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KB금융지주 전환을 추진 중인 국민은행[060000]의 행보가 연일 금융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지주회사 회장에 황영기 전 우리금융회장을 내정해 눈길을 끌더니 얼마 전에는 주가하락으로 지주회사 전환에 막대한 돈이 들 것으로 예상되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비율을 15%로 정하는 배수진을 쳤다.
이러한 `깜짝' 행보의 막후에는 국민은행의 '실세'인 이사회가 있다. 회장 선임부터 주요 사안들이 모두 이사회를 통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24일 국민은행 명동 본점에서 정기영 이사회 의장(계명대 교수)을 만나 최근 지주회사 추진 과정과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의장은 "오는 9월 지주회사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에 무산되면 국민은행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의장은 금융감독원 전문심의위원, 한국회계학회 회장, 한국회계연구원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3월 의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강정원 행장을 제치고 황영기 회장이 내정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이사회 멤버들은 강 행장이 자산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은행을 성장시킨 점을 대체로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비은행 부문을 적극적으로 경영할 분이 회장이 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재 국민은행에서 비은행 부문의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황 회장이 개별 면접 때 제시한 경영 플랜에 대해 상당수 이사들이 공감했다. 물론 일부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투표를 통해 황 회장을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지주회사 회장 추천위원회가 황 회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했지만 이튿날 열린 이사회에서도 끝까지 `반란표'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정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들은 이사회에서 대부분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하지만 지난 번 회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에서는 의장인 내가 `이의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의사봉을 두드린 이후 서면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분들이 있었다. 나도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앞으로 중요한 의안이 있을 경우 위원회에서 결정해 놓고 이사회에서 부결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부결되는 게 아닌가. 국민은행 이사회가 제일 모범적인 이사회라고 생각하지만 회의 전문가 등을 초청해 (회의 진행 방식 등에 대해) 강의를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김중회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지주회사 사장으로 내정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황 회장 내정자가 사외이사들에게 사전에 김 전 부원장을 사장으로 선임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물었다. 며칠 뒤 임시이사회에 황 회장 내정자가 직접 참석해 설명했고 일부 이사들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김 전 부원장은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높고 균형감각도 가지고 있다. 내가 금융감독원에 있을 당시 그 분은 국장이었는데 이런 저런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하는 것을 보니 유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은행 노조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행장 선임이나 연임 때, 이번에 지주회사 회장 선임 때도 한 번도 `밖에서' 전화 한 통 받아본 적이 없다. 정부가 국민은행 주식을 1%도 가지고 있지 않고 시중은행의 인사 문제에 대해선 개입 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감독당국의 입장이다.
-- 이사회가 중요 사항을 결정만 할 뿐 책임지지 않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비판도 많다.
▲이사회가 행장, 회장을 선임했으니까 그 분들이 당초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그 분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이사회 전체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자고 말할 수는 없다. 이사 개개인이 윤리와 도덕, 본인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사표를 내든지 하는 문제다. 나는 내가 지지했던 사람의 업적이 공약보다 떨어질 경우 내 거취를 상당히 고민할 것이다.
무소불위는 아니다. 사외이사들도 1년에 한 번씩 서로 평가를 한다. 이사회 내 위원회도 평가해 사업보고서에 평가 결과가 실린다. 동료에 대한 평가는 독립성, 전문성, 품성 등 각각의 항목을 나눠 A,B,C 등으로 매기는 데 2006년에 처음 평가받았을 때 나는 평균보다 점수가 밑이었다. 이후 반성을 하고 더욱 열심히 하니까 지난 해에는 점수를 잘 받았다.
--지주회사 회장 선임 과정에서 친(親) 강 행장파와 반대파 간 알력다툼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알력다툼이) 없었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관계에서 친소 관계가 있고, 자리를 놓고 결정할 때 편이 갈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상당히 잘 마무리되고 현재는 별일 없었던 것처럼 돼가고 있다. 별다른 감정상의 문제가 응어리져서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비율을 15%로 제한했는데 무리수 아닌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주주의 30% 가량이 되더라도 지주사 전환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투자여력이 없어지니까 행사 비율을 제한하자는 안건을 은행 측에서 올렸다. 강 행장은 시장에 국민은행이 지주사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기 위해 애초 30%보다 약간 낮추는 쪽으로 의견을 냈으나 황 회장 내정자가 15%까지 낮추자고 강하게 얘기했다. 기업설명회(IR)를 하고 자사주 매입도 검토하면 15%까지 낮추더라도 지주사 설립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달 뒤 주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비율을 제한하는 것을 반대했다.
--9월에 지주회사 전환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이번에 주주들이 15% 이상 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내년 3월 말이나 6월 말로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설립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설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국민은행이 지주회사로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못 간다면 국제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다. 국민은행은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지 않은가. 금융시장이 완전히 죽는다면 몰라도 황 회장 내정자와 강 행장, 두 선수들이 열심히 뛰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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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2008-07-24 09: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