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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용기 있는 자를 사랑한다

흑인 인권 운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29년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때 마틴은 애틀란타에 있는 흑인 학교 모어하우스칼리지에 들어가 법학과 의학 중 어느 것을 전공할까 갈등하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26세가 되던 해, 그는 보스턴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사목과 공부의 길을 가려고 작정하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세상 속으로 내몰았다. 12월 1일, 몽고메리 버스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흑인 여성 재봉사 로자 팍스가 버스 좌석에 앉아 있을 때, 운전기사는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를 거절했고, 곧 체포당했다. 흑백 분리에 관한 법을 어긴 죄였다. 법정에서 팍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분노한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벌이면서 ‘몽고메리개선협회’를 만들어 마틴 루터 킹을 회장의 자리에 앉혔다. 그는 가난하지 않았으며, 대학 교육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밤, 킹은 흑인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친구들이여, 우리가 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이라면 법원도 잘못입니다. 우리가 잘못이라면 하나님도 잘못입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때 킹은 깨달았다. ‘입을 열어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준비해 주실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그는 더 이상 목회 일로 성공하거나 대학교수를 꿈꾸는 평범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1년동안 이어졌고, 여기에 참여한 흑인은 5만 명에 이르렀다. 킹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그의 집은 폭파되었다.

“나를 죽이십시오. 나를 죽인다면 당신들은 아직 죽여야 할 사람이 5만 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956년, 미국 연방최고재판소는 버스 내 흑백 차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타임>지는 그를 표지 인물로 실었고, 킹은 이제 인권운동 중심의 자리에서 체포와 투옥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1968년 4월 4일, 킹 목사는 테네시 주 멤피스의 한 모텔 발코니에서 부랑자 제임스 레이에게 암살당했다.

“나는 내면의 목소리가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틴 루터, 진리를 위해 일어서라.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킹 목사는 27세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 진리를 위해 고향 몽고메리를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운명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맡겼습니다.”
너, 그 뜨거운 청춘은 무엇을 하고 있나? 단 한 번이라도 운명의 소리를 들으려 한 적이 있나? 그 소리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하늘 높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향해 입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운명은 용기 있는 자를 사랑한다. 나머지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준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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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