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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정말 심장은 있을까?

1969년 여름, 뉴욕 근교의 우드스톡에서 음악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이 음악제는 무산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막스 야스거라는 이가 베델의 자기 농장을 제공하겠노라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음악제는 가까스로 베델 평원에서 열렸고, 그것은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큰 무대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드스톡(Woodstock)’이라 이름 붙여진 록 페스티벌이다.

3박 4일 동안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45만 명의 관중은 열광했다. 온갖 장르의 가수와 밴드들의 연주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8월 18일 오전, 마지막 무대는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온 깡마른 젊은이의 시간이었다. 그의 이름은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 높다란 무대 위에 나타난 검은 청년은 천천히 미국 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당혹스러웠다. 록 페스티벌에 국가라니!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이상한 굉음처럼 변해 갔다. 폭격 소리, 폭발 소리로 변주되는 사운드는 더 이상 한 나라의 엄숙한 노래일 수 없었다. 그것은 상징이었고, 저항이었고, 호소였다.

록(rock)을 즐기는 이들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지미 핸드릭스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기타를 이로 물어뜯거나 때려 부수거나 등 뒤로 돌려 치는 따위의 퍼포먼스 때문이 아니다. 그는 목소리를 뒷받침해주던 악기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였고, 그것으로 갑갑한 영혼의 숨통을 시원히 뚫어 주었던 것이다.

“우리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왼손이 심장과 더 가까이 있으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곧잘 왼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정말 왼손으로 악수를 나누는 것이 더 따뜻한 일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왼손잡이여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사람과 보다 마음 깊은 교감을 나누고 싶어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왼손이 심장과 더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지금까지도 음악인들 사이에서 ‘가장 닮고 싶은 기타리스트’로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970년 28세의 너무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그가 21세기의 오늘에까지 많고 큰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기꺼이 심장의 뜨거움을 나누려 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니, 정말 심장이 있기는 하며 뜨겁기는 한 것일까?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날아온 안타까운 소식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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