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혹은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다 귀국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사회의 무례함이다.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하거나 거리에서 타인과 부딪히고도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가버리는 것, 생명의 위협이라고까지 느끼게 하는 운전 방식,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타인의 편안한 감상을 방해하는 행위 등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례함은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의 결여에서 기인한다. 타인의 공간, 타인의 시간, 타인의 취향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혹은 할 줄 모르는 데서 이 모든 불편함과 거슬림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활하는 계명대학은 배려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우리는 타인의 학습권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시작되고 시간이 꽤 흐른 후에 강의실에 들어오는 사람, 수업 중에 강의실을 떠났다가 다시 들어오는 사람,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다시 나가는 사람, 수업이 진행 중인 강의실 복도에서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 등. 이들은 수업의 밀도를 떨어뜨려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강인원이 많을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절실하지만 대단위 수업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강의가 끝나고 빈 강의실 책상위에 놓여 있는 음료수 컵과 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는 타인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배려의 부재를 증명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의 부재이며,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캠퍼스를 빠르게 질주하거나 위협하듯이 바짝 다가서서 운전하는 것은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보행권을 위협하는 행위인 동시에 타인의 안전에 대한 배려의 부재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타인의 성적 주체성에 대한 배려의 부재인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는 함께하는 삶보다는 타인을 밀치고 앞서가는 삶을 지향하게 한다. 앞서가는 자들은 환호하고 뒤처진 자들은 어둠 속에 배제된다. 이런 삶이, 그리고 이런 사회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계명대학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회적, 종교적, 계급적,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