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 등록 2012.09.27 00: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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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그것도 낡은 벽돌로 된 담벼락과 자취방 주인 할머니가 불쑥 튀어 나올 것 같은 옛날 한옥이 있는 좁은 골목길. 그런데 이제 그런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골목길은 내 어린 시절의 편린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골목길에서 첫사랑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고, 골목길에서 사랑을 이루었다. 골목길에서 꿈을 키워왔으며 젊음을 소비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전의 그런 골목길을 보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버릇이 생겼다.

골목길에 추억이 있다. 가난했던 자취생의 일상이 녹아있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사랑이 꽃 피던 곳이었다. 고교시절 내 자취방은 항상 골목길 끝자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취방 주인 할머니의 눈을 피해 도둑고양이처럼 나지막한 담벼락을 넘어서 들어가곤 했다. 어느날 그 낡고 낮은 담벼락을 넘다가 주인 할머니와 정면으로 부딪쳐 불호령을 받기도 했다. 학생이 너무 늦게 귀가한다며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일러준다며 눈물이 쏙 빠지도록 잔소리를 했다. 눈빛 맞추기도 겁났던 호랑이 할머니.

또 자취방 앞 골목길에서 그녀를 만나곤 했었다. 끓어오르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그녀를 담벼락으로 밀어붙이고 입맞춤을 하려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고통을 호소한다. 아뿔싸. 그 담벼락은 방범용으로 시멘트를 불퉁불퉁하게 발라 놓은 곳!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 담벼락의 상황도 모르고 젊음을 발산하던 그때, 골목길은 내 삶의 현장이었고 추억의 장소였다.

내가 골목길에 매료되는 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이 아니다. 골목길에는 아련한 내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최초의 고향 같은 존재이다. 지금도 나는 골목길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때마다 끝없는 이야기가 흩어진다. 사라지는 과거로 돌아간다.
장희재(문예창작학·2) gmlwo167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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