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연합뉴스) 이웅 기자 = "지난해 전 세계 헤지펀드 시장 규모는 2조달러(한화 약 2천조원)로 지난 10년 간 10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향후 5~10년 안에 헤지펀드가 일반 고객의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본다"
미국계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인 아틀라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공동 대표 데이비드 전씨의 얘기다. 그는 한국금융지주가 지난 2월 아틀라스와 손잡고 싱가포르에 설립한 헤지펀드 전문운용사 케이아틀라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도 활동 중이다.
헤지펀드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 전통적인 금융상품의 수익률이 떨어진 가운데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이 집중되면서 아시아 금융위기 등 금융시장 혼란의 주범이라는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대안투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금융허브로서 자리를 굳히는 데도 헤지펀드의 역할이 컸다. 5년 전까지만 해도 100개 미만이었던 싱가포르의 헤지펀드는 최근 3년 동안 급증해 현재 24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헤지펀드가 싱가포르로 몰리는 것은 영어의 상용화와 낮은 세금 등 유리한 사업환경에다 싱가포르 정부가 5년 전부터 추진해온 금융산업 육성정책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전 세계 헤지펀드 산업으로부터 소외됐던 한국은 내년 말부터 헤지펀드가 단계적으로 허용되면서 헤지펀드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있다.
헤지펀드는 국내 금융산업을 이끌어갈 차세대 성장동력으로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헤지펀드의 도입은 국내 증권사에 새로운 사업영역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아울러 저평가 종목을 매수하고 고평가 종목을 공매도함으로써 차익을 얻는 롱.숏 전략을 통해 하락장에서도 수익창출이 가능해지는 헤지 기능 제공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사들은 헤지펀드가 도입되면 직접적인 운용과 상품 판매에 따른 수익 증가로 인한 혜택도 크지만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각종 대출(신용, 대주), 결제, 리서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나 이자수익을 올리는 프라임브로커리지 업무의 활성화에 따른 이익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가운데 하나대투증권, 한국금융지주, 우리투자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국내 헤지펀드 도입에 앞서 운용 경험과 노하우를 쌓기 위해 선진시장인 싱가포르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한편 프라임브로커리지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헤지펀드의 도입을 위해 첫 단계로 내년 말부터 투자판단 및 위험부담 능력을 갖춘 적격투자자에 한해 헤지펀드로의 전환이 가능한 사모펀드 운용시 사전등록규제를 사후보고로 전환하고 파생상품 투자한도를 폐지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헤지펀드를 부분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내년부터 헤지펀드가 허용되는 적격투자자의 범위에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연기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당국은 다음 단계로 시장 상황을 봐가며 소수(50인 미만)의 일반투자자로 구성된 사모 헤지펀드와 공모형 재간접헤지펀드(펀드오브헤지펀드)를 허용하고, 마지막 단계로 헤지펀드를 현행 PEF(사모투자전문회사)와 통합함으로써 단독 공모형 헤지펀드 외에는 대부분의 규제를 없애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국내 헤지펀드가 성공적으로 정착,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입 결정 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헤지펀드는 첨단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한 복잡한 자산운용 구조와 정교한 위험관리 체계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일반 금융상품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상품개발에서부터 운용인력 확보, 자금조달, 위험관리 등 기본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데다 단시간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헤지펀드 사업을 하려면 상품개발, 위험관리, 투자(운용), 네트워크, 자금 등 5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 한국 금융기관들은 돈만 있고 다른 4가지는 없는 상태다. 헤지펀드를 운용할 자본이 있더라도 다른 요건들을 하루 아침에 갖추기는 어렵다. 해외 전문운용사들과 손잡지 않는다면 '학비'가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헤지펀드 운용 경험이 10년 이상인 데이비드 전씨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