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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타임머신] 축제 그 이상의 의미, 비사대동제

 코로나19는 대학가의 풍경마저 바꿔놓았다.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와닿은 변화는 축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를 진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총학생회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에서 축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사실상 무산된 축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제1177호 뉴스타임머신은 1985년으로 향한다.

 

 많은 학우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사실이지만, 우리학교 축제의 정식명칭은 ‘비사대동제’다. 여기서 대동(大同)이란 ‘크게 하나됨’을 의미한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군부 독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다치거나 죽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당시 대학가를 지배했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이러한 흐름과 결합해 축제가 곧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적 의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1985년은 우리학교의 학도호국단(군사정권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 총학생회로 환원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간의 억눌렸던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의를 축제를 통해 쏟아내고자 했다. 당시 축제 슬로건인 “온몸으로 하나되자 민족통일의 그날까지”는 당시의 엄중했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축제를 진지하게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당시의 대학 축제도 학생들의 참여 부족과 소비·향락적인 행태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85년 10월 8일자 <계명대학보>(계명대신문의 옛 제호)에 실린 ‘술바다 축제를 되돌아보며’ 기사를 살펴보면 “주점의 상행위와 일반 학형의 행사참여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하며 특히 ‘줄다리기’를 진행하지 못한 데 대해 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갑자기 웬 줄다리기인가 하니, 전통적인 관점에서 줄다리기는 공동체의 단합과 결의를 보여주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학생들이 공동체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모든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운동을 이유로 수배를 받아온 최주태(당시 신문방송학·4) 씨는 축제 도중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많은 학형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고 “우리의 주장에 대한 현실의 모순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나섰던 그 시절 대학생들이 대동제에 임하는 심경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사는 끝으로 그룹사운드(가수)가 동원되어야만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언젠가 오고야 말 그날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체 문제에 무관심한 현재의 대학생들에게도 경종이 될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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