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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계명대신문사로부터 이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대학 방송국 활동을 하던 시절이 떠올라 잠깐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대학생에게 권하는 한 권을 고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분과 같은 대학생일 때 제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은 틀림없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어느새 나는 프랑스 벨빌 거리 어느 골목,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7층 계단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살찌고 병이 든 로자 아줌마에게는 힘이 부치는 계단입니다. 모모는 그녀가 자기를 돌봐주는 대신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 알았기에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는 하멜 할아버지는 길에서 양탄자를 팝니다.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말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입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로자 아줌마는 모든 위조 서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대 째 순수 독일인이라는 증명서도 있습니다. 로자 아줌마는 한밤중에 겁에 질려 지하실로 숨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로자 아줌마의 병이 깊어갈수록 모모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겁이 났습니다.

 

모모는 거리를 서성입니다. 그러다가 영화 녹음실에서 녹음을 다시 하느라 몇 번이고 뒤로 돌리는 화면을 보게 됩니다.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뒷걸음쳐, 자동차가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모모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가죽 스커트를 입은 엄마를 보려고 눈을 치켜뜨며 애를 씁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로자 아줌마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입니다. 이 소설은 ‘사랑해야 한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한 소설이기에 오늘 이 책을 소개합니다. 좋아했다고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오랜만에 책을 펼치니 익숙한 구절들에서 이 사랑의 기괴함과 지독한 외로움 또한 쏟아져나와 이전과는 또 다른 이야기로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십 대의 나 자신도 조금 낯설게 여겨집니다. 이 가을에 한 번 읽고, 한참 나중에 저처럼 어떤 기회에 다시 한번 꺼내게 되길 바라며 여러분께 ‘자기 앞의 생’을 추천합니다.





[교수님추천해주세요]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캠퍼스에 낭만이 사라진 지 까마득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최근의 한 조사를 보면 많은 젊은이들은 여전히 사랑ㆍ우정ㆍ사회 같은 고전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문학이 교양소설이다. 오늘은 한국 교양소설의 고전이라 할 만한 작품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80년대 초에 나온 이 소설은 70,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외적·내적 풍경을 여실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대학사의 중요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영훈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형에게 얹혀살면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지적 욕구가 강하여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그 지력을 바탕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마침내 명문대에 들어간다. 그러나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깊은 회의에 빠진다. 생각했던 대학공부가 아니다. 2학년 때는 학과공부는 포기하고 문학 서클에 들어가 문학에 심취한다. 천 권의 책을 독파하고 소설이나 비평문도 거침없이 써낸다. 주위의 박수도 받고 시기도 받는다. 그러나 이것도 만족과 행복을 주지 못한다. 무엇이든 궁극적인 이유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삶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