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대학 강의실에서는 펜 대신 키보드 소리가 더 익숙하다.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강의 내용을 타이핑하거나 녹음과 촬영을 하며 수업 내용을 기록한다. 강의가 끝나면 녹음 파일과 스크린샷이 폴더에 저장되고, 한 시간 분량의 수업은 몇 줄 요약 없이 그대로 디지털 공간에 남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필기도구가 바뀐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 필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학습의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사고의 깊이는 오히려 얕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활용하면 교수의 말을 실시간으로 받아 적을 수 있어 방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기록하는 것’과 ‘이해하며 필기하는 것’은 명확히 다르다. 학습 과정이 단순 저장과 전달에 집중되면서, 학생들의 사고 과정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사진 촬영이나 녹음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복사하고 저장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만, 이 과정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 자신만의 언어로 요약하고 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는 능동적인 사고 과정이 개입되기 어렵다.
반면 손으로 직접 필기하는 행위는 우리 뇌의 다양한 영역을 활발하게 자극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글자를 눈으로 인식하고 손을 움직여 쓰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때 뇌는 시각, 촉각, 언어 처리 등 다양한 감각과 인지 기능을 동시에 활용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작용은 단순한 정보 저장을 넘어,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는 데 이바지한다. 실제로 이러한 손 필기 과정이 뇌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연구도 있다.
지난해 5월, 노르웨이과학기술대 신경심리학과 오드리 반 데르 미르 교수 연구팀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뇌파 측정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손으로 글씨를 쓸 때는 뇌의 서로 다른 영역 간 연결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지만, 키보드 타이핑 시에는 그러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손 필기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인지 활동임을 시사한다.
결국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정보를 손으로 적고 구조화하는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이는 글쓰기처럼 논리적 구조화가 필요한 활동에서 사고의 흐름이 끊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쓰지 않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멈춰 서서 고민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야 한다. 노트를 펴고 펜을 들어 짧게라도 손으로 생각을 적어보자. 적는다는 것은 곧 사유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는 습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요즘 시대에 자신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