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H와 L이 내가 접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특출한 재주나 기행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H와 L은 종종 내 연구실에 들러 책을 빌려가서 읽는다.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기도 하고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체로 그들의 손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들려 있다. 그렇다. H와 L은 ‘책 읽는 대학생’이다. 책과 대학생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처럼 자연스러운 것도 없을 텐데 책 읽는 대학생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책 읽지 않는 대학의 현실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1일 평균 책 읽는 시간은 24분, 한 달 평균 독서량은 1-3권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그나마 대학생들이 즐겨 읽는 책 분야도 환타지나 무협지, 그리고 가벼운 소설류에 편중되어 있어 심심찮게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 대학의 도서관 대출순위에서도 이런 경향은 그대로 나타난다. 책 읽는 대학생 보다는 인터넷 하는 대학생, 문자 보내는 대학생, PC게임하는 대학생, 토익 공부하는 대학생 등의 이미지가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책 읽지 않는 대학생이 염려스러운 것은 숨 가쁘게 변하는 세상에 대한 정보와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의 염려는 학생들이 진지하게 자신을 만나지 못한다는 데에 가 있다. 온갖 발달된 정보통신 테크놀러지와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쉼 없이 타인을 만나지만 정작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을 만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염려인 것이다. 핸드폰과 인터넷과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온 세상의 사람들과 만나지만 정작 자신은 왜소해지고 소외되는 현실의 구조를 경계하는 것이다.
책은 한 줄을 읽고 열흘을 생각해도 기다려준다고 한다. 그만큼 주체적인 사고활동에 적합한 매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은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내면 속으로 잠수하는 것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책을 통해 내면의 깊은 세계로 잠겨보고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