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살다 2
박혜란(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3)
어머니가 내게 도장을 해주시던 날, 질퍽거려 비가 내려야 좋았다.
벼락 맞아 모로 쓰러진 대추나무에 천운이 깃든다 하니
나무에 나를 가두는 일이라 여간 설레었을지도 모르지
숲으로 나갈 채비하는 길목마다 그늘을 기우고 있는 나무들에게
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즐거웠던가
매끈하게 기름먹인 대추나무 탄 자리마다 숲이 숨어 있어
몇 십 년 째 세 들여 키우던 제비집이라든가
햇살의 실핏줄마다 서걱거리는 초록 풀내음
옹이자리를 타고 흐르던 매미의 세찬 울음소리
상황버섯에게 내어준 반 토막 몸의 시간
그 시간 어머니가 매만지는 빈 도장에 고스라니 전해지니
내게도 조금 으쓱했겠지
도장칼이 나무의 내력을 가로질러 내 이름 들이고 나니
내 몸 이미 숲이라
좁은 도장집에 빗물이 새도 내 안에 엽록소만 울렁거리곤 했다
다시 태어나는 안쪽 살을 주물러 밀어내는 것처럼
나무에게 내 이름을 주던 날
좌우가 뒤바뀐 이름이 내게 거울 하나 쥐고 살라는 말 같아
그날이후 붉은 인주에 마음 적시고
꾹 하고 어머니와 멀어지고 가까워지곤 했었지
창 밖에 비 내려 벼락이 치고, 아무래도 나는 비 오는 날만 아파서
쓰러진 나무에도 사연이 많아 그 나무 취하고 나니
거울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것만 같다
내 도장의 이름 속에서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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