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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쟁점] '전시작전통제권, 그 뒷이야기'

전작권 환수를 위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우리군 자체에서 세부일정 세워 차질없게 진행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때 한국군에 대한 작전을 통제하는 권한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2012년 4월17일 부로 한국으로 전환된다. 김장수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2월24일 미국 워싱턴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열린 한ㆍ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작권을 2012년4월17일 한국군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양국은 또 2012년 3월로 예정된 한미전시증원(RSOI)연습에서 최종적인 전환 연습을 거치고 2주간의 보완 평가를 한 뒤 전작권 전환을 완결하기로 했다. RSOI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 본토와 한반도 주변에 있는 미군이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증원하는 절차를 연습하는 것으로 지휘관과 실무 병력 위주로 참가한다.

이에 따라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전작권은 이날부터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하게 된다. 전작권을 전환하는 동시에 북한의 남침에 대응하기 위해 한ㆍ미가 1978년 창설한 한미연합사는 해체된다. 연합사가 해체되면 한ㆍ미는 북한이 남침할 때 연합방위체제가 아닌 공동방위체제로 대응하게 된다.

이번 합의로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6.25 한국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전작권을 미군에 이양한 지 62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당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고 다시 대전을 방어하려던 중이었다. 그러나 7월14일 금강 방어선이 북한 인민군에 의해 돌파되자 이 대통령은 맥아더 유엔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이양했다. 이후 정전이 되고 54년 11월1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합의의사록에 유엔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을 갖도록 확인했다. 이후 북한의 위협이 커지자 한ㆍ미 양국은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CFC)를 창설하면서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이어 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후보공약으로 '작전통제권 환수와 용산기지 이전'을 제시했다. 90년대 초 구 소련의 붕괴와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미 행정부는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에 따라 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감축 방안을 내놨다. 소련의 붕괴로 북한의 위협도 감소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군은 94년 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누어 평시작전통제권만 환수했다.


● 전작권 전환 뒤 한미연합사 대신 군사협조본부 가동

한ㆍ미가 전작권 전환 시점을 확정함에 따라 전환을 위한 후속 작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양국은 당장 올 상반기 안에 전작권을 전환하기 위한 세부 일정을 세우기로 했다. 전작권 환수를 위해 합참이 준비해야 할 일은 89개 항목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는 한국측이 준비할 사안과 한ㆍ미가 함께할 일이 섞여 있다. 양국은 이번 합의에 따라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오는 7월까지 확정해 즉시 이행하기로 했다. 양국은 또 이 로드맵은 올 10월 서울에서 열릴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공식 서명할 계획이다.

한ㆍ미는 전작권 전환으로 연합사가 해체되면 이를 대체할 군사협조본부(MCC)를 만들고 그 안에 10개의 상설ㆍ비상설 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다. 평시에도 운영될 상설 및 비상설 기구는 계획작성ㆍ정보공유ㆍ위기관리ㆍ군사훈련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기타 전투전술발전ㆍ해외 군사협력ㆍ군수지원ㆍ지휘통제자동화(C4I)체계 등에 대해서도 협조하게 된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군사협조본부가 한미연합사처럼 작전통제 권한은 없지만 효율적인 작전수행을 위한 기능은 현재처럼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미군은 한국군의 육ㆍ해ㆍ공군의 작전사령부에 '작전협조반'을 파견할 계획이다. 각 작전사령부의 미군 협조반은 작전계획 발전을 위해 협조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 협조와 연락업무를 담당한다. 작전사간 협력창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공군의 경우는 신속하고 정밀한 공군작전의 특수성을 감안해 규모 및 협조면에서 보다 강화된 협조반을 운영해 통합작전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작전사령부는 육군 1ㆍ2ㆍ3군 사령부와 해ㆍ공군 작전사령부, 항공작전사령부, 특전사 등이다.

양국은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전환한 뒤 발생할 수 있는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간 관련약정(TOR: Terms of Reference)을 체결하고 4가지 원칙을 약속했다. TOR에 명시될 4가지 원칙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유지, 주한미군 지속 주둔 및 미 증원군 전개 보장, 정보자산 등 한국군 부족전력 계속 지원, 연합대비태세와 억제력 유지 등이다. 특히 미국은 전작권을 전환하는 과정 또는 전환 후에라도 북한이 남한의 전력 약화를 이용해 남침할 가능성에 대비해 강력한 보완전력(bridge capability)으로 한국을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 측은 단독 작전계획 수립 외에도 연합사의 전쟁수행 기능을 대신할 합동작전사령부 설치, 육군 1ㆍ3군을 통합한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휘통제자동화체계(C4I) 보강 등이 시급하다. 또 한ㆍ미간엔 작전 협조를 위한 협조본부(MCC) 구성과 협조 사항 등을 분류, 유엔사령부의 임무 재정립 등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군 위주로 이뤄질 지상작전에서 미군의 지원 역할, 미군이 주도할 해ㆍ공군작전에서 협조 방식 등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국군은 2011년까지 151조원을 투입해 다목적실용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이지스급 구축함, 동굴진지 파괴용 합동직격탄(JDAM) 등 대북억제전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합참 관계자는 "전작권의 전환은 한국군이 수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췄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 새로운 한국군 작전계획

우리 군은 전작권 전환 이후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한국군이 수행할 새로운 작전계획을 구상중이다. 이 작전계획은 기존의 한미연합 '작전계획 5027'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첨단 방식을 적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즉, 북한이 먼저 남침하면 일단 평양 등 북한군의 주요 전략거점을 점령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현행 연합사의 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은 북한이 먼저 남침하면 한미연합군이 일단 방어태세를 취하며 미군 증원전력이 한국에 도착한 뒤에야 침공한 북한군을 몰아내도록 돼 있다. 따라서 기존의 '작계 5027'대로 하면 아군의 초기 희생이 너무 크고 북한 지역까지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합참이 구상중인 한국군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북한군이 먼저 남침할 경우 한ㆍ미군이 공동으로 북한군의 전쟁지도부 등 전략거점을 우선 점령해 북한군을 마비시킨 뒤 북한군을 해체ㆍ평정하는 작전방식으로 희생이 적고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북한군의 선제공격에 대한 반격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한ㆍ미군의 첨단 전력과 기동성이 높은 부대를 활용한다. 미군의 첨단 정보력과 토마호크 등 정밀타격 무기를 결합해 북한의 핵심 통신체계와 전투력을 파괴한다. 그런 뒤 기동성이 뛰어난 특전사ㆍ미군의 정예전력을 투입하면 북한군 전략거점에 대한 조기 점령이 가능하다. 그러면 북한군을 마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전쟁방식은 최근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증명됐다.

다시 정리하면 전작권 전환 뒤 한국군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1단계로 첨단무기와 한ㆍ미군의 정보전력을 활용해 북한군의 전쟁지도부가 있는 평양 등 주요 거점에 대한 집중 타격 후, 특전사 등을 투입해 점령한다. 2단계는 대규모 한국군 지상군을 전면적으로 투입해 북한군을 제압하고 무기를 회수하는 평정작전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군 당국은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에 공식 착수한 지 2년 만에 작성하고 2년 동안의 평가과정을 거쳐 완성할 예정이다.


● 미국측의 양보

이번 합의는 미국이 당초의 입장보다 크게 후퇴해 한국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사실 한ㆍ미는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을 2009년 10월15일에서 2012년 3월15일 사이에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국은 합의 후에도 전환 시점을 두고 미측은 2009년을, 우리측은 2012년을 주장해 왔다. 한국측은 5년은 준비해야 가능한 전작권 전환을 3년만에 하면 유사시 작전 수행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그래서 한국측은 당초 2012년 10월1일 국군의 날을 기점으로 전작권을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이처럼 양국의 입장이 팽팽한 상태에서 미국이 지난해 합의한 전환시기보다도 한달이나 뒤에 전환하자는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준 것이다.

전작권을 2009년에 전환해도 한반도 방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온 미국이 전환 시점을 2012년으로 크게 양보한 것은 전환 준비와 관련된 한국측의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군은 전작권을 넘겨받는 데 5∼6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해왔다. 한국군이 단독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데만 2년이 걸린다. 이후 새로운 작전계획을 한국군에 적용해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 및 보완하는 데도 2년 가량 더 소요된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의 수뇌부 교체도 이번 합의에 영향을 줬다. 지난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2009년에 전작권을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고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에 보고했다. 당시 벨 사령관이 보고한 전작권 조기 전환안은 "모든 사안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럼즈펠드 전 장관의 스타일과 딱 맞았을 것"이라고 미 국방대학교 전략문제연구소(INSS) 제임스 프리스텁 선임연구원이 말했다. 따라서 벨 사령관은 럼즈펠드 장관이 있는 한 2012년에 전작권을 전환하자는 한국측의 입장을 쉽게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12월 럼즈펠드 전 장관이 게이츠 장관으로 교체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벨 사령관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여건 속에 지난해 12월 윤광웅 국방장관이 김장수 장관으로 교체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를 역임한 김 장관은 한미동맹 관계에 대표성이 있다고 미측은 이해한 것이다. 김 장관은 올 2월 7∼8일 서울에서 열린 올해 첫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미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리차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을 설득했다. 롤리스 부차관은 김 장관에게 “그동안 한국 정부의 신뢰성에 대해 오해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고 김 장관은 용산미군기지가 이전할 평택기지 조성사업이 지연된 사유 등을 충분히 설명해 이해를 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롤리스 부차관은 김 장관을 신뢰하게 됐고 이런 사정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등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국방부 측은 이번 합의와 관련된 미 국방부측의 태도 변화를 두고 한미동맹관계가 오랜만에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 국민의 정부 이래 줄곧 하강곡선을 긋고 있던 양국의 군 당국이 처음으로 신뢰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