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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타인에게 말을 걸자

강의를 마치면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지각한 학생들이 출석을 체크하기 위해 온 것이다. 출석을 체크한 학생들이 빠지고 나면 남은 학생들이 쭈뼛거리며 과제를 언제 어떻게 제출해야 하는지 묻곤한다. 첫 강의 시간에 참석하지 않았거나 교수가 안내할 때 집중해서 듣지 않은 학생일 것이다.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나는 알려주면서도 몹시 떨떠름하다. 이런 사소하다 할만한 질문을 왜 굳이 교수에게 직접 물어보는 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주변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언젠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1학년 학생을 면담하면서 겪은 일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룸메이트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의 고향은 어디인지 묻는 내 말에 학생은 모른다고 했다. 한 공간을 사용하면서 몇 개월을 생활한 룸메이트의 출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요즘 학생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놀라게 되는 부분이다. 옆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강의실에서 여러 학기를 같이 보낸 동급생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친하게 지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소수의 ‘친한 사람’ 이외에는 예의를 갖추어서 대해야 하는 타인일 뿐이다.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가 초연결망 사회라는 문명적 성취를 누리고 있는데 정작 학생들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동급생들과 소통하지 않고 선후배를 사귀지 않는 학생 공동체에서 정보와 지식은 흐르지 않는다. 전공 학업에 대한 정보, 진로나 취업에 대한 정보, 다양한 비교과 활동이나 생활 정보 등도 공유하기 어렵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모든 정보를 다 열어줄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이 알야야 하는 바로 그 정보나 지식에는 어둡다. 이런 마당에 배려나 공감이라는 사회적 미덕은 언감생심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말을 걸어야 한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오가며 만나는 선배나 후배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교수에게도 말을 걸어야 한다. 말을 걸면 정보와 지식이 오가고,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나의 세상이 확장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과 인생을 같이 살아가게 된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굳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관계를 통해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 기기가 제공해 주는 온갖 네트워크는 가상의 관계일뿐이다. 이제 스마트폰을 잠시 넣어 두자. 그리고 말을 걸자. 나의 또 다른 존재인 타인을 만나자. 그리하여 내면의 위안을 얻고 삶의 기운을 북돋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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