시에, 같은 힘으로 작용할 때만 비행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시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의 어느 영역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시를 쓰는 사람은 산모보다는 조산원에 가깝다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시는 쓰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조잡한 비유를 빌리자면 고스톱을 할 때 청단 홍단을 할지, 고돌이를 할지는 내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판이 끝나 봐야 알 수 있다.
가작으로 선한 [가을, 거울, 겨울]과 [명문 고시원]은 시라는 광물이 언어의 어떤 지층에서 발견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가을, 거울, 겨울]의 필자는 언어의 자유로운 사용과 틀에 매이지 않은 사고로써 굳어버린 현실을 들쑤셔 시의 불티를 찾아낸다. 이 작품과 함께 투고된 [이후의 방정식]은 삶과 죽음과 인간의 함수관계를 수학적 방식으로 밝혀내려 한 시도로서, [오감도]의 시인의 천재성을 엿보게 한다. 다만 사고의 진폭이 너무 커서, 독자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지점으로까지 말을 몰아간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가작으로 뽑힌 또 다른 작품인 [명문 고시원]의 화자는 자신이 처한 시공간적 둘레를 평이한 보폭과 안정된 시선으로 돌아보고 있다. 이 작품에는 현란한 언어의 유희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상상력의 진폭 또한 그다지 크지 않다. 이는 현실에 대한 밀착이라는 점에서 강점으로 생각될 수 있겠으나, 아름다움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결함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당선작 [서푼짜리 마임]은 함께 투고된 [옆방 나무] [죽어야 할 시간]과 더불어 필자의 역량이 기성 시인들을 능가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비유컨대 시의 진술방식이 바느질 과정과 다르지 않다면, 이 작품의 바느질은 더없이 꼼꼼하고 탄탄해 허술한 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비유컨대 시의 언어가 공중에서 오가는 배드민턴의 셔틀콕과 같다면, 이 작품의 시적 진술은 한 순간도 산문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때문에 독자가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화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쉽게 헤아릴 수 없다는 점이 한계일 수 있다. 또한 그 때문에 이 작품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가슴 속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에서 억지로 쥐어짜 만들어진다는 어색함을 풍긴다. 가령 사진이라면 명함판보다는 스냅사진이 실제 인물의 인상에 가깝고, 엄밀하고 기계적인 연주가 아니라 즉흥적인 재즈의 연주방식이 예술의 본질에 가깝다는 점을, 이 작품의 필자가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이번 문학상 수상자들이, 한 편의 시란 시로써 자기 삶을 살아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며, 일생에 걸친 장애물 경기에서 이제 막 첫 번째 장애물을 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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