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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조변석개하는 우리나라, 원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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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변석개’는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일관성이 없이 자주 고치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종종 드러난다. 먼저 우리말을 예로 들면, 부사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상황에 쓰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상황에도 빈번하게 사용해 결국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수정됐다. 그렇다면 부정적 상황에 쓰이는 ‘너무하다’를 이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어가 되는 걸까?

지난 7월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일상생활에서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국어를 만들기 위해 언어규범의 큰 줄기는 유지하면서도 현실과 괴리된 부분을 수용하겠다.”라고 전했다. 이는 국립국어원의 ‘언어는 사회 변화에 맞춰 변화하고, 어문 규정 역시 변해야한다’는 최근의 기조에도 잘 나타나있다. 지난 2011년에 국립국어원이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는 사람이고, 대다수가 사용하는 언어도 어느 정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표준어 혹은 뜻풀이가 정체되어 있지 않고 꾸준히 현대를 반영하는 자세 자체는 옳다고 하겠다.

하지만 대다수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여도 그것이 원칙이라면 바르게 사용하는 소수는 무엇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이 적응할 새도 없이 현대는 빠르게 바뀌어가지만 달라져가는 사회에 맞게 손봐야 하는 것과 틀린 것은 엄연히 다르다.

줏대 없이 바뀌기만 하는 교육정책, 대학 관련 정책도 문제다. 지난 10월 12일에 교육부가 고시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정부의 입맛대로 바꾼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취업률에 따라 학과명이 바뀌거나 학과 자체가 통폐합되는 상황도 다르지 않다.

사회의 움직임에 따라 정책 혹은 규칙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치관을 바로 세우지 않은 채 정책이나 규칙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고, 대중에 영합한다면 문제가 된다. 언어의 경우에는 표준어로 바꿀 때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고, 교육정책도 골자가 되는 법칙을 세우고 상황에 맞게 바꿔야 한다. 즉, 사회의 변동을 반영하되 일관성 있는 원칙은 분명히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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