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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명문대학인 카이스트에서 올해 들어 잇달아 4명의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적인 인재를 길러 낸다는 한국의 카이스트에서 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그것도 4건씩이나 발생한 것일까?

여러 언론매체와 기관에서 그 문제에 대해 복합적인 요소를 말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징벌적 등록금제도와 생활고를 가장 큰 원인으로 들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시행하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란 두 학기 중 3.0의 평점을 넘지 못하면 0.01점당 6만원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모두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대평가라는 제도에 의해 15%의 학생은 이런 벌금형 등록금을 내야하는 처지다. 내가 내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돈을 내야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학생들 개개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과 서로 간의 교우관계형성에 있어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폭넓은 인맥형성과 경험을 쌓아야할 대학생활에서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하는 그들의 교육방침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할 지향점인지 의구심이 든다.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은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여 성취하는 성공이 과연 얼마나 올바른 성공이라 자부하겠는가? 정말 가관인 것은 경쟁력 있는 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국민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소리가 아직도 카이스트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속내는 현재 세계 50위정도의 카이스트가 10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학교 측 입장은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몇 명쯤의 입장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로 여겨진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짊어져야할 젊은 학생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해 2백50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끊고 있으며, 그 수가 해가 바뀔수록 증가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오르는 물가와 생활고 속에서 항상 불거져 나오는 등록금 문제는 이제 학생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제 대학은 신입생 유치와 명예를 높이는 데만 안간힘을 쓰지 말고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의 목소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한다. 그들의 고충과 요구가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대화로 풀어간다면 소중한 한 생명이 꽃피우기도 전에 져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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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