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정부가 장기기증 뇌사자를 발굴하는 병원에 이식 수혜자 결정권을 대부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장기이식이 일부 대형병원에 집중될 수 있어 장기 배분의 공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한이식학회는 이달초 입법 예고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이 장기 배분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보건복지가족부에 전달했다고 29일 밝혔다.
학회 관계자는 "개정령안이 확정되면 국내 전체 환자의 응급성과 적합성에 따라 장기가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병원에 등록한 환자들 가운데 순위가 결정되므로 공정성이 훼손되고 장기이식에 상업적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학회는 최근 이러한 우려를 보건복지가족부 국립장기이식센터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학회 내부 장기 배분 연구모임은 28일 회의를 열고 개정령안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예상된다며 반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뇌사판정대상자 관리전문기관'(이하 뇌사판정기관)은 신장 1개에 대해서 이식 수혜자를 선정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적용받고 있지만 개정령안에 따르면 각 장기별 이식대상자 1명씩을 선정할 수 있다.
장기이식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이 신장 1개를 제외한 나머지 장기이식 수혜자 결정권 전부를 갖게 되는 셈이다.
현재는 전국의 대기자 가운데 조직 적합도, 대기기간, 응급도 등을 종합해 순서가 결정됐으나 이제 병원이 이식 순서를 결정하게 된다.
정부는 뇌사판정기관끼리 경쟁을 유도해 뇌사자 장기이식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인센티브 확대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병원에 장기 배분권을 줄 경우 뇌사자 판정 및 장기이식 관련 인력과 자금이 확보된 일부 대형병원에 뇌사자 발굴이 쏠리고 그에 따라 이식 대기자들이 이들 대형병원으로 집중된 결과 국립대병원이나 지방 병원의 경우 환자의 대기시간이 오히려 길어지거나 장기이식 수술 실적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일반외과 하종원 교수는 "다른 병원에 더 긴급한 환자가 있는데도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에 등록한 환자가 우선적으로 수술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공정 분배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는 과정에서 정부가 '규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개정안을 밀어부칠 경우 환자들에게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금도 진료 일선에서는 이식 대기자들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번 개정령안이 확정될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지방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들은 지금보다 대기시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계명대 이식혈관외과 조원현 교수는 "민간주도 의료체계인 미국에서조차 한 병원에 이식 대상자 선정권을 주지 않고 공정하게 장기를 배분하는 시스템을 갖췄는데 정부가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특정 병원으로 장기이식과 환자들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장기이식 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개정령안은 지방 의료기관도 장기이식 뇌사자 발굴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해 우선 뇌사자 장기이식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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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2008-07-29 10: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