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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와 삼성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피의 복수)’는 인간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의 대결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선각자 V는 11월 5일을 혁명의 날로 정한다. 1605년 11월 5일, 영국 국교회가 장악한 왕실의 횡포에 맞선 가이 포크스를 기리기 위해 제작한 영화라는 배경이 11월 5일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준다.

영화는 9.11을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는, 그리고 미국인의 공포를 이용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풍자하기 위한 영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2007년 11월 5일 대한민국에서는 ‘삼성 왕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 시민과 시민단체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영화 속 V의 혁명은 성공하였지만, 현실 속 양심선언의 주인공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 주인공의 양심선언이 어떤 계기에서 비롯되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며 진리이다.

11월 5일이라는 묘한 일치 외에도,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점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올해 초 삼성 이건희 총수는 ‘삼성 위기론’과 ‘대한민국 위기론(샌드위치론)’을 언급했다. 삼성이 지금은 잘 나가는 회사이지만, 언제든지 위기에 봉착할 수 있고,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언론과 인터넷이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으로 들썩거렸고 우리 경제의 ‘성장 한계’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삼성은 ‘삼성 위기론’과 ‘대한민국 위기론’이라는 ‘공포’를 매우 잘 이용해왔다. 이건희가 없으면 삼성이 망하고,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공포는 경제 성장에 목말라하는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평소 떡값이라는 이름의 당근과 퇴직 고위 공직자 특채제도는 사회 지도층이 삼성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만드는 ‘위협’이었다. 이러한 ‘공포’와 ‘위협’은 삼성을 법의 사각지대에 앉혀주었다.

한 그룹의 총수가 제왕처럼 대접받고, 그룹의 온갖 부조리와 횡포에도 불구하고 법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포’와 ‘위협’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공포’와 ‘위협’에 대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삼성이 던지는 당근을 뿌리치고 삼성을 향해 채찍을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