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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니체의 행복론을 통해 살펴본 행복의 정의

니체는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안티크리스트’에서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초극했다는 느낌을 말한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니체처럼 생각한 적이 있는가? 니체처럼 행복을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행복을 흔히 ‘마음이 즐거운 상태’ 혹은 ‘마음이 편한 상태’로 본다. 이러한 상태도 분명히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행복은 말세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보았다. 요새 소확행, 곧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니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말세인들이란 이런 소확행을 쫓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그마한 쾌락과 행복에 연연해하면서 그것들을 얻었을 때 만족하는 소시민적인 인간들이다.
니체는 말세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지는 왜소해졌으며 만물을 왜소하게 만드는 말세인이 대지 위에서 뛰며 돌아다닌다. 그의 종족은 벼룩처럼 근절될 수 없다. 말세인이 가장 오래 산다.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냈다.’ 말세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눈을 깜박거린다.
[…] 이제 인간은 가난하게 되지도 않고 부자가 되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든 너무나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기를 원하겠는가? 누가 복종하겠는가? 둘 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니체가 이런 현실을 본다면 아마도 ‘한국에서는 청년들조차도 말세인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 니체는 ‘마음의 평안이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생명력이 쇠퇴한 자들이라고 본다. 생명력이 쇠퇴한 자들은 위험을 피하고 사람들이나 사회와의 갈등도 피하면서 매사에 편한 것을 추구한다. 이에 반해 생명력이 넘치는 자들은 위험과 모험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힘과 위대함을 시험하고 싶어 한다.


니체는 생명력이 넘치는 청년기는 위험과 모험을 추구하고 그러한 위험과 모험과 대결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패기가 넘치는 시기라고 본다. 이에 반해 생명력이 쇠퇴할 때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져서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 힘이 증가되고 있다는 느낌, 저항을 초극했다는 느낌을 말한다.”고 말했을 때 니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복을 그렇게 생각한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니체 역시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행복이 저항을 극복하는 자신의 강한 힘에 대해서 뿌듯함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했을 때, 니체는 생명력으로 충일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생명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니체는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불렀다. 니체는 모든 인간은 힘에의 의지를 갖는다고 생각했기에 실상은 모든 인간이 힘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몸과 마음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자들도 알게 모르게 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보다 더 강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비열한 방식으로 힘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를 찾아 이들을 억압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힘과 자부심을 느끼려고 한다. 어릴 때는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면서, 어른이 돼서는 자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보다 불리한 처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도 사람들이 힘에의 의지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는 자들은 상대방의 저항을 두려워하면서 저항하기 어려운 처지의 상대들만을 골라 자신의 힘을 느끼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겁한 자들이다. 니체는 우리가 자신의 힘을 진정으로 느끼고 싶다면, 최소한 자신과 동등하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와 함께 힘을 겨루라고 말했다.


이 경우 힘이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니체는 생명이 있는 모든 곳에서는 힘을 둘러싼 경쟁이 행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스포츠에서는 물론이고 경제나 정치 그리고 예술에서도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도 경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쟁에서 이왕이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찾아 맞서 그 저항을 극복할 때 우리는 진정한 힘의 고양과 강화, 즉 참된 의미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니체는 그리스·로마인들을 지배했던 정신은 스스로 고난과 위험을 찾아 그것과 대결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느끼려고 하는 청년의 정신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몰락 이래 서양에서 기독교가 지배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고통과 위험이 사라진 천국을 이상적인 장소로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기독교의 힘이 약화된 후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 여전히 사로잡힌 채,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를 행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를 구현하고 국가가 국민들의 안녕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고통과 고난이 사라진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니체는 이 점에서 근대세계에는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하면서 피하고 싶어 하는 노년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행복에 대한 니체의 사상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세계철학사에서 유례를 보기 힘든 독특한 사상이다. 곰곰이 되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