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땅에도 바람이 흐른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변화는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자신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한 가지뿐이다. 변화 중에는 적은 노력으로도 적응이 가능한 변화가 있지만,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변화도 있다. 전자를 Movement라고 하고, 후자를 Shift라고 한다.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면 변화가 있지만, 학교라는 환경은 같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쉽게 적응한다. 동일한 차원 내에서 이동하는 Movement 수준의 작은 변화인 것이다. 반면에, 대학생이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되면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적응에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Shift 수준의 큰 변화인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등등 굳이 애쓰지 않아도 무언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기술적인 변화가 Movement 수준의 변화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Shift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타이틀을 걸어놓은 것을 보면 Shift 수준의 상당히 큰 변화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
반가운 친구들이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편의점과 마트를 인산인해로 만들며 띠부띠부씰 열풍까지 불게 한 포켓몬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만들던 그들은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뉴스에서는 포켓몬 빵 재출시를 두고 레트로 열풍이다, 추억 마케팅이다라며 다양한 이론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빵을 사는 우리의 생각은 그저 옛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다가 시간이 흘러 멀어진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기분. 돌이켜보면 빵을 사고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용돈을 모으는 일은 작은 행복이었다. 친구들과 서로 모은 스티커를 나눠보고 누가 더 멋있는 캐릭터를 가졌는지 재보는 일은 기쁨이었다. 변함없이 즐거운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부모님에게 빵을 사달라 졸라야 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지갑이 빵빵해져 내가 원하는 만큼 빵을 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추억을 추억으로,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마냥 남겨둘 수는 없는 것 같다. 사재기, 강제 판매, 끼워팔기, 리셀 등 시장의 논리와 이익이 끼어들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논란과 함께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바뀐 위대한 발명품들은 천재들의 직관적인 통찰이나 오랜 연구와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고 신선한 충격을 준 책 ‘원더랜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등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혁신과 아이디어의 역사를 과학기술과 접목해 독창적이고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스티븐 존슨은 ‘원더랜드’에서 인류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놀이를 만들어 내고 늘 새로운 체험을 갈구하고 놀라움을 지향해 왔는데, 이러한 재미와 놀이의 추구가 ‘혁신의 잠재력’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혁신의 잠재력이 전혀 예측되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발명품의 기반이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원더랜드’는 재미와 놀이를 추구하는 인류의 기본적인 욕구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간의 연결고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풍부한 사례와 영감이 넘치는 사고 전환으로 전개하고 있다. 신비한 소리에 대한 탐닉은 컴퓨터 산업을 만드는 근간이 되었고, 멋있는 옷을 입고 싶은 충동과 맛에 대한 집착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면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농담이라며 개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발언을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이러한 두 가지 의문이 들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27일 미국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 윌 스미스가 자신의 가족을 모욕한 크리스 락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코미디언인 크리스 락이 시상식 진행 도중 한 농담에서 시작됐다. 그는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향해, G.I. 제인 2를 기대하겠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언급한 G. I. 제인은 여주인공이 삭발한 채로 등장하는 영화로,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당시 탈모증으로 삭발을 한 상태였기에 이를 개그 소재로 삼은 것이다. 폭력 사태 이후 윌 스미스는 사과 발언을 하고, 아카데미에서 탈퇴했다. 아카데미 측은 “어떠한 행태로도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추가 징계로 윌 스미스의 시상식 참석을 10년간 금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서구와 동아시아 문화권 간의 의견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이다. 미국 등의 서구 문화권은 크리스 락을 옹호하고 윌 스미스의 폭력을 비판하는 분위기이다. 그저…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1979년부터 10여년간 영국 총리를 역임한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여사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에서 늙고 병든 대처가 의사에게 하는 말이다. 영화에서 대처는 어릴 때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었다고 덧붙인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빚은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머릿속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 결국 자신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여러 고전에서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말인데, 다른 문화권이라도 이런 식견은 서로 통하게 마련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습관과 성격과 운명이 된다.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누구나 흔히 망각하는 일이다. 고매하고 난삽한 이론은 책장을 넘기면 얻을 수 있다. 흔히 망각하는 뻔한 사실을 반복해서 다시 떠올리기, 우리 교육의 또 하나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거듭 다짐을 두어야 하는 쪽은 후자일 것이다. 전국적 현상이 된지 오래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 여부가 아닌 마음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요구한다면 이 질문은 난해한 것으로 변한다. 미치오 카쿠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현대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마음의 미래’에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뇌의 작용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의 각 감정(분노, 기쁨 등)에 따른 뇌 뉴런구조의 변화 등을 비교적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머지않은 미래에 뉴런 연결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지식획득과정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간 뇌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마음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마음이 뇌 부위의 활성화 등으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인간의 마음이 어떤 고귀한 것이 아닌 물리적 현상이라고 했을 때 인간의 가치가 이전에 비해 낮아질 수도 있으나, 저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을 분석하는 것도 결국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은
젊음은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노심초사하며 힘들게 사는 시간이 많습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젊은 시절은 더욱 고단한 법입니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고행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쫓기듯 살다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지를 망각한 채로 일생을 허비해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들 삶의 소중함을 음미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우주 영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입니다.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2013년에 제작하였고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입니다. 우리에게 낯익은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출연하였습니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은 우주 비행사로 우주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허블 망원경 수리작업을 하던 중 폭발한 위성의 잔해 폭풍에 휘말립니다. 우주선은 난파되고 그녀와 동료 맷 코왈스키 두 명만 살아남습니다. 그들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근처의 우주 정거장으로 이동해 가는데, 소유즈에서 나온 낙하산 줄에 다리가 꼬인 라이언 스톤과 그녀에 매달린 코왈스키, 코왈스키는 이러다간 둘 다 죽는다며 스스로 연결고리를 풀고 우주로 사라져갑니다. 이를 말리는 라이언
시린 겨울이 지나가고 캠퍼스에 봄이 찾아왔다. 오랜만의 대면 수업으로 학교가 시끌벅적해져서 복학생인 나도 조금이나마 캠퍼스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헌내기가 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후배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군대에 가게 된 나는 다시 새내기가 된 것만 같았다. 지난겨울까지 우리에겐 많은 고비가 있었다. 선후배끼리 밥 한 끼, 술 한 잔 마시는 게 너무 큰 어려움이 돼버렸고, 얼굴을 맞대고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게 불가능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코로나19라는 다섯 글자가,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즐거움을 빼앗아 가버렸고 그 자리를 차가운 음울함으로 채웠다. 그래도 우리는 묵묵히 견뎌왔다. 서로 도와가며 손 내밀며 잘 이겨내 왔고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 다니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분명 아직 코로나가 종식된 게 아닌데도 길가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심지어 몇몇 학생 커뮤니티에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고지가 멀지 않았지만 아직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모든 게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일일 코로나19 감염병 확진자 수가 몇십만 명씩 나오고 있다. 2년 전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20~30명씩 ‘무더기 감염(?)’이 나오고, 대구를 봉쇄해야 한다며 여러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지났고, 오미크론 유행화와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생활 속에서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캠퍼스도 예외는 아니다. 전면 대면 수업을 시행하는 학교가 늘기 시작하면서 캠퍼스에 다시금 활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먼저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학교생활 적응에 방황하고 있다. 코로나19 학번의 어느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학교를 처음 나왔고 대면 수업이 낯설다고 한다. 그동안 캠퍼스 갈 일이 없다 보니 어느 건물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수업 시간에 팀별 과제나 다른 학생들과 교류를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친구도 없고 처음 접하는 대면 강의에 적응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수들이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지난 2년여간의 코로나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