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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희망은 살아있다

나는 강아지를 네 번 키워봤다. 세 마리는 짧게 마지막 한 마리는 조금 오래. 세 마리는 가족들 중 유별나게 강아지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아빠께서 우연히 데려왔던 친구들이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추운 겨울날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데려왔다. 


나는 좋은 주인이 되지 못했다. 그 응어리는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현듯 떠오른다. 우리 집 밑에서 이웃 어르신과 산책하는 강아지가 보일 때, 친구가 애정을 다해 키우는 반려동물을 볼 때, 그냥 문득 집 앞 강을 바라볼 때, 우리 집에서 그 아이가 있었던 공간을 볼 때 등등. 


강아지 이름은 ‘희망이’이다. 내가 희망이에게 잘 못해줬던 것들이 지금은 마치 내가 ‘학대자’였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작은 생명의 세상은 나였을 텐데 희망이의 세상을 내가 다 망친 것 같았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누군가를 15시간 이상 기다린 적이 있으신가요?’ 희망이는 매일같이 나를 15시간 이상, 아니 어쩌면 24시간 내내 나를 기다렸겠지. 


희망이와 마지막으로 산책했을 때의 모습이 아직까지 너무 또렷하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엄마, 아빠, 나, 희망이 이렇게 같이 산책을 한다. 희망이는 오랜만에 만난 내가 반가웠는지 꼬리를 연신 흔들고 해맑게 웃는다. 희망이가 우리보다 몇 미터 정도 앞서 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뒤돌아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강아지가 먼저 가서 뒤돌아보는 것은 주인이 잘 오는지 확인하고 ‘여기까지는 안전해, 괜찮아.’라고 하는 거라 했다. 우스갯소리로 희망아, 우리 따라오는지 아닌지 확인 하는 거야? 라고하며 신통해 했었는데. 희망이를 보내고 몇 년 뒤 저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여기는 안전해.’라니. 


희망이에 대한 기억이 지금은 너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몇몇의 모습들은 꼭 기억하려고 의식적으로라도 계속해서 되새긴다. 잊지말아야해 하면서. 희망이를 다른 곳으로 보냈을 때의 이유는 충분히 그럴싸했다. 나는 그게 희망이를 위해 맞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둬 키우는 게 너무 안쓰러웠고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끝까지 반대했어야 하는 건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나 큰 상처를 준 것 같다. 버려졌다 생각했겠지. 내가 버렸다 생각했겠지. 단순히, 동물인데 상처를 받았다고? 묻는다면 나는 말문이 막힌다.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그들은 모를 테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분이 자신의 반려견을 자기의 분신처럼 정말 아끼신다. 어딜 가나 함께이다. 요새 그 분의 강아지를 보며 희망이가 자꾸 생각난다. 희망이는 눈을 감았을 때 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얼마나 나를 기다렸을까. 하루 온 종일 내가 다녀갔던 자리를 쳐다봤을까. 키우던 반려견이 먼저 죽으면 저 세상에서 주인을 기다린다던데 희망이는 나를 또 기다린다. 


희망이가 좋아했던 통조림 한 번 더 줄걸. 내가 사간 장난감에 관심도 없을 때 속상해하지 말걸. 더 예뻐해 주고 안아줄걸. 지금 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일까. 희망이가 아주아주 많이 보고 싶다. 나는 애착인지 집착인지 모를 것들과 속죄인지 자기방어인지 모를 것들 사이에 얽매여서 살겠지. 그래야 마땅할 것 같으니까. 내가 늙어서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 꼭 기억하도록 노력할게. 속죄하며 살게. 그냥, 오늘도 그 강아지를 보고 희망이 생각이 많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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