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교환학생으로 갈 학교를 선정하던 날 아침이 생생하다. 알람도 없이 일어나 마음 졸이며 시침이 9를 가리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종 2위라는 만족스런 결과를 안을 수 있었지만, 서류합격 통지나 면접 때보다 교환학교 선정이 더 긴장되었다. 그때까지도 노르웨이에 갈지 미국에 갈지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학교는 텍사스에 위치한 아주 뜨거운, 글로벌한 학교였다. 범죄학이나 수사학 등 나의 전공 과목을 제공하는 학교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미국.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가 더 끌렸다. 사람은 종종 촉을 믿는다고 그랬나. 그래서 1위 학생이 미국을 선택해주길 바랐다. 미국 학교의 티오가 남아나지 않도록, 내가 미련을 버릴 수 있도록. 그러는 사이 내가 지원한 전형의 교환학교 선정이 다가왔다. 1학년 때부터 바라고 바라왔던 일을 눈앞에 두어서인지 손바닥이 흠뻑 젖었다. 담당 선생님이 1위 학생에게 어디로 선정할 거냐고 물었다. 일본이었다. 30초정도 후에 내 차례가 돌아왔다. 복잡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내 자아가 싸우기 시작했다-기보단 이미 싸우고 있었다. 1년 동안 아메리칸이 될 지 유러피안이…
2019년 12월 중국 우한발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우리의 비자발적인 ‘변신’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변신을 주도한 것은 2020년 10월부터 의무적으로 착용하기 시작한 마스크이다. 그리고 2023년 1월 30일부터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실내에서, 특히 강의실에서 우리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주지하는바 ‘변신(Die Verwandlung)’은 유대인으로 프라하에서 태어난 독일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작품 이름이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에게 가장 중요한 실존적 문제는 ‘외판원’이라는 존재조건이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실직으로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5년 동안 매일 새벽 기차를 타고 출근했고 그동안 충전은커녕,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한 적이 없다. 외판원으로 일하면서 수시로 갑질을 당하고 실적조차 부진해 회사 내 입지도 매우 불안정했다. 살다보면 누구나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든 때가 있다. 최근에 처음으로 넷플릭스(Netflix)에서 ‘더 글로리(T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이 벚꽃엔딩 노래 가사를 들으며 봄을 만끽할 우리 캠퍼스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을 환영한다. 벚꽃엔딩은 봄날의 낭만을 그리는 노래이지만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는 지방대학의 비애를 풍자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혹자들은 입학 자원의 수도권 대학으로의 쏠림과 생존 가능성을 ‘첫눈 오는 순서’로 풍자하기도 한다. 우리 대학은 어디에 속할까? 대학 입학 자원 부족은 지방대학의 생사와 직결된다. 통계에 따르면 2023학년도 수시 모집에서 지방대에 합격하고도 미등록한 학생이 3만 3천명에 이르고, 정시 모집에서 사실상 미달로 간주되는 경쟁률이 3:1 미만 대학은 68개이었으며, 이 중 59개 대학은 지방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20년이 지난 2040년경에는 국내 대학 중 절반 이상이 폐교될 전망이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우리 대학의 위기만이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지방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역과 대학은 불가분 관계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대와 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갖추면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 방지와 지방에로의 유학의 붐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지방자치
오늘도 밥은 제때 먹었는지, 수업에서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했는지 물으시는 아빠께 툴툴거렸다. 당신 딸의 나이가 별로 실감나지 않으시는 눈치다. 사실, 저 안에 담긴 아빠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 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 같은 학생들이 많으리라. 이 책은 어느 이름 모를 여사님의 일상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대화의 상대이자, 책의 저자인 김성우는 바로 그녀의 아들. 70대 초반쯤 되셨을 법한 여사님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거창한 시대적 사건부터 천 원에 산 감자 이야기까지-에 대한 단상들을 꾸밈없는 잔잔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편편이 분절된 것이 아닌, 세월만큼 깊어진 그녀의 너그러운 지혜로 꿰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한 여인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구술사이자 그녀의 에세이요,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철학서인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언어는 때로 우리에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별 관련 없는, 재주 많은 이들의 영역인양 느껴지기도 한다. 리터러시 연구자로서 문자 자체에 대한 이해력을 넘어 삶이 스며있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해 온 저자는 “나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서기 180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는 바티칸과 스페인을 점령하고,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에서는 노예무역을 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청나라는 영국에 마카오를 두 번째로 점령당했고, 일본이 나가사키 항구에 들어온 영국 군함 페이튼호에게 굴욕적인 일을 당한 것도 같은 해였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당시의 국가 재정, 경제, 군사력에 관한 주요 데이터를 담은 만기요람(萬機要覽)이라는 기록물을 만들었다. 만기요람에는 당시 조선의 군대가 보유했던 무기의 종류와 개수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활 3만여 부와 조총 4만여 자루, 그리고 납으로 만든 탄환 5백75만 개가 있었다고 한다. 조총과 함께 활이 조선후기 까지도 중요한 군사무기였음을 알 수 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을 통해서 총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조선은 조총부대를 창설하여 운용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백년 이상 활을 중요한 무기로 인정하여 활을 무기로 하는 궁수들을 양성하였고 부대도 운용하였다. 왜 조선의 군대는 활을 버리고 총으로 완전히 전환하지 않았을까. 조선의 활을 각궁(角弓)이라고 불렀는데, 각은 뿔이라는 뜻이다. 물소의 뿔을 사용해 만든 조선 각궁은 탄성이 매우 높아서 유효사거리가 1
계명대신문사로부터 이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대학 방송국 활동을 하던 시절이 떠올라 잠깐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대학생에게 권하는 한 권을 고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일 때 제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은 틀림없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어느새 나는 프랑스 벨빌 거리 어느 골목,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7층 계단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살찌고 병이 든 로자 아줌마에게는 힘이 부치는 계단입니다. 모모는 그녀가 자기를 돌봐주는 대신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 알았기에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는 하멜 할아버지는 길에서 양탄자를 팝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말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입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로자 아줌마는 모든 위조 서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대 째 순수 독일인이라는 증명서도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한밤중에 겁에 질려 지하실로 숨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로자 아줌마의 병이 깊어갈수록 모모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
1992년도 대학시절에 언더그라운드 가수 한영애가 발표한 ‘조율(調律)’이라는 노래가 유행을 했었다. 조율이라는 한자어는 ‘표준음에 맞게 조정함’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 영어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튜닝’이라는 표현이 좀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다. 현악기는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다가 보면 줄이 늘어나서 원래의 음을 내기가 어려운데, 조율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원래의 소리를 내게 된다. 노랫말에 보면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잡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노랫말의 행간의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 삶은 원래 미움, 고립, 충동, 외로움이 아닌 용서, 위로, 인내 그리고 편안함 이였던 것 같다. 아마도 작사가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해서 공존에서 경쟁으로 변모해 버린 그 시대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이제 갓 스물을 넘은 청년들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았는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시기가 점점…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누군가는 5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딥러닝,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누군가에게는 아직 생소할 이름의 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굳이 신기술을 언급하지 않아도 애플(Apple)이 아이폰(iPhone)을 최초로 공개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불과 15년이 흘렀을 뿐이다. 휴대전화를 공상과학 만화에서만 접하며 자란 어른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변화가 더디다고 느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청동기 시대가 시작할 때 청동기라는 새로운 질감의 도구를 공포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돌로 만든 도구에 향수를 느끼던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농경사회로의 진입이 인간에게 준 충격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충격보다 오히려 더 컸을 수도 있다. 교육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감에 있어 교육은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그래서 사회가 변하는 만큼 교육도 변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블레이드 러너(Blade…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초융합, 초연결, 초지능의 혁명으로서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성장이나 산업 발전 등이 팬데믹 속에 묻히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이란 혁신적인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와 새로운 성장을 이루어낼 동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말 그대로 디지털을 매개로 한 플랫폼이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경제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디지털 지능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경제 질서와 삶의 표준을 재정의하는 뉴노멀 시대의 디지털 플랫폼은 다양한 콘텐츠와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며 팬데믹의 영향으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원활한 소통을 지원하며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MIT미디어 랩의 미션은 보통 사람도 정말로 대단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게 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들, 즉 건강과 부, 행복도 자기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으로서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 설마 가능할까? 하고 불가능하게 여겼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원천이 무한한 창조적인 사고, 개인의 변화를 중요시하고, 기술에 휴머니즘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하기 싫은 것도 많다. 내게 주어진 기회인데 나의 싫은 감정 때문에 일을 망치면 내게는 손해이다. 이런 고민에 여러 해 전 우연히 접한 ‘입보리행론’의 한 구절이 답을 주었다.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 무엇이 있겠으며, 만약 바꿀 수 없다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감정은 싫다가 좋다가 왔다 갔다 하지만 일은 내가 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입보리행론’은 내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입보리행론’은 남인도의 승려이자 불교학자인 샨티데바가 지은 대승불교서이다. 제목 그대로 보리심(菩提心)을 세우고 행하는 방법을 논한 책이다. 보리심은 깨달음으로 나의 고통을 없애고,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거대한 이타적 동기가 보리심이다. 교육학에서도 이기적 동기보다 이타적 동기로 공부를 하면 성적을 올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보리심은 모
교수님들께 우리 대학교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대개 ‘착하다’고 하신다. ‘착하다’는 말의 사전적인 뜻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말과 마음씨가 곱고 바르고 상냥한,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다. 분명히 칭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단어가 별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사람,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을 그냥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어때?’ 했을 때 ‘착해’라고 하면 특별한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에둘러 말하는 표현이 되었다. 우리 대학교 학생들이 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말을 잘 듣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등을 뜻하는 것 같다. ‘착함’을 이런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문제인가? 딴지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도전적’, ‘창의적’, ‘비판적’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착한 사람은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이거나, 비판적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학교 강의계획서에는 교과목이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