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에 일궈낸 눈물의 땅, 우토로
해외동포 700만 시대, 조선의 식민지 침탈과 근대화과정 100년 남짓 되는 사이 700만 명의 동포들이 해외로 흩어져 나갔다. 이 중 일부는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함이었지만, 대부분 그 이주의 발단이 일제의 식민화 과정 속에서 차별과 탄압에 못이겨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앙아시아, 중국, 연해주, 유형의 땅 사할린으로, 또 멕시코의 애니깽 노동자로,, 이름조차 다 알기 힘든 조선인들이 해외로 끌려나갔다. 1938년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총동원령을 법률로 제정해 조선 각지에서 일부는 군인으로, 또 징집을 피하기 위해 노무자로 일본에 들어갔다. 우토로도 마찬가지로 당시 군수기업이었던 닛산차체의 주도 아래 군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노무인력으로 동원되면서 생겨났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그 노무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생겨났다. 이후 주민들은 노동자 숙소, ‘함바’에서 생활해야 했다. ‘우키시마호폭침사건’처럼 고국에 돌아가는 도중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또 고국에 돌아가도 이제는 기다리고 있는 가족도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그들은 그 땅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이제 강제동원 1세들이 다 돌아가시고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
- 정진경(우토로국제대책회의·간사)
- 2007-10-21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