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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출생의 비밀로 회귀하는 드라마들

비밀과 거짓말의 플롯


한국 드라마들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모던하고 보편적인 삶을 그려내는 일에 더 이상 관심을 끊은 듯하다. 전통적 가부장제 옹호나 불륜과 출생의 비밀만이 내수시장을 선점하는 묘약으로 여기는 듯하다.

‘출생의 비밀’은 아예 설정의 일부일 정도로 만연해 있다. 비밀은 수많은 거짓말을 동원해야만 유지된다. 심지어 세대를 이어 전승되며 모든 가족 구성원의 정신을 좀먹는다. 한동안 한류와 세계 시장 겨냥으로 이런 플롯들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요즘은 다시 대세가 되었다.

KBS 주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김간호사’ 복실(유선 분)의 경우는 등장 초부터 거짓 정체성이었다. 병원장의 딸이며 의사인 제니퍼 김이라는 진짜 신분을 숨긴 채 3년이나 ‘김복실’로 솔약국집 식구들을 속인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병원장인 아버지의 사생아였다. 출생의 비밀로 정체성이 왜곡된 그녀는 내내 방황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가출했다. 그리고 그 3년을 완전히 다른 인격의 거짓 신분으로 살았다.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도 모든 원인은 쌍생아 탄생을 비밀에 부친 데 있다. 한 아이만 공주로 키우고 한 아이는 버린 부도덕한 왕실의 비밀은 미실(고현정 분)처럼 거짓으로 일관된 악의적 전략가에게 좋은 빌미가 된다. 게다가 미실 자신도 아들을 버린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다. SBS <태양을 삼켜라> 또한 장민호(전광렬 분)를 위해 개가 되기로 충성을 맹세하고 장태혁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까지 간 김정우(지성 분)가 실은 그의 사생아라는 설정이다. 소모품처럼 쓰고 버린 김정우는 결국 자신이 사랑한 여인의 아들, 즉 자신의 첫째 아들이었다.

이처럼 천륜인 부모 자식 관계도 거짓투성이니, 부부 사이는 더욱 거짓말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부부는 서로를 속이며 한눈 파는 데만 골몰한 관계로 사랑은 불륜에서만 찾을 수 있는 듯이 그려질 정도다. 어쩌면 우리는 ‘비밀’에 깊이 중독되어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들에 둔감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웬만한 비밀과 거짓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무뎌진 감성이 패륜으로 꽉 찬 ‘막장 드라마’를 불러내는지도 모른다.

가족 비밀의 비극성은 자녀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해도 이미 정신세계는 둘로 쪼개지고 비밀의 내면화로 인해 사고가 왜곡된다는 데 있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들의 경우,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데서 오는 비밀의 해악은 모든 등장인물의 의식을 좀먹는다. 그들은 너나없이, 명백한 사실도 부인하면 ‘없던 일’이 된다는 거짓의 메커니즘에 감염돼 있다. 비밀의 심각한 후유증은 상식과 몰상식을 구별할 능력마저 상실케 한다는 점이다. 비밀의 연결고리가 곧 플롯 자체가 되는 한국 드라마의 작금의 현실은 전쟁과 불행한 근현대사를 겪으며 비밀을 내면화한 우리 국민 모두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