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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사랑 이슬람 VS 무력 통치 IS, ‘달라도 너무 달라’

IS, 같은 종파 마저 살육 … 선전전에 현혹된 각국 청년 3천여명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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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엽기에 가까운 만행이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인질에 대한 참수와 화형도 모자라 중동 지역 고대 인류 유산을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몰지각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주민에 대한 만행은 더욱 극악무도하다. 도둑질을 한 사람은 손을 절단하고, 남의 여자를 훔쳐다보았다고 참수를 하는가 하면 동성연애자로 의심되거나 흡연을 했다는 이유로 고층건물에서 산 사람을 밀어 떨어트리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IS가 참혹하고 반인륜적인 그들의 행각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탓에 이슬람 종교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한층 차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은 세계평화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종교이다. 그리고 자애로운 하나님 알라(Allah)에 절대 복종할 때만이 세계평화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주지할 사실은, 그 기저에 “인간이 복종해야 하는 대상은 유일신 알라밖에 없으며 그 이외의 존재는 모두 평등”하다는 만인평등사상이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무슬림(Muslim : 이슬람신자를 일컫는 말로 ‘하나님에 복종하는 자’의 의미)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댄 채 한 줄로 대형을 맞추어 기도한다거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타계했을 때 그 시신을 일반 공동묘지에 안치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슬람에서 알라 이외에는 앞서는 사람도 뒤에 서는 사람도 없다.

이슬람 태동 초기 이슬람 교리를 일반인에게 전파하는 과정에서도 이슬람의 평화주의는 온전히 실천되었다. 초기 이슬람 정복자는 폭력을 동원하여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았다. 정복지의 통치자에게는 통치권을 그대로 허락했고, 타 종교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단, 이슬람으로 개종할 경우 세금을 확연히 낮추어 주고, 이슬람사원에서 글을 읽고 배울 수 있는 교육 혜택을 주어 자연스럽게 교세를 확대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 정복 당시의 상황을 상징하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표현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작금에 IS의 행태는 어떠한가? 그들에게서 세계평화니 만인평등이니 하는 가치는 찾아 볼 수 없다. IS의 수장 알바그다디는 2014년 6월 자신을 칼리파(Kalifa, 이슬람 창시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라는 뜻)로 자칭한 이후 정복지 주민들 위에 군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추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처단하면서 같은 무슬림 간에도 계층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에 대해 무력 공격을 자행한 세력에게만 제한된 무력 행위로 맞설 수 있다는 이슬람의 행동 규범의 하나인 지하드(Jihad, 주로 성전聖戰으로 번역됨)가 IS에서는 최후가 아닌 최고의 통치 유지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슬람 태동 이후 1천4백년 가까이 이슬람과 공존하며 이웃사촌 간으로 살아오던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비수를 맞대는가하면, IS와 동일한 종파, 수니파의 종주국 중 하나인 요르단 출신 공군 장군도 IS의 무관용주의 앞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IS의 만행에 전 세계가 분노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고 있다. IS의 당사국인 이라크 정부군은 미군의 지원을 받아 IS 격퇴를 위한 지상 작전을 시작했고, 요르단과 UAE는 국적기를 동원하여 IS의 요충지에 연일 포격을 가하고 있다. 서방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이 군사 작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동맹국들도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저울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서방국가와 마찬가지로- IS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IS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IS를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고립시킴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 집단이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고 ‘국가’로 선언하는 도미노식 확산을 차단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IS의 문제는 단순히 중동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IS는 할리우드식 영화 기법까지 동원하여 전 세계인을 상대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미 국방성 고위 간부가 ‘선전전의 교과서’라고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그들의 선전 동영상에 세계 청년 3천 명 이상이 IS로 몰려들고 있다. IS는 이슬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이슬람 최고 가치인 세계평화 구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세계인 모두가 IS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방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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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디어 대한 맹신,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극복해야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