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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사회와 학위 그리고 대학의 학문 연구

'증(證)'의 전쟁…우리 사회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 7월 초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위가 가짜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해도 곧 잠잠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간 가짜학위 사건은 심심치 않게 있어왔고, 곧 세간의 시선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마줄기에 달려 나오듯이 연이어 가짜 학위자들에 관한 의혹들이 매체를 장식했다. 또한 실제로 학위를 속인 이들이 구설수에 올랐다. ‘굿모닝 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 씨, 동숭아트센터 대표이자 단국대 교수인 김옥랑 씨,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 배우 윤석화 씨, 가수이자 방송인인 주영훈 씨도 학력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개그맨이자 감독인 심형래 씨와 탤런트 최수종 씨도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렇게 이전과는 다르게 전방위적으로 일종의 가짜 학위자 색출작업이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학위를 속였다거나 가짜학위로 교수에 임용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일종의 음모론 차원에서 더욱 증폭된 점이 있었다. 신정아 씨의 경우, 이미 가짜 학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로 임용된 데는 나름의 세력 비호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다. 이점이 그간 다른 사안들과 다른 점이었다.

따라서 많은 언론매체들은 이점에 주목했고, 이면의 거대한 진실을 캐낸다는 명문으로 전방위적인 색출작업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정작 가짜 학위자들에 대한 들추기는 문화예술계에 집중하더니 아예 연예인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신정아 씨는 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라 이후의 가짜 학위자들은 신정아 씨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어야 했다.

그래서 가짜 학위자 들추기가 인지도가 높은 톱스타들에 모아졌다. 이 때문에 학력 검증 시스템이나 가짜 미국박사 학위 현황과 가짜학위로 임용된 이들, 미국의 학위공장 등이 덜 주목을 받았다. 한동안 연예인 학위 들추기 이후에 신정아 씨 임용과정의 청와대 개입설이 증폭되면서 언론은 권력의 비호 여부에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좀 강한 것을 다루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가짜학위사태는 인지적 선정성에 좌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결국에는 왜 가짜학위를 만들어내는가에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 근본 원인이 학벌 사회라고 하는데, 심리학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일종의 학위 후광 효과 때문이다. 이것은 유명대학 졸업자이면 사람 자체가 달라 보이는 현상이다. 이러한 학위 후광 효과가 크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학 학위 여부로 판단하는 정도가 강해야 한다. 대학 학위여부로 사람을 판단할수록, 그 사람의 내면은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곡해를 지적할 부분도 있다. 문화예술계 사례가 유난히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간 문화예술계는 학위에서 자유로운 측면이 있었는데 오히려 우리 사회의 학벌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고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전반적으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학벌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학위는 하나의 완장이 된다. 거꾸로 한 번에 유명 대학의 학위를 따내면 평생 그 이름에 기대어 지위를 누린다. 학위에 기대어 평생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이 ‘학위의 효과’다. 한국에서는 외국학위 후광 효과가 매우 크다.

해외 학위자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선망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국내 학위자들은 실력에 관계없이 임용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진정 나은 학문을 배우는 것일까?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미국 등으로 학위코스를 밟으러 가는 것은 해외학위가 더 세기 때문이다. 즉 해외에 나가는 것은 진정한 유학이 아니라 국내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효과는 일단 국내에 와서 임용만 되면 연구를 하지 않는 교수들을 양산하게 만든다. 따라서 실력이 있는 가짜 학위자들보다 실력이 없으면서 진짜학위만 있는 이들이 더 위험하다. 실제로 학위만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단순히 가짜 학위자들을 엄중하게 걸러내야 한다는데 대안의 초점을 맞춘다. 즉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정작 학벌사회를 공고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예컨대, 대학 자체에 대한 비판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모호하게 학벌사회나 학위를 속이는 개인의 악성(惡性) 만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명대학의 책임은 크다. 그들이 교육부와 싸우며 대학의 자율성을 요구하거나 서열 순위를 높이는 것은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가는 대학이라는 이미지 브랜드를 높여서 학위장사를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부실하게 운영되는 최고과정이나 특수대학원의 양상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실력 있는 이라면 당연히 후학을 통해 그의 실력을 계속 계승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교육제도의 존재 이유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가나 천재를 범인들이 어떻게 평가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학위제도의 결함일 수 있다. 범인(凡人)이 학위제도를 통해 대가와 천재, 아니 훌륭한 인재들을 고사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 학위가 만능은 아닌 것이다.

정말 가짜학위사례를 없애고 싶다면 학위제도에 대해 다시 고려해야 한다. 대학이 학위 장사를 하지 않고, 학위 특히 해외 학위에 의존해 교수를 임용하는 행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학벌사회 탓이나 한국 민족성 혹은 개인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부차적이다.

학위가 없어도 한 분야에서 업적이 인정되면 교수로 임용해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더욱 그러하다. 실력자들이 주류가 되어 실력 없이 학위에 기대어 군림하는 가짜들을 쫓아내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수만 명이 해외에서 생돈 들이면서 생고생 할 일이 없어지니, 이른바 유학낭인이 사라질 것이다. 국내에서 실력을 닦고, 업적을 쌓으면 될 터이니 한국 학문과 예술이 더 진흥될 터이다. 학문에서 자기 소외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한국의 대학들은 학위장사하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대학원 중심 대학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외형적인 학위요건만을 강화하는 시스템은 국내 명문 나아가 해외명문대학의 학위 장사나 도와주는 꼴이 되기 쉽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학문에는 숙련과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선진 학문의 제도적 요건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이다. 해외학위에 대한 강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과연 학위자들이 현실 적용성 있는 결과를 만들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학과 과정이 꼭 필요한 부분은 인정하되,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하며, 임용기준에서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신 실력 있는 사람들을 학위에 관계없이 뽑고 그들이 학자로써 제대로 된 업적을 만들어내지 않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자체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는 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느 날 한순간 교수나 판사, 고위 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충분히 실력과 경험을 쌓은 사람이 지위자격을 갖는 문화 말이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