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3.9℃
  • 맑음강릉 5.0℃
  • 맑음서울 3.3℃
  • 연무대전 4.8℃
  • 구름조금대구 5.4℃
  • 구름조금울산 6.5℃
  • 구름많음광주 6.6℃
  • 맑음부산 8.7℃
  • 흐림고창 5.2℃
  • 구름많음제주 7.6℃
  • 맑음강화 3.1℃
  • 구름조금보은 4.0℃
  • 구름많음금산 4.4℃
  • 구름많음강진군 8.4℃
  • 구름조금경주시 5.7℃
  • 구름조금거제 7.7℃
기상청 제공

[1159호 독자마당] 두 번째로 좋은 것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어느 쪽이냐 물으신다면 락(Rock)이 좋다. 락은 70년대가 최고라 생각한다. 레드 제플린의 명곡 <Stairway to Heaven>,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 퀸의 명곡 <Bohemian Rhapsody>가 나왔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두 번째가 60년대다. 더 후, 롤링 스톤스, 비틀스가 미국 빌보드를 점령했던 때다. 셋 다 영국밴드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롤링 스톤스는 두 번째고, 비틀스가 제일이다(더 후는 잘 모른다. 죄송하다). 비틀스 노래로 치자면 두 번째는 잘 모르겠고 가장 좋아하는 곡은 <Free as a Bird>다. 멜로디와 연주도 좋지만 그건 두 번째고, 제일 좋은 건 가사다. 제목만 보고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얘기구나 싶었다. 아니었다. 가사를 보니 ‘새처럼 자유로운 건 두 번째로 좋은 거’란다. 두 번째라니? 누구나 첫 번째로 원하는 게 아닌가. 여기엔 비틀스 말년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잘나가던 비틀스는 언제부턴가 삐걱댔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사이에 금이 가면서부터다. 둘은 음악 성향이 달랐다. 레넌은 자기가 쓴 곡에 매카트니가 손을 대는 게 싫었다. 둘은 이따금 부딪쳤고 남은 멤버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러다 레넌은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에게 푹 빠진다. 밴드는 뒷전이었다. 다른 셋은 오노 요코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그 사이 매카트니가 밴드를 지휘했다.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는 그게 싫었다. 아니, 네가 뭔데? 둘은 탈퇴소동까지 벌였다. 그리하여…… 아, 다 적자니 길고 복잡하다. 아무튼 성실하게 싸워댔다. 그러다 끝내 갈라섰다. 그들 눈에 ‘비틀스’는 좁은 새장이었고, 네 마리의 새는 자유롭게 날아갔다. 1970년 봄이었다.


얼음은 녹고 불은 꺼진다. 하다못해 저 빙산도 녹아내리고 태양도 언젠가는 식는다. 자연사가 이럴진대 인간사의 감정이야 오죽하랴. 비틀스를 갈라놓았던 감정도 결국 스러졌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아니 볼 줄 알았으나 1994년, 새들은 다시 모였다. 미발표곡을 모아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레넌이 죽고 14년 뒤였다. 비틀스는 오노 요코를 찾아간다. 오노는 테이프 두 개를 건네준다. 거기엔 레넌이 만든 미완성곡 데모가 들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Free as a Bird>다. 데모를 틀었다. 레넌의 옅은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온다. 비틀스는 거기에 노래와 연주를 입혀 1995년에 발표한다.


다신 만날 수 없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틀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움과 후회였을 거다. 비틀스는 서로를 속박으로 여겼다. 새처럼 자유롭게, 혼자 마음대로 지내는 게 최고인 줄 알았다. 그래서 헤어졌다. 매카트니와 레넌은 헤어지고도 싸웠다. 지나간 날 돌이켜 보니 어찌 그리도 어리석었던지. 함께 새장 속에 모여 노래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음을, ‘새처럼 자유로운 건 두 번째로 좋은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 곡에서 매카트니는 말한다. ‘우리는 정말 서로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은 레넌도 비슷한 후회를 했을까. 글쎄. 다만 레넌의 테이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for Paul.

관련기사





[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