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8.8℃
  • 구름많음강릉 25.1℃
  • 구름많음서울 19.8℃
  • 구름많음대전 22.0℃
  • 맑음대구 24.7℃
  • 맑음울산 22.1℃
  • 구름조금광주 19.8℃
  • 맑음부산 18.8℃
  • 구름조금고창 19.8℃
  • 맑음제주 18.7℃
  • 구름많음강화 16.4℃
  • 구름많음보은 21.4℃
  • 구름많음금산 20.8℃
  • 맑음강진군 18.9℃
  • 맑음경주시 22.8℃
  • 맑음거제 17.5℃
기상청 제공

[시사쟁점] 밀어붙이기식 도로명주소법 시행, 예산낭비 우려

'정부는 체계적인 틀 마련해 행정절차와 국민의 혼란 감소에 주력해야 할 것'

■ 도로명주소(새주소)란 무엇인가?

지난 4월 5일부터 서울 등 7개 특별·광역시를 포함한 전국 1백1개 지자체에서 도로명주소 체계가 공식 시행되었다. 이는 작년 9월 입법된 ‘도로명주소등표기에관한법률(이하 도로명주소법)’에 따른 1단계 시행조치로서 앞으로 도로명주소는 전국에 확대되어 2012년부터는 도로명주소만이 주소로 쓰이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행정구역+토지구획번호’ 체계인 현행 지번주소는 ‘길이름+건물번호’ 체계인 도로명주소로 바뀐다. 예를 들어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5가 100-4’인데, 앞으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지혜길 39’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도로명주소사업은 전 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주소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범국가적인 대형사업이다. 그러나 막상 이 주소를 일상적으로 써야 할 일반국민들은 도로명주소가 뭔지, 왜 하는 것인지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집의 새로운 주소가 뭔지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도로명주소 체계 시행을 준비하면서 지속적으로 대국민 홍보를 해왔고, 특히 법 시행을 전후해서는 방송매체를 통해 광고까지 하면서 대대적으로 새주소 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몰랐지만 도로명주소사업은 1996년부터 시작되어 10년 넘게 계속해온 사업이다. 단지 최근 이 새로운 주소를 법적 공식주소로 사용하게 하는 도로명주소법이 시행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 이 사업은 현재의 지번주소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일제 잔재이며, 길찾기에도 불편하고 선진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비효율적, 후진적 주소체계이기 때문에 선진국형인 도로명주소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지금까지 2천억 원 가까운 예산을 써가며 전국적으로 길마다 이름을 붙이고, 길 이름에 따라 건물마다 번호를 붙이는 작업을 해왔으며, 이 새로운 주소체계를 알리기 위해 갖가지 홍보사업을 벌이고, 새로운 지도를 제작하고 인터넷 서비스도 개발하는 등 새주소 보급 확대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 도로명주소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공무원들의 생각과 달리 도로명주소는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주소를 쓰면 길찾기가 매우 쉬워져서 일상생활 면에서 시간과 노력이 절약될 뿐더러 물류산업의 효율성이 증대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향상된다는데, 시민들은 시큰둥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관심이다. 일반시민들은 그렇다 치고 우체국, 경찰서, 소방서 등 새로운 주소체계를 앞장서서 활용하도록 독려받고 있는 관련 공공기관들의 반응도 영 썰렁하다.

실례로 2004년 10월 이재창 국회의원이 당시 새주소사업이 완료된 전국 84개 우체국 집배장들을 대상으로 새주소에 대한 선호도 등을 조사한 결과 우체국 직원들조차 새주소사업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95%가 기존주소를 선호한다고 답변), 새주소를 활용하기 어렵다(90%가 새주소만으로는 집 찾기 어렵다고 답변)고 답했다. 주소찾기의 전문가이고, 앞으로 새주소를 가장 많이 이용해야 할 우체국 직원들이 이 정도라면 단지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 외 언론 등에서 여러 차례 관련 의식 및 실태조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몇 년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단지 정부가 하는 조사에서만 일반국민들이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으며, 활용도도 제법 높은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렇지만 정부조차도 새주소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가 괜찮은 수준이라는 거짓말을 오래 계속하지는 못했다. 정부도 새주소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부내 예산편성 조정권한을 갖는 기획예산처나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등에서도 대표적 예산낭비사업으로 지목되면서 관련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등 사실상 사업이 중지될 정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가 묘수를 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번주소를 없애고 도로명주소를 공식주소로 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었다. 관련기관과 시민들이 새주소를 외면하는 이유를 새주소가 법정주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강제로 쓰게 하지 않으니까 안 쓰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낸 듯하다. 도로명주소사업의 본래 계획은 새주소를 자발적 이용에 맡기는 생활주소로 우선 보급한 후 이 주소의 장점을 많은 국민들이 체감하고 익숙해지면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행자부가 새주소의 법제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2005년 말 강창일 의원 등이 도로명주소법안을 발의하여 이듬해 9월 국회 통과 후 2007년 4월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 법률은 2012년부터 법적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완전히 바꾸도록 규정하고 있다.



■ 도로명주소사업, 제대로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도로명주소법은 도로명주소사업이 시민단체, 민간전문가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예산낭비사업으로 비판받아 왔음을 감안할 때 너무 무리하고 성급하게 추진된 법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선 이 새로운 주소체계가 진정 효율적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며, 더불어 이 사업에 도대체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지 정확한 추산치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부터 추진했다는 점도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자칫 법부터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별 효과도 없는 사업에 수천억 이상을 쏟아붓고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해가며 새로운 체제에 억지로 적응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도로명주소가 진짜 길찾기에 편한 선진적 체계인지 여부에 대한 문제부터 살펴보자.

도로명주소법을 만든 후인 작년말 행자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민간연구기관에 도로명주소체계 개선방안 연구를 의뢰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행자부를 매우 난감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연구기관은 도로명주소로의 주소체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현재 준비된 체계로는 본래 목적한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고, 주소 부여방식부터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상 행자부는 이미 2001년 자체조사를 통해 시민들이 새주소를 왜 불편해 하는지 이유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 조사결과 다수 시민이 도로명주소에 대해 ‘주소에 동 이름이 없어 위치 파악이 어렵다’(26%), ‘길 이름이 너무 많아 찾기 어렵다’(23.7%), ‘건물번호가 연속적이지 않아 혼란스럽다’(12.4%) 등 시스템 자체에 불편을 야기하는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했었다.

앞의 연구기관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이 전문적 연구결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음을 밝히면서 길이름 부여방식, 건물번호 부여방식 등 도로명주소체계 설계를 근본적으로 변경해야만 실제 길 찾기에 편한 주소체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 시행하는 도로명주소는 지번주소에 비해 별로 편리하고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현행 도로명주소 체계는 작은 골목길까지 고유한 이름을 붙이도록 되어 있어 생소한 길 이름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 1만9천개, 대구시 4천4백개 등 대도시의 경우 수천개 이상의 새로운 길이름이 생겨났다. 이처럼 갑자기 생긴 수많은 길이름을 시민들이 숙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타 주소체계 설계에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어 결과적으로 새주소가 기존 지번주소보다 별달리 편리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체계에 적응해야 하는 불편만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꺼번에 수많은 길이름을 짓다 보니 비슷비슷한 이름이 많고 발음이 어렵거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등 쓰기 불편한 이름이 부지기수이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2005년 이미 지어진 길 이름 중 18%인 3천7백개를 바꾸는 작업을 했었다. 전국 각지의 황당한 길이름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인데, 필자는 2005년 지적된 대구시의 금성로, 화성로, 목성로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언론 기사를 보고 정말일까 반신반의했을 정도였다.

주소체계 자체의 문제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이 사업에 들어갈 비용이다. 현재 정부는 이 사업에 예산이 얼마나 필요할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공식적으로 내놓은 추정사업비는 있다. 2011년까지 9백13억원이다. 그러나 이는 신뢰하기 힘든 금액이다. 이 금액은 본래 생활주소 사업계획 하에서의 사업기한인 2009년까지의 사업비와 거의 같은 것이다. 그런데 도로명주소를 법적주소로 하게 되면 생활주소 사업에서와 달리 각종 공적장부 수정(정부 추산으로 필수적으로 수정해야 할 공부가 최소 2백50여 종, 주소 관련 공부 총수는 약 9천1백90종) 등 행정 전반에 걸친 대대적 개편작업이 수반되는 것은 물론 일반국민과 기업 등에 대한 홍보와 서비스에도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당한 추가비용이 예상되는 법을 발의하면서 대표발의한 의원이 제시한 소요비용 추계액은 도로명주소센터 구축에 50억, 각종 공적장부 수정 등 53억, 합계 1백3억원에 불과했다. 정부도 현재까지는 그 정도면 된다는 태도이다.

필자는 정부가 밝히고 있는 소요비용은 줄여도 너무 줄인 액수라고 생각한다. 당장 비판을 피하려고 비용을 축소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정말 얼마쯤 필요한지 제대로 산정해서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돈 쓴 만큼 사업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국회 예산정책처와 민간전문가 등 비용추계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객관적인 비용추계를 받고 결과를 공개해야만 한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주소체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는 사업을 잘해서 목적한 성과를 달성한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는 논리이다. 졸속 개편은 국민 불편만 가중시키고 예산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특히 주소체계와 같이 온 국민이 실생활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는 일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빨리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또 귀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 외면하는 국민을 탓하지 말고 외면당하는 요인을 객관적으로 살펴 근본적 개선방법을 찾아낸다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새주소 사업 어떻게 이용하나?

이 달 5일부터 전국 1백 1개 시·군·구 기초지자체 지역에 도로이름과 건물 번호로 이뤄지는 도로명 새 주소체계가 도입된다.

이번에 바뀌게 되는 도로명 주소는 주민등록등·초본이나 건물등기부등본 등 모든 법률행위상의 효력을 갖는 법적 주소가 되기 때문에 개인이 자신의 주소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손해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본사가 있는 우리 대학 성서캠퍼스의 주소를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1000번지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라고 한다면 바뀐 새주소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2800 신당동 1000-2 번지 계명대학교가 되는 것이다.

1백 1개 시·군·구를 제외한 나머지 1백 31개 지자체는 2009년까지 새 주소 시스템을 도입해야한다. 도로명 주소는 2011년까지 번지명 주소와 함께 법적주소로 쓰인 뒤 2012년부터 단독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새주소를 알고자 한다면 인터넷 새주소 홈페이지(www.juso.go.kr 또는 www.새주소.kr)에 접속해 현재 번지명 주소를 입력하면 즉시 자기 집이나 건물의 도로명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