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계명문화상 시 부문 심사평입니다.
심사위원: 안도현 시인
심사평
예심을 거친 13명의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중에서 「하늘 장례」 외 2편, 「꽃이 피었다」 외 2편, 「아버지똥」 외 6편, 「묵을 씹는 밤」 외 2편, 「외출」 외 3편, 「박쥐의 서곡」 외 5편, 「공(空)과 폭(爆)」 외 2편을 먼저 내려놓았다. 상상력의 진폭이 좁거나, 시적 대상을 상투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그치거나, 표현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리하여 나머지 6명의 작품을 놓고 오래 비교하면서 읽었다. 각각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어 당선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언젠가는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펜의 힘을 믿고, 시적인 순간을 만나려는 열정을 접지 않는다면 말이다.
「팬티를 입지 않은 여자」 외 2편은 특이하게도 성적인 언어와 상상을 동원하여 쓴 시들이다. 성기, 허벅지, 브래지어, 성감대, 아랫도리 따위의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에로티시즘도 하나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시적 놀이’가 그저 가벼운 놀이로 끝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말 시로 ‘한 번 질퍽하게’ 놀았는지 따져볼 일이다.
「하이힐을 신다」 외 2편과 「바람의 잉태」 외 5편은 균형 잡힌 언어감각, 고통을 겪은 사유의 흔적이 돋보인다. 트집을 잡자면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다는 것이다. 너무 시다운 상황, 너무 시다운 언어를 선택하다 보니 시의 울림이 크게 확장되지 않고 있다. 시를 쓰면서 때로는 일탈을 꿈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상승할 수 있다.
「나무미장원」 외 2편은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는 작품이다. 어조의 얽매임이 없고,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활달한 생각에다 좀 더 맛있는 언어를 비볐더라면 더 좋은 시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남은 두 사람의 작품이 나를 괴롭혔다. 「모음(母音)을 기다리는 새벽」과 「레코드판」이 그것이다. 두 편 모두 어머니와 화자인 ‘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잘 짜인 구성, 부드러우면서도 기발한 시상의 전개, 솜씨 있는 언어 운용 면에서 크게 나무랄 것이 없는 수작들이다.
앞 작품은 역동적인 이미지의 구사와 언어의 밀도가 풍성하고, 뒤의 작품은 시를 잡아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언어의 절제미가 뛰어나 딱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작품을 공동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큰 시인이 되어 미래에 계명문화상의 자부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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