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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좋은 세금이 있을까?

'강부자'만을 위한 종부세 무력화…부족한 세수는 전국민의 몫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 관련하여 토론할 때마다 종부세 폐지 또는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부세의 폐해에 대한 많은 논거와 사례들을 든다. 언뜻 들어보면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좀 넓게 생각해 보자. 종부세가 나쁜 세금이라면 그럼 어떤 세금이 좋은 세금일까?

조세제도 중, 가장 기본적인 세금은 자기가 벌어들이는 소득에 부과하는 소득세이다. 어떤 조세전문가들은 소득세를 보고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의 소득에 맞춰 누진적으로 과세되고 적절한 공제제도까지 있어 응능부담의(부담하는 자의 담세력에 따라 세금납부) 원칙을 비교적 잘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떤 시민에게 이런 상담을 받았다.
“나는 사업에 실패해서 빚이 일억 원이 넘는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갚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자산이 마이너스인데도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리고 시골의 몇 천만 원짜리 작은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하는 데 양도소득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
“이번 정부의 세제개편안으로 공시가격 9억 원이상 주택(실거래가 약 11억 원)의 양도차익에 대해서 비과세라고 하던 데, 나는 몇 천만원짜리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해도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하느냐?”라는 상담이었다.

참 딱한 사정이다. 그러나 그 상담자가 가진 땅은 비거주인이 가진 비사업용 토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행 세법은 비거주자가 가진 비사업용 토지는 투기성 목적이 있다고 보아 매매차익의 60%를 과세한다.

자, 한번 골라 보자. 이 셋 중에서 바람직한 세금은 어떤 것인가.
첫째, 6억 이상 주택을 보유했다고 다른 소득이 없어도 보유사실에 대해서 내는 종부세.
둘째, 빚 청산을 위해 매매하는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셋째, 1세대 1주택자가 이사 가고자 집을 매매하는데, 6억이 넘는다는 이유로 내는 양도소득세

참 고르기 힘든 질문이다. 바람직해 보이는 세금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할까? 종부세를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으니 종부세도 없애고, 소득세를 통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으니 소득세도 없애야 할까?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똑같은 금액으로 내는 부가가치세는 어떤가? 이것도 물론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요즘 큰 이슈가 되는 식품안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은 무슨 돈으로 하고, SOC는 어떻게 건설할까? 노인, 장애인, 육아에 대한 복지예산은 어떻게 지출할 수 있을까?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세금을 내고 싶지는 않지만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나 피해가 없는 세금도 없다. 결국, 조세제도는 아무런 비판이나 조세저항 없는 ‘아름다운’ 곳에서만 걷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덜 나쁜 곳에서 걷는 것이다. 조금 더 담세부담력이 있고, 조금 더 공익성에 부합되고, 조금 더 소득재분배에 기여하는 곳에서 걷어야 한다. 만일 어떤 세금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폐지하거나 완화하여야 한다면 그 대신에 다른 어떤 부분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지까지 제시해야 한다. 결국, 가장 덜 나쁜 세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덜 나쁜 부분부터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정학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세금이 가장 덜 나쁜 세금일까? 재정학적으로 나쁜 세금이란 세금을 걷을 때 사람들의 소비, 생산 등의 패턴을 변화시켜서 자원분배의 왜곡을 불러일으키는 세금이다. 자원분배에 왜곡이 생기면 경제의 효율성이 저해되기 때문에 나쁜 세금이라는 것이다. 보통 국민이 100원의 세금을 내면 국가재정에 100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조세제도가 경제의 효율성에 20% 왜곡을 준다면(초과부담) 국민이 비록 100원의 세금을 내도 국가재정 창고엔 80원만 채워지는 것이다.

그럼 과연 국민이 100원을 냈을 때, 국가가 100원을 벌 수 있는 세금이 있을까? 이러한 세금을 중립세(lump sum tax)라고 하는 데 중립세에 가장 가까운 세금이 바로 토지 등 부동산에서 걷는 세금이다. 그래서 헨리 조지 같은 경제학자는 모든 세금을 없애고 토지세를 올려서 국가재정을 충당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현실은 재정학적으로 가장 덜 나쁜 토지 등 부동산 보유세의 비중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재산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래세가 너무 높고 보유세는 너무 낮다는 것이다. 이는 과세의 편의만을 위한 것으로, 주택의 건전한 거래를 막고 1세대 다주택 보유를 수월하게 만드는 세제이다. 그래서 지난 정부는 신규 주택 취득 시 거래세를 5%에서 2%로 절반 이상 감축하고, 대신 보유세를 올리고자 도입한 것이 바로 종부세이다. 그런데 중산층이 부담하는 보유세 모두를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워서 6억 이상 고가 주택에만 보유세를 강화하여 종부세를 만들었다.

그런데 현재 종부세를 내는 사람 기준으로도 보유세율이 1%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선진국의 보유세가 2% 이상 된다는 것에 비교해 볼 때 결코 과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종부세가 ‘나쁜 세금’이라며 종부세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관철하고자 한다. 이는 전 국민의 불과 2%만 부담하는 종부세를 0.8%정도만 부담하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종부세를 무력화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징벌적인 ‘나쁜 세금’인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결과 내년도에 1조 1천억 원의 세수가 감소되었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자 정부는 중산층 서민들이 부담하는 재산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재산세는 올리지 않는다고 급한 불만 껐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종부세로 인해 감소된 1조 1천억 원은 다른 어떤 ‘좋은 세금’을 통해서 채울 것인지 전혀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종부세는 물세이기 때문에 보유사실 자체에 담세력을 인정하는 세금이다. 또한, 종부세를 부담하고 있는 사람은 2%에 지나지 않는 ‘노블리스’들이고 거기에 1% 정도의 보유세를 부담하는 것은 ‘오블리제’라고 말하기 이전에 재산세제의 정상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극 소수 ‘강부자’만을 위해 종부세를 무력화한다면 그 부족한 세수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채울 것인지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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