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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불라 라사 115 (계명교양총서 115선)] '아Q정전'

루쉰(魯迅, 1881~1936)은 본명이 저우수런(周樹人)이고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1902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루쉰은 중국인의 육체를 고치기 위해 의학을 선택했으나 일본 유학 중, 수업시간에 러시아군의 스파이였던 중국인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중국인을 보고 육체를 고치는 것보다 정신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아Q정전(阿Q正傳, 1921-22년)’은 베이징 신문 ‘진보부간(晨報副刊)’에 연재되었다. ‘아Q정전’은 성명과 본적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마저도 분명치 않은 아Q의 20대 후반부터 도적 누명을 쓰고 처형되는 30대 초반까지의 삶과 죽음을 그리고 있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이고, Q는 청나라 말 중국인들의 변발한 머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Q정전’은 신해혁명(1911)을 배경으로 당시 몽매한 중국 민중과 혁명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아Q는 못생기고 힘도 없고 가난하지만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모욕에도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정신승리법은 논쟁이나 싸움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자기합리화라 할 수 있다. ‘아Q정전’은 신해혁명의 좌절을 그린 것이다. 루쉰은 그 좌절의 원인을 아Q의 정신승리법에서 찾았다. 신해혁명으로 청왕조를 타도했지만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4천년 전통을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한 것이 최대의 원인이었다. 결국 아Q는 청나라 말기 유교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중국인의 한 표본인 셈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아Q의 모습을 통해 중국인들이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는 아Q. 남에게 얻어맞고도 자기 아들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아Q는 바로 서구와 일본의 침략을 당하면서도 자존심만 비대했던 청과 중국 민족이다. 또한 아Q가 혁명에 가담하게 된 이유, 혁명당원 아Q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변화, 그리고 너무도 간단한 아Q의 제거 과정을 통해 혁명의 허구성과 불철저성도 따끔하게 꼬집었다. 루쉰은 소설 마지막에 아Q의 죽음 이후 사람들의 수근거림 “총살당한 것은 곧 그가 나빴다는 증거야. 나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총살을 당한단 말인가?”를 옮겨놓음으로써 중국민중의 우매함도 싸잡아 비난했다.

‘아Q정전’은 최하층 신분의 날품팔이 아Q를 주인공으로 중국 구 사회와 민중이 지닌 문제를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파헤치고 있다. 작품의 전반에 그려진 정신승리법은 민중 자신들 속에 있는 노예근성이며, 작가의 붓은 아Q를 그 집중적 존재로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아Q라는 이름은 널리 그와 같은 성격의 대명사로 사용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전개에 따라서 아Q는 차츰 피압박자로서의 양상을 깊이 하여 작자는 아Q의 운명에 대한 동정과 접근을 더해 간다. 아Q는 최후에 신해혁명 후의 지방정부의 손에 총살당하는데, 그것은 동시에 구사회에서 가장 학대받던 존재인 아Q들의 입장이 어떤 형태로든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혁명도 무력하며, 오히려 민중은 그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의 폭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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