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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침해가 아닌 사생활 무시가 문제

‘쿨’함 속에 ‘핫’함, 인터넷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길


가정이 있는 중학교 여교사가 자신이 담임인 반의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여교사와 학생의 사진 그리고 실명이 여과 없이 퍼졌다.

사회 통념상 이른바 ‘불륜’의 범주에 들었다고 판단해서인지 사이버 단죄자들은 매우 당당했다. 허위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을 적시하면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죄에 의해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법률 그리고 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 한다’고 명시해 놓은 헌법, 이들에게는 모두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타블로의 ‘진실’을 캐는 과정에서의 법적 도덕적 월선(越線)도 시빗거리이다. 무고로 음해했다는 의견, 과장한 점은 분명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던 이 논란은 학력 위조 의혹에서 발원됐다. 이 때, 이른바 ‘타진요’ ‘상진세’엔 타블로와 관련한, 공사를 막론한 현존하는 모든 데이터가 공격의 소재로 활용됐다. 물론 지금은 경찰 수사를 거치면서, 타블로 주장에 힘을 실리는 양상이다.

인기 확보의 수단으로 걸출한 학력을 활용한 만큼 이 또한 공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이 문제와 연관 없는 가족에 대한 신상공개 털기는 합리화할 여지가 없다.

이밖에도 “키 작은 남자는 루저(패배자)”라고 말한 여대생의 이름, 학교, 학과, 학교 생활 등을 공개한 루저녀 사건, 환경미화원에게 욕설을 퍼부은 여대생의 부모 직업까지 인터넷에 오른 패륜녀 사건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우리 사회에 진지한 고민거리를 안겨준 ‘인격 침해’의 파편들이다.

‘사생활 침해는 안 된다’는 말을 길게 늘여 쓸 뜻은 없다. 아울러 “인터넷 공간에 개인 정보 게시를 삼가라.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로써 논지를 이어갈 마음도 없다. 정녕 사생활 보호가 해법이라면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모두 차단하면 될 일이다.

이런 예가 있었다. 탤런트 김규리 씨가 2008년,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이 사진과 글을 일부 세력은 ‘좌파 연예인의 체제 부정’으로 낙인찍더니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체득하기 이 전의 흔적, 즉 김규리 씨가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는 사진까지 트집거리로 삼아 버렸다.

사적공간에서의 일상 소회가 공론화의 대상감일까. 남의 집에 들어와 채증하고 나간 뒤 이 내용을 떠벌리는 듯한 무도하기 짝이 없는 ‘신상 털기’는 과연 김규리 씨가 원하던 바였을까.

‘슈퍼스타K2’에 출연한 한 여고생의 경우, 아버지 별세 후 두 달도 안 돼 친구들과 음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친구들 몇몇이 공유하려던 목적으로 올린 사진이 뉴스에 나올 만한 악재로 비화된 것이다. 이 여학생은 멋진 노래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가식녀’, ‘불효녀’라는 뜻하지 않은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 여학생이 바라던 바 일리 없다.

철딱서니 없는 세력 그리고 일부 누리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빅3’ 신문을 자처하는 한 언론은 ‘광우병, 천안함, 그리고 타블로’라는 기사를 통해 “지난 2008년 … ‘광우병 괴담’이 확산했고, 올해 들어서는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음모설이 인터넷 공간을 무대로 날개돋친 듯 퍼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인터넷 공간에서 설정한 의제를 싸잡아 괴담으로 규정한 것이다. 타당한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를 전한 MBC ‘PD수첩’을 두둔한 이들 전원이 ‘MBC스페셜’에 의해 그릇됐다고 비판받은 ‘타진요’, ‘상진세’ 회원이란 말인가. 대단히 악의적인 성격 규정이 아닐 수 없다.

루머의 발원지요, 괴담의 생산처라는 인터넷 공간, 하지만 한지수 씨 구명활동을 벌여 무죄 판결을 받아낸 역동적 여론 생산의 기지이기도 하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멋대로 짜깁는 횡포는 볼썽 사납기까지 하다.

사실 따져보자. 사실 일반 시민과 누리꾼의 차이가 뭔가. 과거엔 컴퓨터와 인터넷을 두루 사용할 줄 아는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누리꾼으로 상징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칠순 넘은 내 아버지도 육순을 지낸 내 어머니도 누리꾼이다. 누리꾼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국민 그 자체이다.

이런 보수언론의 망조 든 장단에 맞춰 정부 여당이 춤을 춘다. 법적 제도적 규제책을 발동해 사이버 공간까지 재단(裁斷)할 움직임이다. 사실 2008년 최진실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계기로 여당 내에서는 사이버명예훼손죄, 인터넷실명제같은 법이 추진되기도 했다.

물론 최진실 씨는 구실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흉하기까지 한 원성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본질이라는 것이 나와 더불어 상식을 가진 이들이 하는 짐작이다. 권력자 눈 밖에 난 사람이면 자기 진영이건 반대편이건 가리지 않고 불법적 뒷조사도 서슴지 않는 꼬락서니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게 만드는 힘이다.

근본적인 시각 교정이 급선무이다. 사생활과 공적 일상의 경계선, 일반인과 이른바 ‘공인’의 범주 그리고 사생활 침해와 공적 감시의 구분선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제 본위의 해법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게 분명하다. 결론은 ‘톨레랑스(Tolerance)’가 아닐까. 범죄, 도청 등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지탄의 대상을 제외하고서라도, 나머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실험’ 아닌 ‘실험’을 얼마 전, 온라인 공간에서 했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이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나에게 대뜸 ‘씨’라고 호칭하며 이메일로 말을 걸어온 학생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꼰대’라고 속으로 비꼬아도 좋으나, 나는 이런 표현이 진심으로 불쾌하다. ‘붙일 호칭이 마땅치 않다면 ‘~님’은 어떨까’ 하는 배려 섞인 상상력, 대학생 쯤 된 위치에서 과연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래서 대꾸 안 하는 대신 트위터에 내 이런 감정을 가감 없이 올렸다. 그랬더니 “자기 취향을 잣대로 삼느냐”, “그러면 뭐라고 불러주랴”는 냉소적 반응이 날아왔다. 나름 나를 계도(啓導)하려는 취지인 것 같다. 교조주의의 파편이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같잖은 글이라면 무시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이지 여기에 토 달아 상대의 빈정 상하게 하는 행태, 자기 원해서 이웃을 요청한 상대에게 할 행동인가. 그런 관심도 의견 표명의 일종인가. ‘노 땡큐’이다.

사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더블 에고(Double Ego·이중 자아)’가 설친다. 비단 ID, 필명, 아바타가 있어서만이 아니다. 현실 공간에서, 모종의 대상을 직면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는 워리어가 되는 상황은 사이버 이중인격의 역기능 그대로이다. 배울 뜻이 없는 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의 불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의 사생활 침해 말라’고 압박해 봐야 실천 불가능이다. 차라리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라’고 말하는 게 옳고 바르다. 좋은 사생활은 공유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또한 훈수 둘 말이 있으면 예의를 담아 표하면 될 일이다. 매너, 그거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매너가 어긋난다 하여 상습적으로 법에 호소해서 쟁송하는 행태도 문제이다. ‘쿨’함 속에 ‘핫’함이 인터넷 공동체가 지향할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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