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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계명의 현장

제8회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 최우수작

『논어』를 읽고

‘논어’! 왠지 이름만 들어서는 무언가 오래된 것 같고, 케케묵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더구나 이 책이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유학사상의 대부 격이신 공자(孔子)님의 말씀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오래된 이야기를 얘기할 때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데, 이는 아마 이 두 분께서 비록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살다가 가셨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배울 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마냥 멀게만 느껴왔던 공자님의 사상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공자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학교 교수나 총장 쯤 되시는 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래에는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모여든 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말이 ‘논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논어는 공자 사상의 핵심, 엑기스를 그의 제자들이나 후세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하겠다. 논어를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孔子’라는 사람이 좋아졌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공자는 ‘仁'과 ’禮‘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얘기를 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공자가 얘기했던 것은 단지 인(仁)과 예(禮)라기보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서로 지켜야 할 꼭 필요한 것,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신 분 같아 보인다. 총 20장으로 이루어진 논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는 구절은 역시 <樊遲問仁. 子曰, “愛人”>구절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仁 )”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닌가! 공자는 이 말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러한 ‘仁’ 의 근본정신이 결여된 많은 일들을 보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고, 제자가 스승을 고소하고, 사회 곳곳에 부조리, 불법이 만연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왕따를 견디다 못한 학생이 자살을 하게 되고,...... 사실 이런 소식을 대중매체에서 접하게 되면 영 마음이 찜찜하다. 그건 왜 일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공자가 얘기했던 ‘仁’ 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은 ‘사람(人) + 사람(人)’ = ‘人 + 二’ 이다. 즉,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인간된 도리’가 아닐까. 공자님은‘仁’을 뭐라고 생각 하셨을까? 공자님은 인을 얘기 하면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다.”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공자가 말씀하신 仁은 훗날 맹자가 말한 ‘易地思之’라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고 하겠다. 그것은 바로“남의 입장에 서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버지를 때리는 아들이 훗날 자신의 아들에게 힘없는 자신이 똑같이 맞는 모습을 떠올리고, 스승을 고소하는 제자가 자신이 스승이 되어서 똑같은 일을 당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왕따를 가하는 학생들 각자가 남에게 왕따를 받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과연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이나 행동을 함에 앞서 잠깐 동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본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는가? 그런 세상을 떠올려 본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아진다. 공자는 또한 “남이 너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네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여라.”라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이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말고 자신이 먼저 상대방에게 따뜻하게 대하며 남의 장점을 발견하여 칭찬해 주고 이를 배우기 위해 애쓴다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도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최근에 불고 있는 “칭찬”을 통한 동기부여도 공자의 이러한 사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하였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道’는 흔히 말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 자동차가 다니는 길,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길인 것이다. 즉,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道 ’의 의미는 ‘인간된 도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조화롭게 제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스승은 학생을 가르침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게 하고,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孝)로서 공경할 때 우리 사회는 병들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커 갈 것이다. 정말 이‘道’라는 단어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살다보면 이런 도를 몸소 행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괜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가끔 나 자신이 그런 분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道’를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음을 느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하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자의든 타이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거짓말’은 왜 하게 되는 것인가? 이는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해서 일 것이다. 즉,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최대의 무기이자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바로 세치 혀에서 나오는‘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속담에“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말’은 천 냥 빚은 물론이요 그 이상의 놀라운 일들을 가능하게끔 한다. 가끔 솔직한 성격에 말실수를 하곤 하는 나는‘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고 있다. 말은 상대방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상대방의 감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것이다. 앞으로 말을 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공자가 말하길, “설사 천하에 둘도 없는 재주와 지식을 구비했다 하더라도 사람됨이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밖의 것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교문화권의 나라에서는 ‘인성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공부를 조금 더 못하더라도 인간 됨됨이가 된다면 그게 더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적어도 옛날에는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요즘 부모님들은 오직 ‘공부! 공부’를 외치신다. 인성 보다는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시는 건가. 학교 다녀와서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닌다고 정신이 없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내가 어릴 때는 저러지 않았었는데 하는 마음에 좀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즘은 어딜 가서도 자신을 최대한으로 포장하여 남들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오늘날의 모습은 아마 공자가 생각하고 계셨던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공자는 위의 말을 통해서‘겸손’을 얘기하신 것 같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아는 것도 많고, 남보다 가진 것도 많지만 남 앞에선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신의 권력이나 지식만 믿고 교만하고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소인 같은 사람도 많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상당히 불쾌해진다. 첨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약간 부러운 느낌이 들지만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나면 이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대신에 나는 나중에 저런 지위에 있으면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뉴스를 보면 몇 백 만원씩 하는 비싼 수입 속옷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는 뉴스가 들린다. 속옷 하나가격이 우리 아버님이 한 달 내내 고생해서 벌어들이는 월급보다도 더 비싼 것이다. 솔직히 그런 뉴스를 접하면 왠지 쓴 웃음이 나온다. 과연 우리나라에 그런 속옷을 입고 다닐 고귀한(?) 분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가 더욱더 살찌고 풍요로운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가 가졌던‘政治’철학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진정한 ‘政治’란 과연 무엇인가? 공자는 노나라 고위 관리였던 계강자의 정치에 대한 물음에 답하면서“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라고 말했다. “도덕으로 정치를 하면 마치그것은 북극성과 같아 모든 별들이 우러러본다.”개인적으로 전적으로 이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다.


의무병으로 군대에 간 나는 남들보다는 편안한 생활을 하며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인이라는 신분이었지만 나는 일과 후 자유롭게 활동도 할 수 있었고, 병원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군인이라는 생각을 잊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평화가 깨어진 건 상병을 단 2개월쯤 담당중사가 바뀌고 나서부터였다. 우리 부서는 중사가 관리자인데 전에 있던 오중사는 공적인 일보다는 사적인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우리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고 부서 일에도 별로 애착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동료들도 덩달아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아무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 온‘멋진 kim!’라는 김중사는 그와는 100%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한 170정도 되는 보통이었는데,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멋진 진정한 'Leader'였다. 그는 부서의 모든 일에 애착을 가지고 하나하나 변화를 시키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타성에 젖어있던 우리들도 차츰 그의 모습에 동화되어 가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왠지 그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잃게 되어서 투덜투덜 대면서 그를 미워했지만, 한 달, 두 달 지나서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조화롭게 돌아가는 걸 보고 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또한 군인으로서의 나의 행동 가짐 하나하나에도 이제 신경을 쓰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는 우리에게‘북극성’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중사인 그가 열심히 그의 본분을 다하는데 아랫사람인 우리들이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공자가 계강자에게 말했던‘政治 ’라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정치가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대다수의 정치가들이 국민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그들 자신들의 이해와 당파싸움에 아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뭘 배웠을까? 과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부정축제에 연루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그의 아들들이 구속되는 그런 모습에 우리 국민들은 무얼 느끼고, 또 무엇을 배웠을까? 오늘날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여러 부조리들도 어찌 보면 정치하는 분들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공의 대화에서 공자가 말씀하시길 국방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민들의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가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정치가들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솔선수범하여 국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많은 정치가들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내걸면서 자신들을 뽑아달라고 호소를 한다. 그러다 혹 당선이 되면 자신이 내건 공약은 잊어버린 채 자신의 이익 채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될 때가 아닐까? 사회 곳곳에서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국민 모두가 진정한 리더(Leader)가 되어서 맡은 바 분야에서 솔선수범하여 아랫사람을 이끌어 나갈 때 우리사회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조화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최근 경제위기에서 힘쓰시는 이명박 대통령님께서도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을 잘 이끌어서 남은 임기 동안에 멋진 리더의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자는 여러 말씀을 통해서 배움의 중요성을 얘기하셨다. 논어 학이편 첫 구절을 보면 “배우고 시간 날 때마다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는 말씀이 나온다. 공자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을 일종의 즐거움으로 생각하신 것 같다. 무언가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공자는 배움이 배움으로서만 그치지 말고 마땅히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함을 강조하셨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는 단순한 지식의 암기만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그러한 지식들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울러 공자는 배움에 아랫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마땅히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뛰어난 젊은이들은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써서 묘사하기도 한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젊은이는 경외할 만하다는 뜻이다. 왜 일까? 이는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럼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질 미래인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들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공자님 말씀 중에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이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공자님의 이 말씀을 ‘배움’이라는 틀에 넣으면 이렇게 볼 수 도 있을 거 같다. 즉, ‘어떤 지식을 아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 보다 못하고, 또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그 지식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의미로 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남이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무언가가 내가 요즘 애를 먹고 있는 중국어 공부라고 한번 가정해보자. 내가 중국어를 공부할 때 중국어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중국어 지식을 아는 것 보다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지자불여요지자’라는 구절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내가 단순히 중국어 공부를 좋아만 하고 시험공부를 할 때만 열심히 한다면 나는 평소에 중국어를 즐기면서 생활하는 이 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에게 당할 재간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하는 일이 즐거워 잠을 안자도 졸리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공자가 말씀하신 배움, 학업을 즐기면서 할 때 그런 마음가짐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습관이 되고, 이는 성격으로 변하게 되어서 우리가 행동을 할 때 하나하나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그런 매사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학생으로서 공부는 꼭 해야 할 의무이다. 공부를 할 때 항상 즐기는 마음으로 한다면 배움이 즐겁게 되고, 성적도 향상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앞날도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동안 살아오는 동안에 배움을 즐기면서 한 때가 얼마나 있었는지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본다. 이제 곧 기말고사인데 이번 기말고사 만이라도 한번 공부를 즐기면서 해보고 싶다.
‘논어’사실 그동안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왜 공자가 죽은 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동양과 서양에서 그의 사상이 높게 평가를 받고 있는 어렴풋이 알거 같다. 공자는 이 세상 어떤 학자들보다도 먼저 우리‘인간(人間)’에 대해서 높은 성찰을 하신 분 같아 보인다. 그런 그의 사상은 맹자를 비롯한 많은 유학자들에게 이어져 더욱 심화되고 학문적으로도 더욱 발달한 것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仁’과 ‘禮’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으로 꼭 지켜야 할 도리들에 대해서 많이 깨달았다. 개인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 모두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남에 대한 배려를 하고, 서로를 위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 양적으로 성숙될 것이다.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이 말씀은 <자한>편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말인데, 이 말을 읽으며 공자가 사랑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또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공자님은 과연 모르시는 게 뭐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멋진 남자 “공자”님의 논어를 읽고 느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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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해야 하는가? 읽는다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다. 지식의 습득은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 정보를 수집해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읽기다. 각 대학들이 철학,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인문·예술적 소양이 없으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고전과 명저 읽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교과 과정으로 끌어들여 왔다. 고전과 명저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진 책들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하는 정신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고전과 명저라 할 수 있다. 각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뽑는 데 있어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을 제출하는 등의 특별 전형을 통해 면접만으로 인재를 선발하거나, 인문학책을 토대로 지원자들 간의 토론 또는 면접관과의 토론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등 어느 때보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 인문학과 예술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