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4.2℃
  • 구름많음강릉 12.0℃
  • 구름많음서울 14.2℃
  • 구름많음대전 16.4℃
  • 구름많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3.5℃
  • 구름많음광주 14.9℃
  • 구름많음부산 14.5℃
  • 구름많음고창 15.2℃
  • 맑음제주 17.5℃
  • 흐림강화 12.7℃
  • 구름많음보은 11.6℃
  • 구름많음금산 14.9℃
  • 구름많음강진군 16.4℃
  • 구름조금경주시 14.2℃
  • 구름많음거제 13.7℃
기상청 제공

계명대신문

[독자마당] 아버지가 작아졌다

아버지가 작아지신 것 같다고 느낀 어느 날의 일기다.

 

연고도 없는 대구에 와 정신없이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중, 오랜만에 본가에 들르게 되었다. 현관문을 열자 일찍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맞아주셨다. 맞아주셨다고 적긴 했으나, 사실은 TV를 보시다가 ‘왔나.’ 하는 무심한 투의 말이 전부였다. 그 반응에 익숙하게 '응. 나 왔어.' 대답하던 찰나에, 아주 우연하게도 20년 넘게 의식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꼈다. 허리와 다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앉아있는 게 힘든 아버지께서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앉아계셨다는 사실과 방으로 들어가는 내 등에 고정돼 있던 시선을. 그제야 알았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온전한 애정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엄하시다. 인생에서 단연 변하지 않을 진리처럼 여기던 문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산처럼 거대하고 가장 무서웠던 아버지는 겨울잠에 든 곰처럼 무던해지시고, 정오의 그림자처럼 작아지셨단 느낌이 들었다. 노쇠해져 다 빠져버린 치아의 자리에 틀니가 끼워지고, 까맣던 머리엔 하얗게 새치가 가득 들어차서 그랬을까.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연로해진 외관이었지, 아버지가 변한 게 아니었다. 당신은 내가 의식하지 못했지 여전히 엄하셨고, 처음 의식한 시선도 항상 나를 향하고 있었다. 변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나였다. 손톱처럼 시나브로 자라버렸기에 이젠 호통치던 목소리가 걱정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말씀이 없으신 지금도 입술을 열까 말까 하는 망설임이 눈빛에 서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온전한 마음을 깨달은 덕분에 지금은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지 않다. 그럼에도 그 위엄은 여전하기에 당신께선 여전히 산처럼 크고 우뚝한 존재로 남아있다. 나를 키워주신 어떤 날들에 던지셨던 줄이 억압이 아니라 보호라는 울타리였음을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 아버지를 떠올려 보라 하면 이제는 엄했던 모습이 아닌, 풀피리를 불어주시고, 함께 고기를 잡고, 막내인 나를 위해 그 좋아하던 술도 끊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렸던 나는 이해를 먹고 자라나 아버지라는 산 안에서도 헤매지 않고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