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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타살인가, 보복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계에 여야 공히 쇄신 요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자살로 삶을 마감, 5월29일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장례기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거나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서 조문했거나, 노재에 참가했던 추모객이 500만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는 성인도 아니다. 또한 카리스마를 가진 종교의 지도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추모객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자살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600만 달러 내외의 비리혐의 자금과 관련한 피의자 신분이었다.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이 문제로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부인인 권양숙 여사도 참고인으로서 검찰조사를 받았고, 또다시 불러갈 시점이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것인지, 불구속 수사할 것인지를 막판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그는 고향마을 인근의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의 단순한 자살 이유는, 검찰조사에 따른 법적 책임을 죽음으로 도피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수 백만명의 조문인파가 있었다는 견지에서 보면 정치현실적인 이유가 설득력을 얻었다고 봐야한다. 노무현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 작가는 정치적 타살이라 했고, 노무현 측근으로 분류되는 유시민 전 장관은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상황(검찰의 과도한 수사)에서는 나라도 뛰어내렸을 거라며 동정했다. 언론 단체들도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하며, 정부와 검찰을 비난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자살은 현실 한국정계에 지대한 파문을 던졌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정치탄압-정치보복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망케 했다는 도덕적 비난을 받고 있다. 정치보복의 두목(?)으로 지목되는 민심의 흐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헌법에 따라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단회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2013년 2월25일이면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정치보복을 받아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과연 어찌될까?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호에서 이명박 대통령 퇴임이후의 정치보복을 우려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임기가 끝나면 그나 그 측근들이 비리수사의 도마에 오를 수 있어, 청와대 의자가 좌불안석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장되어 가루로 변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주요 핵심 권력기관 지도자들의 청렴성을 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계요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초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시위로 정부붕괴 위기를 경험 했다. 이어서 온, 노무현 자살-장례정국은 또 다른 위기의 하나였다. 민심의 이반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결국 노무현의 자살-장례정국은 이명박 정권이 끝났을 때 최종적으로 그 무게를 판단하겠지만, 이 정권 성공의 장애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민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일정을 보면, 2010년에 지자체선거가 기다린다. 이 선거에 따른 여야의 대결구도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노무현 비리사건을 수사했던 수사라인인 김경한 법무부 장관,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 말하는 정치적 타살이라는 관점과 수백만 조문인파가 흘린 눈물에 의한다면 진실이 무엇인지를 떠나 인간적으로 몹시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 6월 3일 쓴 사직서의 변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언급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한 인간적인 고뇌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제가 검찰을 계속 지휘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피력했다. 민심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읽어 낸 후에 쓴 내용임을 알게 해준다. 그는 “이번 사건 수사를 총지휘한 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께 사죄드린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수사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한단계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자살-장례 정국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는 여야 공히 쇄신을 요구 당하고 있다. 이명박-이상득 형제정치로 비난받던 주인공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자발적인 발언으로 2선으로 후퇴를 선언했으나 사실은 한나라당 중심에서 퇴출 당한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상득 의원의 자진퇴출은 스스로의 정화(淨化)를 의미한다. 향후, 이상득의 퇴출처럼 여야 정치권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타의에 의해 타율 정화를 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퇴진을 요구하고, 이 대통령의 탄핵서명운동을 지속할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 124명은 지난 6월 3일 시국선언을 했다. 이 선언 이후 각 대학교수-종교성직자-유명 인사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질 것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들은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했다. 또한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을 촉구했다. 그뿐 아니라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권이 집권연장을 위한, 영호남 합작을 통한 재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차용된 인물이었다. 인간적으로 미흡했던 부분이 많았던 노무현, 그의 정치적 유용성은 퇴임과 동시에 만료됐고, 그의 죄업은 자살로 무죄가 됐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살-국민장에서 보여주었던 민심은 이명박 정권의 심장을 압박하는 압박붕대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보복을 종식하고, 지역 간의 첨예한 대립, 남북 간의 평화적 대안을 찾아내라고 종용 당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자살-장례정서는 이후 개헌을 최대정치 현안으로 부상 시킬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국가 통합과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망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가족-측근 문제를 포괄해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다. 그 행동은 자신의 위기를 혁파하고, 다수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그의 자살이 미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살아 있는 사람은 활기차게 살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