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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문학상 작품보기

제25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정한아(건국대 국어국문학ㆍ4)

  • 작성자 : 계명대신문사
  • 작성일 : 2006-08-28 21:29:26

제25회 계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당선자: 정한아(건국대 국어국문학ㆍ4)

 

 

 

제 25회 소설


스톤피쉬를 바다로 보내줘



“시내산이다!”

릭의 외침에 일행은 엉거주춤 일어나 창쪽으로 모여든다. 열 네 시간동안 몸을 뒤척이며 얕은 잠을 오가던 나는 이제 끝이구나 싶어서 한숨을 내쉰다. 버스는 덩치가 크지만 그만큼 좌석을 많이 넣어, 사내들로서는 한 쪽 엉덩이만을 대고 앉아있기도 힘든 사정이다. 현지 남자들은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는 것처럼 절묘하게 몸을 구겨 넣고서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힐끔거린다.

 

“나는 관심 없어.”

 

에이미는 선글라스를 바로 쓰며 창가의 커튼을 내린다. 그녀에게는 이제야말로 가방에 가득 찬 비치웨어를 자랑할 기회가 온 것 뿐, 돌로 된 산 따위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이다. 나는 커튼의 한 쪽을 들어 올리고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이빨로 손톱을 뜯어내면서 창 밖을 본다.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막의 마지막이다. 드디어 산과 바다에 이르렀다.

 

“한나, 그 오빠에게 정확히 오늘 간다고 얘기 해 놓은 거 맞지?”

 

“응, 세 번씩이나.”

 

나는 커튼 안에서 대답한다. 메일에 답장은 없었지만 굳이 그 말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 메일을 열어본 것은 분명한데 그는 아무 답신이 없었다.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집트에서 몇 번씩이나 컴퓨터 접속을 해 보았지만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마음을 비우라.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관광 안내 책자에도 우편이나 통신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써있다. 나는 인터넷 환경 때문에 무슨 착오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룩소르에서 장거리 버스를 탔다.

 

창 밖으로 붉은 바위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릭은 옆에 앉은 호주 여자에게 해바라기 씨 빠르게 까 먹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준다. 혀를 굴려서 도르르, 해바라기 씨의 껍질은 그의 입술 사이로 쏘옥 빠져나오고 릭의 혓바닥에는 알맹이만 남은 해바라기 씨가 얌전히 앉아있다. 여자는 그의 혓바닥 위의 해바라기 씨를 집어 들어 자신의 입 속에 넣는다. 눈 속에 웃음이 가득하다. 둘의 발 밑에는 해바라기 씨 껍질이 수북하다.

 

에이미는 손가락 사이까지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고 있는 중이다. 그게 효과는 있는 일인지 에이미만은 집을 떠났을 때와 별다르지 않게 뽀얗다. 릭과 나는 얼굴에 칠을 한 것처럼 피부가 검게 그을렀다. 릭과 에이미,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이집트를 횡단했다.

 

여행 동아리 <크눌프>의 회원은 열 두명이다. 회원들은 세계의 곳곳을 찾아다닌다. 올 해 여름 크눌프의 회원들은 케냐, 네팔, 이집트로 각각 흩어졌다. 가입요건에 특별 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원들은 모두 대학생들이다. 전공은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집은 서울이고, 취업에 별 뜻이 없다는 점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클럽에 몰려다니고, 서로를 꼴통이라고 부르며 자주 웃는다. 

 

 버스가 몸을 뒤뚱거리며 정차하자 에이미는 제일 먼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달려 나간다. 앉아있던 이집트 남자들의 눈이 그녀의 샌들 아래 나온 발가락을 따라 움직인다. 릭은 호주여자에게 굿바이 키스를, 나는 오빠에게 전해줄 고추장단지를 소중히 안고서, 우리는 홍해에 내린다.

 

welcome to DAHAB!

 

버스에서 내려 잡아 탄 택시는 그림 간판아래 섰다. 색색의 조개 껍데기로 그림을 그린 화려한 간판 속에 시내산이 둘러싼 마을과 그 아래 피리를 부는 남자, 춤을 추는 여자가 있다. 바다 속에서는 물고기와 불가사리, 다이버들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는 손톱을 뜯고 다리를 떨어대며 그림 앞에 다가선다.

 

“여기서부터 다합 비치예요. 아시죠? 한국인이라면 미스터 윤을 찾고, 일본인이면 요시타를 찾으세요.”

 

릭이 쥐어준 팁을 받고 마냥 즐거운 택시 기사는 우리의 짐을 내려주기까지 한다.

 

“너희 오빠가 미스터 윤 맞지?”

 

에이미가 컴팩트 거울을 보며 묻는다. 나는 자신 없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 

 

앞서 달려간 릭의 탄성에 우리는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열대과일로 장식한 아치문을 지나서 한 눈에 다합 비치가 들어온다. 삼백 미터쯤 되는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까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있고 그 가운데 구름다리가 있다. 가게들은 야자수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그 아래 그물침대와 선탠의자를 내어놓았다. 어디선가 보사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거리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리발을 끼고, 스노클을 목에 걸고서 돌아다닌다. 거의가 서양 사람들이고 간혹 까맣게 타버린 동양인들이 눈에 띤다. 춤을 추며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릭은 오빠의 주소를 따라 우리를 이끈다.

 

캥거루 캠프라는 명랑한 이름의 숙소에는 동양인들이 가득하다. 카운터 앞 칠판에 ‘한국인 강사 있습니다.’ 글자가 눈에 띤다. FREE 간판을 단 음료수 바에서 얼음을 넣은 수박주스를 들어오는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준다. 우리는 달콤한 주스를 빨대 가득히 빨아들인다.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인사하는 아랍 청년. 역시 명랑한 어조, 명랑한 표정이다.

 

“죄송하지만 방이 없어요. 일주일 간 예약이 끝나 있답니다.”

 

금세 슬픈 얼굴이 되어 공지사항을 전하는 청년에게 나는 미스터 윤을 찾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친구라고.

 

“미스터 윤?”

 

아랍청년은 이번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본다. 입 속으로 들어가는 손톱을 릭이 빼낸다.

 

“그건 정말 나쁜 버릇이라니까.”

 

“지금 그는 강습에 나가 있어요. 돌아오면 메시지를 전해드리죠. 한 두시간이면 돌아올 거예요. 그 때까지 짐은 카운터에서 맡아 드릴 수 있습니다.”

 

에이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를 조금 차갑게 훑어본다. 그리고 가방에서 디지털 카메라와 수영복을 꺼내들고는 나가버린다. 릭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외친다.

 

“가자! 바다로!”

1달러로 스노클과 오리발을 빌린 우리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닌다. 이집트의 태양은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곳의 햇살은 또 다르다. 누군가의 손바닥이 몸을 덮은 것처럼 따뜻하고 보드랍다. 누드로 엎드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릭은 에이미를 바다에 내던지고 우리는 비명과 웃음을 내지르며 바다 위를 뛰어다닌다.

 

숙소에 돌아오자 두 시간이 훨씬 지나 있다. 젖은 몸을 털면서 카운터로 들어가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오빠?”

 

눈 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그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일 년 전에 보았던 것보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부분이, 딱히 집어낼 수 없는 어떤 부분이 낯설다.

 

“메시지 받고서 누가 장난을 치는가 했는데, 정말 너 맞구나.”

 

“지금 반가워하는 거 맞지?”

 

그는 입가에 주름을 만들며 웃는다.

 

“방은 내가 잡아놨으니까 짐부터 옮기자.”

 

“정말 반가워하는 거 맞지?”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웃는다. 어쩌면 눈빛…… 그래, 눈빛이 달라진 걸 알겠다. 고향에서 함께 자라, 같은 시기에 도시로 나온 나는 그의 부모만큼이나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 표정은 어딘가가 다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눈 속에서 확인 했던 것들, 그의 내부에서 단단히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열기는 사그라들고 불빛은 꺼져버린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대신 적막, 어떤 침묵이 분명 손에 잡힐 듯이 드리워져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에게서 수도사의 분위기가 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가 수도사라니, 어울리지 않지.

 

“왜 답장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됐어. 사정이.”

 

“하지만…….”

 

“우선은, 씻고 나와.”

 

열쇠를 손에 쥐어주고 입을 꾹 다무는 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눈치다. 에이미가 열쇠를 잡아채고 앞서 걷는다.  

 

 

‘이집트의 다합, 이 곳은 천국이야.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돼. 너에게도 이 곳을 보여주고 싶구나.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다.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해.’

 

마지막으로 받았던 편지에는 즐거운 목소리만 가득했다. 체육대학을 졸업한 해에 받은 장학금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한 그는 매달 다른 곳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왔다.

 

‘영어는 감이지. 나는 감 하나는 타고 났다고.’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듯이 그는 금세 언어를 익혔고 어느 장소든 아주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얻을 줄 알았다. 그것은 다이빙 마스터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바다 깊은 데 들어갈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이 있어. 아주 넓고 깊어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그런 바다에 들어가면 아주 당연하게, 그곳이 원래 내 자리였다는 걸 알 수 있게 되거든.’

 

대개 신입생들이 정신없는 환각상태에서 보내고 마는 첫 학기 때부터 그는 남달랐다.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수업과 잠수 훈련을 오가면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는 마치 그곳으로부터 환한 빛이 나오는 것처럼 삶의 어느 한 지점에만 집중했다. 그것은 그에게 가능하고 분명한 미래였고 다른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빠는 항상 너무 바빠.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고. 대체 뭐가 그렇게 절실한 거야?”

 

언젠가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나른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를 이야기 할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열었다 하더니, 잠시 후 잠들어버렸다. 어떤 말 못한 갈망 때문인지 손가락을 꽉 말아 쥔 채로. 그의 피로는 그렇게 극한까지 가서야 저 혼자 미끄러졌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보고 그가 마지막으로 짐을 내려놓은 곳은 이집트였다. 그런데 온통 즐거운 고백뿐이었던 그의 편지는 점점 뜸해지다가 육 개월이 지나고 멈췄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라는 사람을 이루었던 일부 혹은 전부에게.

 

“staff only 라는데, 그 형이 힘 좀 썼나보다, 야.” 

 

열쇠의 방 번호를 따라 일반인 숙소 코너를 돌아서자 좀 더 한적하고 아름다운 집들이 이어진다. 짐을 넣고 샤워를 마친 나는 에어컨디셔너 버튼을 누르지만 작동이 안 된다. 관리인은 하루만 참아달라고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며 손을 모은다. 라우사마투. 그에게 우리도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은다. 대신 하루 방값을 내지 않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는 의자가 없다. 카펫이 깔려있고 그 위에 쿠션이 가득하다. 한 아랍소년이 기타를 치고 있다. 누군가 소년의 무릎 위에 동전을 올려놓자 그 애는 크고 검은 눈을 들어 웃어 보인다. 음악은 더욱 맑고 가벼워진다. 사람들은 바닥에 기대앉아 밥을 먹고 책을 읽는다. 고양이들이 느릿느릿 기어 나와 요리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손등에 몸을 밀어댄다. 오빠는 능숙하게 주문을 마치고 먼 데를 바라본다. 무엇을 물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표정으로. 종류별로 시킨 해산물 요리는 싱싱하고 부드럽다. 

 

“나는 여기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어.”

 

식사를 마치고 릭은 윙크를 보내며 일어난다.

 

“그렇겠지.”

 

“왜 벌써 안 갔나 했다.”

 

우리의 야유를 뒤로 하고 릭이 자리를 뜨자, 에이미와 나는 노곤해진다. 오빠는 시계를 보며 망설인다.

 

“저녁 때까지 강습이 한 타임 더 있는데. 너희 방이 많이 더우면, 내 방에 가 쉬고 있을래?”

 

“우리야 좋지만…….”

 

“그렇게 해.”


방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이 몰려든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나갔거든. 시원하지?”

 

“네. 고마워요, 오빠.”

 

방은 청결하고 넓다. 에이미와 나는 땀을 식히고 맥이 빠져 소파에 내려앉는다.

 

“냉장고에서 뭐든 꺼내 먹고 편히 있어. 다녀올게.”

 

그는 열쇠를 흔들어 보이고 탁자 위에 내려 놓는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나는 탁자 위 수족관에서 죽은 듯 엎드려있는 뭔가를 발견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수족관이다. 나가려던 그는 주춤하며 돌아선다.

 

“물고기야.”

 

“무슨 물고기가 이렇게 생겼어요?”

 

인공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그것은 물고기라기보다 붉은 돌멩이 같다.

 

“스톤피쉬라고, 독이 있는 물고기야. 만지지 마.”

 

“어떻게 잡았어요?”

 

“바다에서 물렸던 적이 있었어. 팔 전체가 마비될 뻔 했지. 그 때 옆에 있던 동료 한 명이  투망에 가둬서 선물해 줬어.”

 

그는 그 때의 기억이 나는 듯 왼 쪽 팔을 쓰다듬는다.

 

“이제 정말 나간다, 아가씨들.”

 

에이미는 벌써 침대로 가 잠들었다. 나도 그녀의 곁에 눕는다. 바스락거리는 시트. 집에서 멀리 떨어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잠에서 깼을 때 방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다. 에이미는 아직 자고 있다. 나는 어디선가 다른 숨소리가 들려 일어나본다. 수족관에서 나는 소리다. 붉은 돌 같은 물고기의 숨소리. 수족관의 견고한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숨을 죽인다. 장난삼아 옆에 있는 지우개를 떨어뜨려본다.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제 몸을 건드리고 조용히 가라앉는 지우개 옆에서 물고기는 미동도 없다.

 

손 끝으로 수족관 유리를 훑으며 걷는다. 낮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 옆에 큰 책장 두 개가 붙어 있다. 나는 램프를 켜고 서서 책들을 훑어본다. 방 안의 반을 차지한 책장 속을 빼곡히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나는 그가 이렇게 독서광 이었나 떠올려본다. 특별히 그런 기억은 없다. 책들은 대개 너덜너덜한 상태다. 별다른 분야 없이 모여 있지만 모두 어려운 내용의 것들이라는 것을 알겠다. 갑자기 독서광이 됐다니. 나쁘지는 않지만 낯설다. 

 

책장의 뒤에 여러 개의 판넬이 세워져 있다. 단순한 벽걸이 그림 같은데 자세히 보니 모두 퍼즐이다. 모두 아홉 개. 낙조 아래 엎드린 스핑크스와 아부심벨 람세스의 거상, 낙타가 걸어가는 사막의 그림들이 수천 개의 손톱만한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기분이 든다. 몇 시간동안 퍼즐을 맞추고 있는 그의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아앗!”

 

손톱을 물어뜯던 나는 날카로운 고통과 찝질한 피 맛을 동시에 느끼고 신음을 뱉는다. 손톱 밑에 하얀 속살이 드러난 지는 오랜 일이다. 초조해진 나는 주머니에 껌을 꺼내 씹으면서 나머지를 둘러본다. 벽에는 사진들이 규칙 없이 붙어있는데 모두 수중 카메라로 찍은 바다 속 풍경이다. 인물 사진은 하나도 없다. 음악을 좋아했는데 어디에도 오디오 컴퍼넌트나 씨디 디스크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여행을 떠난 사람의 것처럼 방에는 생활의 흔적이 없다. 그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가. 왠지 언짢은 기분이 든 나는 에이미를 깨워 우리의 방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땀을 흘리며 다음날 아침까지 잠들어버린다.

 

“이렇게 물가가 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

 

에이미는 오랜만에 활기 있는 모습이다. 생과일주스를 곁들인 영국식 아침식사는 우리 돈으로 천원을 넘기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 보다 경비가 많이 남아 릭은 여자들에게, 에이미는 쇼핑에 여유가 생겼다. 나는 다이빙 코스를 경험하기로 한다.

 

“우리 여기서는 조금 느슨하게 움직이자. 개인시간이 많아져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휴양지인데.”

 

릭은 이제야말로 자신의 목적지에 다 왔다는 듯 진중한 목소리로 의견을 말한다. 지난 밤 늦게 돌아왔는지 얼굴에 피로가 짙다.

 

“아침조회는 생략하자구.”

 

모두의 의견이 그렇게 모여진다. 헤쳐,를 외치기가 무섭게 릭은 숙소로 달려간다.

 

나는 오빠의 방문을 힘차게 두드린다. 방문을 열고 나온 그는 잠에서 막 깨어났는지 미간을 좁히면서 나를 응시한다.

 

“다이빙 코스를 등록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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