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동두천 3.0℃
  • 맑음강릉 3.8℃
  • 구름많음서울 4.2℃
  • 맑음대전 3.2℃
  • 맑음대구 3.7℃
  • 맑음울산 6.0℃
  • 맑음광주 5.4℃
  • 맑음부산 5.8℃
  • 맑음고창 4.1℃
  • 맑음제주 8.1℃
  • 흐림강화 4.8℃
  • 맑음보은 0.4℃
  • 맑음금산 0.7℃
  • 맑음강진군 2.6℃
  • 맑음경주시 1.7℃
  • 맑음거제 4.4℃
기상청 제공

한미 FTA 저작권 협의의 문제점

저작권보호기간의 연장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거대 문화자본의 '해적질'



미국 문화자본의 지식 해적질 (한미FTA 저작권 협정의 문제점)

미국이 그동안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협정이다. 미국은 언제나 현행 국제협정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저작권 보호를 상대국에 요구해 왔으며, 한미FTA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이렇게 높은 수준의 저작권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월트디즈니와 헐리우드 등 저작권으로부터 실질적인 이득을 보고 있는 거대 문화기업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문화와 지식산업에 대한 자신들의 패권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FTA에서 미국의 요구와 같이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강화한다고 문화와 산업이 발전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제도의 정책적인 목적은 권리보호와 동시에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최대한 정보가 유통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많은 창작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저작권자의 독점적인 권리만을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지식과 정보의 유통과 이용을 위축시키며, 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알권리를 침해하고,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등 기본권과 충돌할 수도 있다. 한미FTA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일방적으로 저작권보호를 강화할 경우 이런 문제들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미FTA의 저작권분야에서 예상되는 미국의 요구사항과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해서 살펴보면, 첫 번째로 저작권보호기간의 연장을 들 수 있다. 미국은 1998년 '소니보노법'을 제정하여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까지 연장하는 한편, 싱가포르, 호주, 칠레와의 FTA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소니보노법과 일치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소니보노저작권보호기간 연장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을 연장하기 위한 월트디즈니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다. 이법은 미국 내에서도 대다수 국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미키마우스법'이라고 불리며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일반적인 재산권과는 달리 저작권보호기간에 제한을 두는 이유는 정보가 인류공동의 자산이라는 성격에 기인한다. 창작물에 대해서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창작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공공영역으로 편입시켜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키마우스법으로 인해서 미국에서는 공공영역으로 들어가 민중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40여만개의 저작물이 또다시 저작권의 테두리에 갇히게 되었다. 여기에는 알렉산더 밀른(A. A. Milne)의 1926년작 <곰돌이 푸우>(Winnie-the-Pooh)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의 1923년작 <세편의 단편과 열편의 시>(Three Stories and Ten Poems)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저작권보호기간의 연장은 곧 민중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거대 문화자본의 '해적질'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저작권보호기간이 20년 더 연장이 된다고 해서 창작의 욕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또한 창작의 인센티브는 앞으로 생산될 저작물을 위한 것이지, 미키마우스와 같이 이미 만들어진 저작물을 위해서 부여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은 미키마우스의 로열티의 회수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공공영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몇 가지 예외적인 저작물의 보호를 위하여 대부분의 저작물의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며, 문화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디지털도서관 조항에 대한 축소요구이다. 도서관의 역할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빈곤계층에게 정보접근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정보와 편입이 정치적 기득권층이나 경제적 부유층에게 편중되어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지양하고, 정보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저작권법은 도서관에 대해서 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면책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이용자가 디지털 정보를 네트워크 상에서 원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도서관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한미FTA에서 디지털도서관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미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장벽보고서에 한국의 디지털도서관에 대한 요구사항이 있는데, 저작물을 디지털화하기 30일 전에 저작자에게 고지를 해야 하며, 어문저작물에 한정해서 디지털화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전자는 모든 저작자로부터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모든 저작자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감안해 볼 때, 도서관은 자료의 디지털화를 포기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저작물의 종류는 사진, 그림, 영상 등 매우 다양한데, 어문저작물에 한정할 경우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은 매우 제한될 것이다. 이런 미국의 요구는 디지털도서관의 면책규정을 매우 축소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위축시킬 것이다.

세 번째로, 저작권침해에 대한 처벌규정의 강화이다. 한국의 저작권법은 저작권침해에 대해서 권리자가 고소를 해야만 처벌을 할 수 있는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친고죄규정을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저작권자들 중에는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유의사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이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는 이유는 이런 권리자들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권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 국가가 나서서 저작물을 사용한 자를 처벌할 필요는 없다. 또한 저작권이 공익적 측면에서 지식정보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권리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이를 최대한 사회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사회적인 손실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이다. 만약 친고죄가 폐지될 경우, 사회적인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며, 그렇지 않아도 폭증하고 있는 저작권관련 소송을 더욱 증가시키고, 의도치 않은 범법자들을 양산해 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과 기술적보호조치규정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지면의 한계로 모든 내용을 다 다루지는 못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 대책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http://nofta-ip.jinbo.net)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FTA에서 저작권조항은 사실상 미국 거대 문화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류 열풍을 들먹이면서,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주장의 배경에는 구체적인 수치나 근거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미국과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매우 다르며, 산업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더라도 미국의 요구대로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와 문화발전을 위한 길인지도 의심스럽다. 2002년 미국의 저작권 관련 산업이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이며, 그 총액은 6천2백66억 달러였다. 2002년 당시 한국의 총 GDP가 5천4백69억 달러였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미국은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보다도 약 800억 달러나 높은 규모의 저작권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세계은행(World Bank)은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에 맞추어 강화할 경우, 가장 손해 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으며, 미국은 1백90억 달러의 이익을 보는 반면 한국은 1백5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볼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정부는 더 이상 지적재산권의 강화가 한국사회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을 펼쳐서는 안된다.

현재 한미FTA 협상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조차 무시하고 몇몇 공무원에 의해서 밀실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반민주적이고 위헌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