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다. 아이는 에이즈 환자다. 엄마는 ‘현실감각 제로’에 경제력 없는 미혼모이고, 함께 사는 증조할아버지는 중증 치매다. 세상에 이보다 더 콩가루인 집안은 없다. 이쯤 되면 얼핏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세상에 이런 일이’의 아프리카 편이나 ‘사랑의 리퀘스트’ 특집에나 소개돼 마음 약한 시청자를 울리는 게 제격일 설정이다. 그러나 이들 삼대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 어느 작은 섬 ‘푸른도’다. 수혈 도중 에이즈에 걸린 봄이(서신애 분)네 가족의 희귀한 인생유전이 MBC 수목 드라마 ‘고맙습니다’(극본 이경희, 연출 이재동)의 주된 내용이다. 에이즈라는 낯선 질병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고맙습니다’는 자사의 대표적 오락 프로 ‘느낌표’ 중 ‘산 넘고 물 건너’의 콘셉트를 살짝 빌려왔다. 문명이 비껴간 무릉도원 푸른도에는, ‘웰컴 투 동막골’보다 더 착하고 순박한 환상의 이웃들이 거주한다. 잠시 나쁜 마음을 먹었던 이들도 이 섬에 발을 딛고 살다보면 곧 착한 본성을 되찾는다. ‘서프라이즈’에나 소개될 전설 같은 동화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이, 특히 아픈 아이에 약하다. ‘고맙습니다’ 또한 봄이의
스물 셋의 나이에 출산을 앞둔 탤런트 장신영이 만삭임에도 S라인을 뽐내며 잡지 화보 촬영을 했다. 얼마 전 결혼할 당시까지도 그녀의 배가 불러오고 있음을 눈치 챈 이가 거의 없었기에, 사진 속의 그녀 모습은 낯설다 못해 어리둥절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임신 9개월임에도 임산부 특유의 체형인 이른바 D라인이 아닌 S라인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은 결혼식 때 이미 임신 6개월이었고 신혼여행 사진에서도 배가 꽤 불렀다는 뒷이야기는 ‘만삭의 S라인’과 함께 처음으로 공개된 정보였다. 결혼식을 올리는 그 순간까지 코르셋으로 잔뜩 동여매며 감춰야 했던 그녀의 배는, 이제 여성잡지와 인터넷을 장식하면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놀라웠다. 어떻게 임산부가 그처럼 깡마를 수가 있을까? 어떻게 만삭의 임산부를 놓고 감히 S라인 운운하는 천박한 상상력의 화보를 찍을 수가 있는가? 임산부에게조차 몸매 관리를 요구하는 이 끔찍한 화보의 콘셉트는 ‘섹시함’의 강조였다. 장신영은 짙은 화장과 검은 마스카라 속에 표정을 감춘 채, 불편해 보일 정도로 허리를 S자로 꼬고 있었다. 만삭의 배를 가리는 척하며 살짝 치켜 올라간 짧은 치맛단과 그 아래로 늘씬하게 뻗은 다리는 여느 ‘섹
종교를 중심에 둔 영화들의 영원한 테마는 ‘구원’이다. 주인공은 대개 일련의 시험을 거치면서 죽을 만큼 괴로워하고 방황하지만 마침내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수도자로 거듭난다. 문제는 시련과 구원의 양상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면 성직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신앙에 도전하는 요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인 신자들의 고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7년의 가톨릭 신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가 너무도 고색창연하게 된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제작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진 이 ‘예술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저 유명한 영화들에서 모티브를 따왔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기적’으로 끝난 엔딩 장면에 이르도록, 영화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인 구조(構造)를 직조해내지 못했다. 고민은 고민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기적은 기적대로 각각 따로 놓여 있다. 민병훈 감독의 연출은 인과관계를 푸는 데는 인색하고 내면의 풍경에만 집중했다. 마치 젊은 신학생의 고민은 ‘여자 문제’ 말고는 없다는 듯이 단순 구도로 몰아갔다. 영화의 뼈와 살이 될 ‘잔가지’들은 쳐내고 예정된 결론만 남은 셈이다. 영화 ‘포도나무를
신동엽이 대표로 있는 DY엔터테인먼트가 팬텀엔터그룹에 인수되었다. 합병 발표 직후 전 MBC 아나운서 김성주는 팬텀의 이사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표되었다. MBC에 사표를 던져 연일 이슈가 됐던 터라 김성주의 ‘승진’은 대번에 톱뉴스로 떠올랐다. 계열사를 통해 DY엔터를 우회 상장함으로써 팬텀그룹의 주식은 액면가의 몇 배를 웃돌게 되었다. 시작부터 유재석, 김용만, 노홍철 등 MBC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간판 스타’들을 싹쓸이하면서 SBS 오락프로까지 독식하고 연말에는 강수정 전 KBS 아나운서를 거액에 스카우트했던 DY엔터테인먼트의 궁극적 목표가 이제서야 드러난 셈이다. 지난해 순 손실액만 십수억 원을 낸 팬텀엔터그룹과 9억원의 적자를 안고 있던 DY 그룹은 단숨에 증권가의 총아가 되었다. 이 합병으로 방송 외주제작의 90%를 점유하는 거대 연예기획사로 발돋움했다는 기사만 크게 부각되었을 뿐, 그들 기업의 부실성은 보도되지 않았다. ‘거대 연예기획사’ 운운하는 기사에 속아 팬텀의 주식을 사들인 개미 투자자들이 이들 연예인 얼굴마담들의 어마어마한 스카우트 비용을 대신 지불해 줄 게 뻔하다. 수익을 못 낼 경우 독박을 쓰는 것도 개미 투자자들이다. 일반 투자자
여든의 서정범 교수가 평생 봉직해 온 경희대로부터 직위해제를 당했다. 30대의 여성 무속인 권씨가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고소했는데, 이에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대대적인 기자회견과 농성, 강력한 항의로 징계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여든의 명예교수는 참으로 불명예스럽게 교수 연구실을 떠났다. 조사가 끝나지 않은 이상 그 어떤 ‘피의자’도 ‘피고인’이 아니다. 혐의를 받았다 해서 무조건 죄인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인권 침해다.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사법 질서의 기본인 ‘무죄추정의 원칙’조차 저버리면서까지 은사를 ‘성폭력범’으로 만드는 데 동분서주했다. 검찰 조사 결과 서 교수는 무죄로 판명 났다. 무속인이 제출한 녹취록을 정밀 감식해 보니 테이프 내용은 모두 ‘짜깁기’였다. 권씨는 편집 기술을 동원해 그동안 교수와 함께 있었던 내용을 교묘히 짜 맞췄고, 치마 등 성폭력의 증거물을 만들어냈다. 모두 조작이었다. 담당 검사는 ‘앙심’을 품고 누명을 씌운 범죄로 규정하고, 오히려 무속인 권씨를 무고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실은, 성별이 뒤바뀐 채 끝났다. 가해자는 여자였다. 서 명예교수는 어린 ‘제자’들에게 ‘명예 살인
사형수는 턱없이 아름다웠고, 상처 많은 여주인공은 너무 쉽게 그 사형수를 사랑해 버렸다. 잔악한 사형수인 줄 알았던 윤수(강동원 분)는 알고 보니 상황 때문에 죄인이 된 가엾은 인생이었고, 남부러울 것 없는데도 자살 시도가 ‘취미’인 유정(이나영 분)에게는 영원히 열다섯 살을 맴돌게 하는 씻지 못할 상처가 있었다. 상처는 사형수와 여교수라는 현격한 사회적 신분차를 넘어 그 둘을 단단히 묶어 놓았다. 그러나 초반부터 두 사람이 ‘닮았다’고 강조한 것은 억지였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어느 하루의 상처가 나머지 삶을 망가뜨렸다는 유정의 관념적 불행과,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죄다 모아놓은 불행의 전시장 같은 윤수의 삶이 어찌 ‘닮은 꼴’일 수 있으랴. 유정이 죽음까지 가져가고 싶어하는 비밀과 상처, 일본 만화영화 ‘반딧불의 묘’를 방불케 하는 슬픈 윤수 형제의 성장기와 애국가에 얽힌 비밀은 그러나 슬픈 동화일 뿐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심지어 살인 현장마저 절제된 영상미로 인해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들의 과거는 지독하게 비극적이지만 상투적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열고 호감을 갖기까지의 감정 선은 미세한 떨림까지 놓치지 않았지만, 과거를 포함한 나머지 삶과 관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