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3.0℃
  • 맑음강릉 3.8℃
  • 맑음서울 -1.2℃
  • 박무대전 -0.7℃
  • 박무대구 1.5℃
  • 박무울산 3.8℃
  • 박무광주 4.1℃
  • 연무부산 6.4℃
  • 맑음고창 2.2℃
  • 박무제주 10.6℃
  • 맑음강화 -2.1℃
  • 맑음보은 -2.0℃
  • 맑음금산 -0.8℃
  • 맑음강진군 5.2℃
  • 맑음경주시 -2.2℃
  • 맑음거제 4.5℃
기상청 제공

[미디어평론] '장관'으로 역사에 남고 싶었던 사나이

욕설파문은 '마지막 연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박’을 터뜨렸다. 국정감사장에서 수많은 카메라를 향해 짧고 강렬한 ‘호통’을 친 것이 그대로 생중계되었다. “사진 찍지 마. 성질이 뻗쳐서....”라는 말 사이에 두 글자의 욕설이 포함돼 있었다, 아니다를 놓고 두 갈래의 논박이 이슈가 됐다.

수많은 기사와 칼럼이 유 장관과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연결 지어 파렴치하다고 성토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문화부 장관은 엄연히 YTN, KBS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언론 주무부처의 수장이다. 방송과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은 문화부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한 설득이든 해명이든 입장표명을 하기 위해 장관은 국정감사장에 나온 것이다.

유인촌은 장관이 대답해야 할 정공법 대신 정말 화끈한 번외편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것은 의원들의 질문에는 또박또박 화도 안 내고 잘 답변해 놓고는, 사진기자들을 향해 엉뚱한 분통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베이징올림픽 ‘연예인응원단’ 예산의 졸속 집행과 예산낭비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말에도 “사과합니다”라고 순순히 대답했다. 최 의원이 “언론을 탄압한 사람은 예외 없이 감옥에 갔다”며 엄포를 놓을 때도 유 장관의 낯빛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늘 ‘화면’을 통해 봐온 ‘연기자 유인촌’ 이미지대로 자세는 안정되고 표정은 침착했다. 목소리 톤도 적절했고 발음도 명확했다. 모두 ‘국가’를 위해 한 일이니 어여삐 봐달라는 그의 투철한 국가관도 또렷이 들렸다.

그런데, 왜, 대체 별안간 답변을 잘 끝내놓고는 사진기자들을 향해 고함과 욕설을 날린 것일까? 왜 느닷없이 ‘성질이 뻗치고’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일까?
그의 돌발행동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품위 없고 자격 없다는 결론은 일치하지만, 행동양상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인촌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가 장관을 하든 ‘완장’을 찼든 언젠가는 다시 무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 듯하다. 정말 좋은 배우였던 한 사람을 관객으로서 다시 만나게 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가 너무 ‘총대’를 메는 인상을 주는 것도, ‘리틀MB’라는 별명으로 문화부 영역을 넘어 자주 부각되는 것도,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할 자리마다 누군가를 ‘대신’해 나서는 그의 연기 아닌 연기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옛 시청자의 미련이었다. 유인촌은 더 이상 자신을 ‘배우’로 보지 말아 줄 것을 이번 국감을 통해 만천하에 강력하게 주문했다. 과거 시청자였던 국민에게 카메라를 통해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장관이고 정치가인 자신을 아직도 배우인 줄 착각하는 그 모든 시선을 향해 외친 셈이다. 더 이상 국민의 사랑을 받던 한 예인은 없다, 국감에서 꼴찌한 일 못하는 장관만 있을 뿐이다.

관련기사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