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살아 숨 쉬어야만 대대손손 이을 수 있다. 여강 이씨들이 모여 사는 경북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덕동문화마을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내가 덕동문화마을을 간혹 찾는 이유는 자연생태와 사회생태와 인문생태를 아주 잘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전국 마을 중에서 덕동문화마을처럼 생태를 온전히 갖춘 곳은 많지 않다. 덕동문화마을의 자연생태는 마을을 둘러싼 자금산(紫金山)과 침곡산, 마을 앞의 덕연계곡과 숲이다. 덕동문화마을의 자연생태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덕동문화마을이 명승 제81호인 까닭도 잘 갖춘 생태 덕분이다.
덕동문화마을에는 덕연계곡인 용계천을 따라 조성된 송계숲, 정계숲, 섬솔숲 등 덕동숲이 있다. 대부분 소나무로 이루어진 덕동숲은 마을의 홍수 및 질병을 막아주는 비보숲이다. 그 중에서도 마을 어귀 송계숲의 ‘송계(松契)’는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잘 가꾸기 위해 만든 계를 의미한다. 덕연계곡의 중심에 자리 잡은 용계정은 아주 품격 높은 정자이자 인문생태의 산실이다. 1546년 세운 용계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별장이었다.
용계정 근처의 연못인 호산지당(護山池塘)과 섬솔숲은 덕동마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 회화나무 우물은 산세에 비해 물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는 증거다. 우물가에 콩과의 갈잎큰키나무인 회화나무를 심은 사례는 아주 드물다. 마을 사람들이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학자가 많이 나오길 바라는 염원 때문이었다. 회화나무는 중국 주나라 때 사(士)의 무덤에 심었을 뿐 아니라 관청에 심었던 나무라서 ‘학자수’라 부른다. 최근에 조성한 연못 주변의 매실나무는 조선의 선비들이 사람처럼 사랑한 스승이다. 어느 봄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과 함께 이곳 매실나무의 꽃을 맞이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용계정 주변에 수백 년 동안 살고 있는 은행나무와 향나무는 공자의 정신을 담고 있는 나무이고, 배롱나무는 조상을 향한 후손들의 일편단심을 상징하는 나무다. 덕동문화마을의 조영은 대대손손 살아온 이곳 사람들의 깊은 지혜가 만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