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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따뜻한 감동으로 남고 싶다면 …

마음이 돌멩이처럼 단단해질 때나, 칼끝처럼 날카로워질 때, 그것을 들으면 마치 푸른 하늘처럼 아늑해지는 음악이 있다. 나에게 있어 그런 것 중 하나가 구노(Gounod)의 ‘아베 마리아’다.
프랑스의 작곡가 구노는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술적 환경에서 자란 그는 한때 성직자가 되려고 생각하기도 해서 사제들과 가까이 지내곤 했다. 그러나 그는 생루이 국립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파리음악원에 들어가 작곡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구노는 한 사제를 알게 되었다. 사제의 이름은 앵베르였다. 그는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로, 마카오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다 중국 쓰촨(四川)지구 부주교가 되어 있었다. 1837년, 구노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앵베르가 조선교구 주교로 임명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따금 게시판에는 ‘○○○ 순교’라는 비보가 나붙곤 했던 터라 구노는 앵베르를 위해 기도했다.

중국 대륙을 건너 몽고에 머물고 있던 앵베르는 마침 사신의 수행원으로 동행한 조신철, 정하상 등의 협력을 얻어 조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먼저 와 있던 신부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무를 수행했다. 숨어 다니며 선교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것을 최대의 행복이라 여겼기에 견딜 수 있었다.

마침내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성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앵베르는 신자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그는 두 동료 신부들과 함께 스스로 관헌에 나갔다. 심한 형벌과 고문 끝에 결국 대역 죄인이 된 세 명에게 군문효수(軍門梟首)의 판결이 내려졌다. 처형 장소는 한강변의 새남터로 결정되었다. 1839년 9월 21일, 앵베르 주교와 두 신부는 형장으로 끌려갔다. 모진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집행인의 칼날이 그들의 몸을 갈랐다. 그 때 앵베르의 나이는 43세였다.

22세가 된 구노는 산책길에 앵베르의 순교 소식을 들었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누르며 그는 성모 마리아상 아래에 섰다. 거기서 구노는 참으로 순박한 음률을 느꼈고, 곧 느낌을 오선지에 옮겼다. 그 곡의 이름이 바로 지금 우리가 듣는 ‘아베 마리아’라고 전한다.

많이 팔고 많이 가지는 것이 곧 최고선인 듯한 것이 오늘의 문화적 풍경이다.

“배고픈 귀신을 옆에 두고 책이나 팔아 배부름을 구하려는 문예가들이 무슨 예술가냐?”

단재 신채호의 말은 한 번쯤 새겨볼 만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도 그렇다. 영혼의 순교자를 위하는 사무사(思無邪)의 그런 따뜻하고 맑은 마음만이 오래도록 깊고 따뜻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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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