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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내고 제대로 받는 사회보험을 만들자

사각지대 해소하고, 사회보험료 부과징수체계 통합해야




198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확립되어 온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은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복지국가로 만든 듯 했다. 그러나 최근 사회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냉랭한 반응은 현재의 사회보험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실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신뢰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신뢰 한다’는 응답은 지난해 6월 21.7%에서 올해 8월 12.8%로 급격히 하락했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섰지만 연금을 믿는 사람은 1/5도 안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노후소득을 보장해주고, 건강을 책임지고, 실업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메워주겠다는데, 왜 수혜자인 국민들의 사회보험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가는 것일까?



더 내고 덜 받는 것이 보험개혁?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내야 할 보험료는 점점 늘어만 가는데 정부가 그 만큼의 혜택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보험개혁 행태를 볼 때 이 같은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하다. 정부는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수준을 줄이는 형태로 보험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낼 돈은 늘고 혜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회보험을 지지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4대 사회보험 중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해 살펴보자. 연금개혁 시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급여를 깎지 않으면 연금재정이 파탄난다’는 것이었다. 연금가입자인 국민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면 급여를 주지 못한다고 ‘협박’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일방적으로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국민연금의 급여를 소득대체율의 60%에서 40%로 대폭 삭감했다. 월평균 소득이 1백만 원일 경우, 65세가 되면 60만원을 받을 수 있던 사람이 40만원을 받게 된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실시된다지만 이 역시 급여 수준이 턱없이 낮다. 연금 재정의 고갈은 제도 설계 당시부터 이미 예상했던 것으로 갑자기 닥친 일이 아니다. 급여수준을 대폭 삭감해도 재정 고갈 시점이 몇 년 단축 될 뿐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연금개혁을 실시한 선진국의 경우에도 급여와 보험료율의 조정보다는 연금체계 자체를 바꾸거나, 재원을 조세로 전환하는 방식 등으로 재정 불안정 문제를 해결했다. 급여수준을 낮추고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은 연금가입자의 불신을 초래해 사회보험제도의 근간인 연대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건강보험료 결정에 있어서도 사회보험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사위원회에 건강보험료 8.6% 인상안을 제출했다. 보험료 인상의 근거는 보장성 확대로 급여지출이 급증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예상되고, 이를 보전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장성 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병원 식대 급여화와 6세 미만 아동 본인부담 면제를 건보 재정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해 건강보험의 급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건보 재정적자에 대한 책임은 불필요한 의료공급의 양적 확대를 통제하지 못한 정부와 서비스의 질적 향상 없이 수가 인상만을 요구해 온 의약계에 있다. 게다가 정부는 법에 명시된 건강보험의 국고지원부담금(보험료 수입의 20%)도 제대로 내고 있지 않다. 결국 재정적자의 책임과 부담을 국민들에게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보험개혁의 핵심은 ‘제대로 내고 제대로 받는 것’ 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하고, 사회보험 부과징수체계 통합해야 사회보험 개혁의 핵심은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험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제대로 내게 하고, 그에 걸맞는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에 있다.

어떻게 하면 사회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고, 제대로 내고 제대로 받는 사회보험을 만들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적절한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 수 십 년간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노인이 되어서는 용돈수준의 연금을 받아야 하고, 병원에 가도 보험처리가 안돼 의료비 부담이 높은 게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현실이다. 노후소득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재정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존재의 의미가 없다. 정부는 재정적자 논리로 국민을 협박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 보장해 줄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둘째, 광범위한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대상이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위험이 높은 비정규직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표 1). 넓은 사각지대는 보험가입자와 보험미가입자 간의 실질 소득격차를 발생시켜 사회보험 가입 회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고, 연대를 통해 사회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사회보험의 근본적 기능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셋째, 4대 사회보험료 부과징수체계를 통합해 보험행정을 효율화해야 한다.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험 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다. 보험 재정의 확보는 보험행정의 효율화를 통해 누수되는 지출을 줄이고, 소득파악을 정확히 해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4대 사회보험료의 부과징수가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되어 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보험 부과징수체계 통합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각 당의 입장차이로 1년째 계류 중이다.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적인 사고를 버리고 진정 국민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보험료 인상을 통해 보험재정 적자의 책임을 국민들에게만 떠넘기고, 사회보험의 본래 취지는 잊은 채 제도의 현상유지에 급급해 하고 있는 사이 국민들의 사회보험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사회보험의 토대는 사회구성원의 연대의식이다. 연대의식은 사회보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