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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에 대처하는 언론의 자세

언론은 FTA 협상 결렬부터 성공까지 모든 것을 열어놓고 보도해야


“수치를 최대한 높여”, 작년에 발간된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란 책의 한 내용이다. 이 책을 쓴 존 퍼킨스는 스스로가 경제저격수임을 밝히고 있다. 즉 미국 국가안전보장국과 연계된 국제컨설팅회사에 입사해 경제개발국가들의 온갖 개발가치를 부풀리면서 차관을 도입시켜 결국엔 부채를 갚지 못할 상태로 만들어 미국이 조종하기 쉽게 만들어 버린다는 내용이다.

경제저격수가 실패할 경우 주요 요인을 암살하는 자칼이 등장하며, 그마저 성공하지 못하면 군사를 동원해 접수한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을 폭로한 내용이다. 경제저격수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이 자신이 부풀려 놓은 전망을 더욱 포장해서 국민에게 알리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FTA협상을 보도하는 언론이 유념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무엇이 과대 포장된 정보인지 사실은 무엇인지 꼼꼼히 따지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 세대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아이들까지 영향을 받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 받아쓴 장미빛 전망


2월 3일 워싱턴 미 상원의사당에서는 한미FTA 추진이 발표된 시점에 맞춰 방송3사는 정부가 제시한 온갖 전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검증도 의심도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걸쳐 놓았지만, 한미FTA는 정부의 말대로 이것이 앞으로 나가는 길이라는 것이 언론의 공통적인 목소리였다.

“생산은 14조가 늘어나며 국민소득 2% 증가, 일자리 10만개 만들어지고, 건설, 교육 등 구조조정을 거치고 나면 3조 이상의 생산이 증가된다”(MBC 2.2 양지…음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늘긴 하지만 상품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 후생이 좋아지고 국가 신인도 상승으로 외국인 투자 70% 늘어난다”(SBS 2.2 득과 실), “수출 71억 증가, 미국 기술 유입 일본 의존형 구조 벗어나고 대일 무역적자 줄일 수도”(KBS 2.3 협상 개시 선언/명암 엇갈려).

이 같은 내용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여기서는 FTA 체결 이후 한국 GDP가 1.99% 증가하고 대미 수출은 71억 달러 늘며, 미국의 한국 수출은 1백22억 달러가 증가될 전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대미 무역수지가 빠져 있으며, 그 내용은 한미FTA 체결 이후 72억7천만 달러 감소 된다는 분석이 있다고 ‘월간 말’(5월호)이 보고서의 누락부분을 입수, 폭로했다. 또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KIEP의 조사 방법을 시연했더니 GDP는 -0.32%로 나타났다며, 무역수지 수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장밋빛 전망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이 같은 내용은 방송에서 단신으로 처리됐다.
또 방송은 미국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소위 ‘한국의 장벽’과 2월 9일 소위 4대 선결조건을 명시한 미국 의회 조사 보고서(CRS)조차 외면했다. CRS에는 로버트 포트먼이 한국에서 쇠고기, 자동차, 의약품, 스크린쿼터의 양보가 있었으며, 이것을 양보하지 않았을 경우 한미FTA 협상은 시작할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월드컵 올인, 한미FTA 외면


6월 5일부터 9일까지 한미FTA 1차 협상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하지만 방송사는 월드컵 보도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었다. 6월 1일부터 11일까지 KBS, MBC, SBS의 저녁 메인뉴스 중 3백98건(39%, 총 기사 1천19건)이 월드컵으로 채워졌고, 한미FTA 1차 협상 내용은 61건(6.0%)에 머물렀다.

방송사는 시청광장 응원 입찰에 컨소시엄을 꾸려 월드컵 ‘올인’ 채비를 했지만, 왜 한미FTA를 이렇게 급하게 하는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다른 국가들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놓은 상태였다. 월드컵 광풍을 조장하는 방송을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있었지만 방송사들은 귀를 꼭 막고 월드컵 특수효과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방송은 1차 협상이 끝난 뒤에도 “우리측, 첫 단추 잘 끼워졌다” “미국측, 협상 마무리 길조라며 만족” 등 양국 정부의 일방적인 소감만이 전달됐다. 왜 유익한 협상인지, 뭐가 잘됐다는 건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족했다. 또 FTA 저지 원정단의 시위를 전달하는 내용에서는 경찰과의 충돌이 있을 것인가에 주목했지,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 진실, 아니 사실만이라도


한미FTA에 파열구가 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방송의 힘이였다. 한미FTA 1차 협상 시점인 6월 4일 KBS 스페셜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는 그동안 지상파에서 보지 못했던 내용들을 쏟아냈다. 즉 멕시코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린다던 나프타가 그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정부의 한미FTA의 장밋빛 전망에 대치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는 ▲무너진 멕시코 농촌과 마킬라도라의 실태 ▲문 닫은 중소기업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자들의 모습 ▲환경 파괴주범인 메탈클래드사가 이긴 소송사건 ▲멕시코 영화산업의 현실 등을 서술해 갔다. 또 수출 3배, 외자도입 개도국 3위의 외형적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구매력 80위의 모순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2차 협상에 맞춰 MBC PD수첩은 7월 4일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편을 통해 론스타가 한미 FTA를 통한 투자자 보호조치와 한국정부의 조세에 대해 미국 상원과 하원, 무역대표부, 상무부, 재무부에 로비를 펼쳤다는 사실을 알렸고, 미국식 FTA의 독소 조항인 투자유치국 정부에 대한 제소권의 위험성을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를 통해 제시하기도 했다.

PD수첩은 이어 7월 18일 정부가 그토록 부인해 오던 4대 선결조건이 명시돼 있는 5차 대외경제위원회 문건(2005년 9월12일)을 공개했다. 방송이 나간 지 3일 후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4대 선결조건이란 용어가 정부문건에 사용됐음을 밝혔다.

하지만 PD 수첩에 대한 아쉬운 점은 있다. 8월10일 한겨레 신문은 중국이 지난해 5월께 우리나라 정부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제안하며 농산물 시장에서의 양보라는 파격적 조건까지 내놓았으나, 정부는 우리에게 불리한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미국과의 협정 체결을 강행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것은 5차 대경위 문건을 분석한 뒤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PD수첩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문건을 들고 있었지만 단순히 4대 선결조건이란 문구만을 국민에게 확인시켜주는 데 그쳤다.


◆ 소극적 의제 설정을 넘어


한미FTA 3차 협상은 양국간 양허안을 교환하면서 관세 철폐 기간과 수위를 논의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협상이 타진 정도라면 이번에는 주고받기식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시애틀에서 열리는 협상을 앞두고 방송3사는 기획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협상을 어떻게 하면 유리하게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협상 전략은 무엇인가 등의 아이템으로 구성돼 있다. 협상의 성사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FTA가 국민과 국회를 외면한 채 정부가 독주하고 있다는 문제는 거론하지도 않고 있다.

국민은 단순히 협상을 잘하자는 식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언론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왜 한미FTA를 두고 주장이 극과 극을 치닫고 있는가, 정부의 온갖 선전홍보는 타당성이 있는가, 미국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등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한 언론은 한미FTA 당위성만을 외치는 정부의 프레임에 매몰되지 말고, 협상 결렬부터 성공까지 모든 것을 열어놓고 보도해야 한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